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즈 더 데이(Seize the day)

유태계 미국인인 솔 벨로우가 쓴 씨즈 더 데이는 1956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이다. 소설이 나온 지 30년이 지나서야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다. 이 작품은 소외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으로, 주인공들이 억압받는 상황과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거대 도시의 부조리를 잘 보여준다. 즉 굉장히 부조리하고 암울한 상황에 빠진 주인공들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동명의 영화는 1986년에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는 1999년에 비디오로 출시된다. 로빈 윌리암스는 지속적으로 실패만 하는 인생에서 극적인 반전을 꿈꾸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주인공 토미 윌헬름 역을 잘 소화해낸다.

문학작품을 영화화하는 경우는 크게 세가지의 경우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문학작품의 주요 서사를 그대로 옮긴 경우. 둘째는 원작을 다시 해석하거나 해체하여 의도적으로 변형한 경우. 셋째는 원작을 원재료 삼아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드는 경우이다. 영화 씨즈 더 데이는 첫번째의 경우에 해당한다.

 

소설 씨즈 더 데이의 시간적 배경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단 하루만을 보여준다. 공간적 배경 역시 뉴욕 브로드웨이 위쪽 몇 블럭만을 왔다 갔다 할뿐이며 특히 대부분의 공간은 글로리아나 호텔에 한정된다. 하지만 윌헬름의 생각과 기억만큼은 광범위하게 움직여 그의 어린시절, 사춘기, 대학시절, 결혼, 별거, 실직 등을 알 수 있다. 소설은 글로리아나 호텔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식당에 들어가기 전 조간신문을 사거나, 우편문을 받는다거나 따위의 행위 중간 중간에 생각과 기억의 회상을 집어넣는다. 하지만 영화는 시간이 직선적으로 진행하는 고전적 방식으로 진행된다. 쉽게 말해 회상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 현재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연대기순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영화에서는 윌헬름이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애인을 만나고, 뉴욕으로 향하는 순으로 진행한 다음, 소설의 첫장면인 호텔의 아침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가 이런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의식흐름기법으로 쓰여진 소설 초반의 혼란스러움을 감소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영화로 몰입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윌헬름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이 장면부터는 소설과 영화의 서사구조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윌헬름이 아버지를 찾아간 이유는 경제적 도움을 얻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권위적이며 독선적이다. 소설에서 윌헬름은 아버지와의 대면에 앞서 초라한 모습으로 아버지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며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아버지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한다. 이에 소설에서는 아버지를 만나기 전 자신에게 일어난 비참한 상황을 회상하며 시간을 끌려고 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그는 자기 비하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지만 항상 용기가 없는 그는 의존적이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남이 먹던 쿠키를 먹는다고 아버지에게 혼나는 장면이나, 손의 상처를 감은 붕대가 더럽다고 아버지가 갈아주는 장면에서 아버지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어린애와 같은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 윌헬름은 성숙한 자아 이상 형성에 실패한 전형을 보여준다.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유아적 나르시즘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건강한 자아이상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유아적 나르시즘에 젖어있다면 정상적인 자아 형성이 불가능해진다. 코후트는 나르시즘 정신장애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자기 대상의 공감이 결여되고 왜곡된 탓에 자기 응집이 이루어지지 못해 건강한 자기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로서, 그 결과 자기 파괴가 발생한다.”

윌헬름은 이런 나르시즘 정신 장애에서 빠져버린 상태로 볼 수 있다. 윌헬름은 배우가 되기 위해 이름을 토미 윌헬름으로 바꾸었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바꾼 이름을 통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성립하기 보다는, 아버지로부터의 소외만을 강화시키게 된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헐리웃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허풍으로 가득찬 과대 자기 이미지에 불과하다. 자신을 세상을 크게 내보여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다수의 심리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윌헬름처럼 한편으론 방어적 목적의 자부심과 허영심이 가득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실패와 위축의 감정이 존재하여 서로 엇갈리고 있다. 윌헬름은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특히 아버지의 지지를 갈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를 무시할뿐이기에, 윌헬름은 대부를 찾아가다. 자신을 영원히 지켜줄 수 있는 정신적 지배자를 찾아서 말이다. 이 작품에서 대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탐킨 박사이다. 탐킨 박사는 끊임없이 현재만을 강조하는 사람으로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차있죠. 현재만이 오직 실재하는 것이오. 지금, 여기에. 오늘을 잡아야 하죠.” 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이며, 과학자이자 투자가라고 소개하며 자기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윌헬름은 탐킨 박사의 사기꾼 기질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탐킨박사의 말에 그의 모든 돈을 맡겨 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가짜 의사였으며 사기꾼에 불과하였다.

사기꾼 기질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가 가지는 구원자와 같은 속성때문이다. 그는 윌헬름이 직면한 정신적 삶의 질서를 추구학 위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윌헬름의 재정적 어려움을 한번에 해결하기 위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에 윌헬름은 그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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