공리주의란 무엇인가?

Posted 2012.10.15 06:30





* 숙제는 스스로~~

공리주의

근대 이성에 대한 믿음과 합리성에 대한 신봉이 가장 극적으로 들어나는 부분은 바로 공리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신에 대한 의무의 시대에서 이성과 합리성에 의해 권리의 시대로 넘어가는 근대는 공리주의적 결과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발전과 결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즉 사유재산과 시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는 공리주의와 결합하여 개인의 경쟁력과 성과를 중시하여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내면서 최대한의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태도는 비단 경제의 영역 뿐만 아니라 근대 민주주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수결에 입각한 방법론과 개인의 자유 및 권리의 신장은 중세적 계급제도를 무너뜨리게 되고 시민혁명을 통한 새로운 계급 구조의 구성에 기여하게 된다.  즉 공리주의를 매게로 한 계몽적 시민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계층이라는 새로운 지배계층을 형성하며 근대의 계급구조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공리주의는 심리 이기주의와 흔히 비교가 되는데 심리 이기주의에 따르면 각 개인은 자신에게 이익이라 판단되는 행위를 우선시하여 행하여야 하며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거나 자신의 쾌락이나 행복을 극대화 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행위의 동기를 줄 수 없다고 보게 된다.  이러한 심리 이기주의의 관점은 철저하게 개인적 관점에서의 윤리관에 불과하며 이기주의적 관점은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굉장히 모순된 양상을 불러 오게 된다.  이에 공리주의는 개인의 호불호의 정도에 지나지 않는 심리적 이기주의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일련의 규칙성을 가져오게 되며 그것이 바로 최대다수 최대행복이다.  이러한 규칙성을 담보하기 위해 첫째로 사회 구성원에게 자유와 평등을 동등하게 부여하여 의사결정의 자유와 의사결정에 있어서 가치의 동등성을 이끌어내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오고 둘째로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의 추구로 인해 발생하는 각 개인의 충돌적 양상을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이라는 결과적 규칙을 통해 자본주의의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이렇듯 공리주의는 근대의 형성에 있어서 비단 윤리의 영역을 넘어 다방면에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 

공리주의는 적용 방법에 따라서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로 나뉘게 된다.  즉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위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행위 공리주의란 개별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경우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행위 공리주의는 일반성을 가진 규칙이라기 보다는 각각의 개별적 상황속에서 더 큰 이익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각기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명제를 보자.  이는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는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오기에 타당한 명제이다.  다들 거짓말만 한다면 이익보단 손해가 더 클테니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이득이 되는 상황도 존재한다.  테러리스트가 나에게 협박을 하며 어떤 정보를 얻어내려고 할때 그 정보를 준다면 수백만명이 죽는 상황이라면 거짓말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오기에 정당화된다.  결국 행위 공리주의란 개별적인 상황속에서 더 큰 이익을 주는 행위를 선택하라는 기준만 제시해줄 뿐이며 무엇이 더 큰 이익을 주는 행위인지는 행위자가 직접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은 모든 상황 속에서 행해져야 하기에 개인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에 다름이 없다.  더욱이 굉장히 복잡한 삶 속에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계산을 하다보면 잘못된 정보에 의해 계산이 잘못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을 두고 반생산성 비판이라 칭한다.  즉 계산을 즉각적으로 항상 해야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행위 공리주의는 더 큰 난점을 가져오기도 한다.  예컨대 부모님이 큰 병에 걸렸다고 해보자.  우리는 보통 부모님의 치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행위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부모님의 치료가 큰 이익이 되지 않고 되려 부모님의 죽음이 이익이 된다면 과감하게 부모님을 죽이라고 명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을 반직관적 비판이라 칭하게 되며 이러한 두가지 측면이 행위 공리주의가 가지는 한계점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규칙 공리주의이다.  규칙 공리주의란 사회적으로 더 큰 공리를 산출하는 규칙을 정해놓고 어떤 상황 속에서 그 규칙에 속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옳다는 식이다.  사실 공리가 크다고 사회적인 합의가 있는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따라 행위를 하는게 더 합리적일 것이며 이렇게 규칙을 정해놓게 되면 행위 공리주의처럼 각 개인이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 항상 계산을 해야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합리적인 인간이 모인 사회집단은 최대한의 공리를 위한 규칙들을 다양하게 상정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본 거짓말 예시를 보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규칙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여기에 따른다.  하지만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의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할 규칙과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해야할 규칙들이 서로 충돌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중대한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더 큰 공리를 따른다는 규칙을 둘 수 있을테고 우리는 중대한 가치인 수백만명의 생명을 위해 테러리스트에게 즉각적으로 거짓말을 행할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은 의무론의 태도를 일부 가져와 최상위의 규칙 즉 최종 규칙을 설정하고 하위의 규칙은 최종 규칙에 따라서 판단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

