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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발레의 특징과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 본문

발 레/이론

고전발레의 특징과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

유쾌한 인문학 2010. 10. 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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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발레
낭만발레가 매너리즘에 빠지게될 무렵 프랑스출신의 발레교사인 마리우스 프티파가 러시아로 진출하게 된다.  프티파가 1847년 수석무용수로 러시아 황실발레단인 마린스키 발레단에 합류한뒤부터 50여년동안 러시아 발레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되어 사실상 러시아를 발레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끌어오게 된다.

보통 예술사조의 흐름은 고전에서 낭만으로 흐르게 되지만 발레는 특이하게 낭만에서 고전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전개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고전발레라고 하는 것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게 된다.  

발레에서 고전이라함은 안무의 스타일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느 시대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낭만발레는 시대적 상황과 당시 예술 흐름에 강한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고전발레는 그 발생이 고전주의 시대는 아니지만 안무스타일이나 테크닉에 있어서 아카데미의 권위가 아주 중요시되고 고전적 완성을 추구하는 신고전적 정신에 기반을 두게 되며, 고전발레는 낭만발레와는 달리 형식적 규칙과 테크닉상의 완벽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고전적 가치의 적용은 안무상에서 군무진의 무대상 배치나 움직임을 통한 기하학적 구성을 매우 중요시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낭만발레시대의 주요 요소들이 사라진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백조의 호수를 보더라도 낭만발레 특징은 여전히 살아있게 되는바 결국 낭만적 요소에 고전적 요소의 가미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전발레시대에는 사실상 발레 테크닉의 정점을 이루게 되는바 이때 나타나는 것이 클래식 튀튀이다.  흔히 발레하면 떠오르는 의상이 바로 클래식 튀튀인바 높은 도약과 빠른 회전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의상이다.



왕실발레로의 복귀
고전발레는 낭만발레에서 보여주었던 환상적 그리고 동화적 서민적 요소에서 벗어나 다시 궁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야기 역시 서민들의 이야기보다는 다시 왕과 귀족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측면은 역시 러시아 황실의 후원아래 이루어졌던 배경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시대에 이르게 되면 발레의 테크닉적 측면이 정점에 달하게 되어 귀족들이 스스로 익혀 즐기는 수준을 훨신 뛰어넘게 된다.  이것이 낭만발레 이전의 왕실발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러한 측면으로 인해 귀족들은 관람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고전발레는 과거의 2막구조가 아닌 3막 많게는 4막구조의 거대 공연으로 거듭나게 되며 이와 더불어 화려한 의상, 눈부신 무대장치로 공연 자체를 아주 화려하게 이끌게 된다.
 




그랑파
드되(Grand Pas De Deux)과 이국적 디베르티스망
고전발레에서 나타난 가장 큰 안무의특징은 바로 그랑파드되이다.  2인무(파드되)를 좀 더 확장시킨 안무 패턴으로 보통 막의 마지막에 마무리하는 춤으로서 사용된다.  

순서는 다음과 같은바 먼저 남녀 주인공의 아다지오.  느린 아다지오 곡에 맞추어 이인무를 추게 된다.  이것이 끝나면 바로 남자 솔로가 이루어지고 남자 솔로가 끝나면 여자 솔로가 이어진다.  이를 솔로 바리에이션(Solo Variation)이라 부른다.  남자 바리에이션은 주로 높은 점프와 회전을 위주로 짜여지게 되며 여자 바리에이션은 토슈를 이용한 기교가 중심이 된다.  남녀주인공이 바리에이션을 각각 주고 받은 후에 다시 이인무를 하게 되는바 이를 코다라고 부른다.  

그외에도 프티파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에 이국적 요소를 많이 도입하게 된다.  디베르티스망이란 발레 속에 삽입되는 짧은 볼거리 춤으로 줄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직 솔리스트들의 기량을 과시하기 위한 춤으로 재미를 위해 집어넣은 안무이다.  프티파는 이러한 디베르티스망에 민속춤을 많이 삽입하게 되는바 이는 호두까기 인형에서 많이 확인되는 부분이다.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
1818~1910.  프랑스태생으로 러시아 고전발레를 만들어낸 천재 안무가이다.  오늘날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프티파의 손에서 만들어졋으며 그의 손에서 발레 테크닉 역시 정점을 찍게 된다.  쥘 페로에게서 사사받았으며 1847년 상페테부르크로 이주하게 된다.  당시 매너리즘에 빠진 낭만발레에 활력을 집어넣어 발레를 부흥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프티파 형식의 주된 특징은 전막발레와 그랑파드되의 도입으로 인한 형식적 체계의 완성과 군무진의 대형을 통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의 추구 그리고 다양한 민속무용의 도입이다.  여기에 기존의 낭만발레가 가지고 있던 낭만적 소재에 궁중요소를 추가시켜 새로운 형태의 소재를 창조해낸다.  특히 그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때 작곡가와 무대디자이너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결국 프티파 시대에 이르러 발레 음악이 그 자체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60여개의 안무를 만들었으며 대부분 형식적 규칙에 의거하여 안무된다.  감정적 표현보다는 테크닉의 완벽함에 더 주안점을 두지만 그렇다고 하여 표현이 경시된 것은 절대 아니다.  프티파는 판토마임을 이용한 표현을 강조하였으며 형식적 볼거리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그의 주요작품은 백조의 호수, 잠자는 공주, 돈키호테, 라바야데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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