공리주의는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밀의 질적 공리주의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는 목적(결과)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서 특히 경제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에 의하면 행위를 함에 있어 애매한 윤리적 선택의 상황에 직면했을때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계산을 하여 쾌락이 크면 클수록 옳바른 행위라고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는 쾌락주의 원리라고도 불리며 결과가 좋으면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식이다.  각각의 개인은 윤리적 선택의 상황에서 쾌락을 양을 계산하여 선택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벤담은 쾌락 계산법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즉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 순수성, 파급범위를 종합하여 쾌락의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는 아주 저급한 형태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비판과 쾌락의 점수를 매긴다는 사고 방식 자체가 너무 가변적이고 인간의 삶을 단순화시켜 바라본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더욱이 벤담에 의하면 예컨대 영화 매트릭스의 상황도 정당화될 수 있다.  굳이 인간이 실존하는 무엇으로서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살아가기 보다는 그냥 기계에 의해 사육된채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세계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실제세계보다 더 쾌락이 크다면 당연히 정당화될테니 말이다.  결국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단 배부른 돼지가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 양적 공리주의이다.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는 행위 공리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벤담의 난점을 제거하기 위해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밀에게 있어 행복이란 최소한의 고통을 의미하며, 쾌락은 낮은 수준의 저급 쾌락에서 높은 수준의 고급 쾌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밀에 의하면 저급한 형태의 쾌락 예컨대 식욕이나 성욕 등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면 행복보다는 되려 더 큰 고통을 얻게 된다.  식욕의 지나친 추구는 비만이라는 고통을 가져올테고 성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정신을 공허하게 만들뿐이다.  이에 밀은 쾌락은 저급 쾌락보다는 고급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문화나 예술, 지식, 자유 따위에 대한 쾌락이 성욕, 식욕, 수면욕 따위의 쾌락보다는 상위에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것에 대한 추구를 통해 양적 공리주의가 가지는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공리주의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객관성 즉 깔끔하게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질적 공리주의에서는 이것이 굉장히 모호해진다.  영화를 보는 쾌락과 그림을 그리는 쾌락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 쾌락일까?  더욱이 밀의 공리주의는 무어의 자연주의적 오류에 의해 직격탄을 맞게 된다.  


공리주의자들은 자연주의적 윤리설의 입장에서 가치판단의 문제를 사실판단의 문제로서 확인하려 든다.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욕망을 사실적으로 확인하여 일련의 가치와 규칙을 끌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선’에 대해서 살펴보자.  ‘선’이란 전형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로서 공리주의자는 ‘선’의 개념을 자연적으로 정의내려 ‘선’을 쾌락 또는 최대다수 최대행복과 동일시하게 된다.  하지만 무어에 의하면 ‘선’이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단순 속성으로서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예컨대 개라고 하는 동물은 복합 속성을 가진 것으로서 네 발 달린 포유동물이라는 식으로 개념정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노란색을 보았을때 우리는 노란색을 개념지을 수 없다.  노란색은 단순 속성으로서 노란색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노란색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 역시 단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이를 정의 내려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은 쾌락이라는 식으로 정의를 내린다거나 ‘선’을 최대다수 최대행복으로 정의내리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무어가 전개하는 것이 바로 열림물음 논증이다.  예컨대 1. “선은 쾌락이다”라고 정의 내린 후 2. “쾌락은 선한가?”라고 되묻는 것으로서 열림물음 논증은 자연스럽게 동어 반복의 모순을 가져오게 된다.  즉 2번에다 1번을 대입을 하게 된다면 “쾌락은 쾌락이다”라는 동어반복으로 빠지게 되는 식이다.  결국 이러한 비판에 따르면 ‘선’을 비롯한 모든 가치의 문제는 자연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더욱이 밀이 주장하는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이라는 것은 결국 다수의 의견에 의한 것으로서 소수가 생각하는 고급 쾌락과 다수가 의해 제시된 고급 쾌락은 다를 수가 있다.  예컨대 영화라는 매체를 볼때 이것은 고급 문화이가? 저급 문화인가?  만약 영화를 오페라나 발레 따위와 비교를 한다면 고급 문화라는 표현보단 자연스럽게 완화하여 대중 문화라는 식으로 표현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고급 문화는 아니라는 것인데 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결국 저급과 고급을 나누는 것은 다수에 의한 횡포를 불러 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게 된다.  게다가 밀의 공리주의도 결국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논리 그 자체는 유지하고 있기에 ‘정의’가 수단으로 전락하여 최대의 결과를 위해 무시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게 된다.  즉 큰 틀에서 다수의 공리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건가?  소수자의 권익과 이익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런 정의에 대한 의문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이롭지 못하다.  근대에 이르러 공리주의는 분명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되지만 반대로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가장 큰 가치인 기본권과 자유에 대해서 공리라는 말로서 제한을 가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이나 공동체의 가치 등은 공리주의에 의해 수단으로 치부되어 무시당하는 현상이 생기게 되며 이것이 바로 공리주의가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문제점이다.



현대 공리주의

결국 벤담이나 밀의 고전적 공리주의가 주장하는 행복이나 쾌락이라는 것은 굉장히 모호한 측면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공리주의는 회의주의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예컨대 과연 한 개인이 행복하다는 것을 타인이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수치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란 단일한 형태가 아닌 굉장히 복합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을 어떻게 행복과 쾌락이라는 단일한 가치로서 환원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더욱이 행복이라는 감정은 결국 심리상태에 불과한 것인데 이러한 불확실한 심리상태로서의 행복이 과연 최대 다수의 복리를 위한 모든 정신적 물질적 활동을 포함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도 던져진다.  결국 모든 비판의 핵심은 공리를 위한다는 모든 것들이 행복이라는 단순한 형태의 심리 상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한 공리주의는 현대에 이르러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게 되는바 고전적 공리주의가 내세우는 행복과 쾌락이라는 개념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선호 만족(preference-satisfaction)이라는 개념이다.  선호 만족과 행복은 동일하지 않은 개념이다.  행복은 각 개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호를 충족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부산물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행위의 동기가 행복과 쾌락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게 되면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행복 그 이전에 존재하는 선호에 대한 충족과 그 만족을 공리주의의 핵심 개념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선호 만족이라는 개념을 취하게 됨으로써 가져오는 가장 큰 이득은 공리 그 자체를 개인적 측면에서 세계적 측면으로 그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영화 매트릭스를 바라보자면 기계에 의해 사육되는 삶을 되려 행복하다고 여기는 저급한 쾌락에 대한 욕망을 논리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조금 더 고통스럽더라도 그러한 삶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 공리주의자들의 주된 목표는 행복과 쾌락의 극대화가 아닌 선호 만족의 극대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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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 2012.10.16 10:17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윤리시간에 배웠던 공리주의는 외우기만 했으면 되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상당히 어려운 문제네요

  2. 레오 ™

    | 2012.10.17 19:56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찬바람 불 때 그저 따땃한 커피 한잔이 좋을 때입니다 ^^

    감기 조심 하세요 ^^''

  3. 눈송

    | 2012.10.18 00:09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윤리시간에 배운 벤담형의 최대다수 최대행복을 여기서 보게되다니 ㅋ

    두뇌에 과부하가 ~~

  4. | 2012.10.24 17:04 | PERMALINK | EDIT | REPLY |

    비밀댓글입니다

  5. 스마일Man

    | 2012.11.29 23:55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의 추구가 곧 사회에 대한 봉사이다라고 말하며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원칙을 제공했죠. 그러나 개인의 행복의 추구에 앞서 이기심을 과연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공리주의자들은 그것 역시 개인의 양심에 맞겨야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개인의 양심을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그 기준 역시 개인이 결정하는데 그렇게 되면 도덕적 상대주의에 치닫게 될 소지를 제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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