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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광 시대(1947), 도구화된 인간과 살인의 상징 본문

영 화/고전 영화

살인광 시대(1947), 도구화된 인간과 살인의 상징

유쾌한 인문학 2010. 8. 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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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
위대한 독재자 이후 7년만에 나오는 작품이다.  7년이라는 세월이 작은 시간은 아닌지라 이 작품부터는 우리가 흔히 상상해오던 찰리 채플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도 늙은 것이다.  이 작품부터 채플인은 화장도 지우고 콧수염도 조금 정리하게 된다.  과거와 같은 슬랩스틱을 통한 웃음은 크게 기대하기도 힘들다.  자잘한 장난 같은것이 몇개 보이긴 하지만 철저하게 진지한 영화이다.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여러주에서 상영금지처분을 받게 된다.  아시다시피 채플린 영화의 핵심은 풍자와 고발이며 그것은 모던 타임즈에서 서서히 오르다 이 작품에서 가히 폭발해버리게 된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사회 고발 영화이다. 

시대배경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당시가 메카시즘으로 유명한 공화당 조지프 메카시 상원의원이 활동하던 시기로서 이 작품으로 인해 메카시의 반미활동위원회에 소환되지만 불응하게 되고 보수주의자들은 그를 공산당으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그 이후 그는 라임라이트의 개봉을 영국에서 먼저 행하게 되고 그때 잠시 영국으로 나가야 할 일이 생기게 되는데 그 타이밍에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채플린에게 출국하면 추방해버리겠다고 협박하게 되고 채플린은 영국으로 향해버리고 그는 20년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그의 영화세계 그 자체로서 모던 타임즈에서 위대한 독재자 그리고 살인광 시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고발적 영화들에 의해 미국이 낳은 최고의 예술가는 미국에 의해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내용을 간단히 말해보자면 배경은 대공황 직전으로 영화의 후반에는 대공황이 터지고 나치즘이 태동하는 시점까지 배경으로 잡게 된다.  대공황 직전 실업자가 된 채플린은 여기저기 다니며 사기를 치며 먹고 살게 된다.  돈 많은 과부들을 꼬셔서 그녀들의 돈을 교묘하게 빼앗는 식이다.  여기 저기 전국을 다니며 사기를 치고 다니지만 실제 부인과 자식이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어느날 독이 검출되지 않는 독약을 알게 되고 이것을 실험해보려 길거리의 여자를 데려오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그냥 살려보내게 된다.  그뒤 자신을 뒤쫓던 형사에게 잡히게 되고 그 형사에게 독약을 먹여 탈출에 성공한다. 

지속적으로 만나오던 졸부 여자를 죽여 재산을 갈취하려지만 일은 실패하게 되고 다른 한편 엄청난 부자 과부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그는 결혼식을 하게 되는데 하필 그 결혼식장에 문제의 졸부 여자가 초청되오게 된다.  그는 도망가게 되고 이에 부자과부는 그를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이때 주식 대폭락이 터지게 되고 그간 사기쳐서 모으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버리고 채플린은 졸지에 거지가 된다.  그때 과거 자신이 도와줬던 길거리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파티장에 들리게 되었다가 그만 잡히게 되고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도구화된 인간과 살인의 상징
어떻게 보면 시티 라이트와 모던 타임즈의 궤를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당시 사회 상황이 보여주던 비인간적 행태들을 다른 각도에서 본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라는 경제체계의 발전과 합리적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가져온 가장 극적인 현상은 인간의 도구화 현상이다.  데카르트 이후 생성된 자아개념과 코키토가 인간을 중심에 세운 이후 인간은 이성을 통해 사회 전반의 진보를 통해 총체적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중심에 선 인간 이외의 것을 철저하게 도구화시키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중심에 인간을 놓고 자신만을 보증하는 이런 식의 주체성은 주변의 것들에 대한 극히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목적지향적이게 되고 효율성만을 추구하게 되고 그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이는 생태 파괴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며, 특히 이 코키토의 중심에 인간이 아닌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을 집어 넣으면서 말도 안되는 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전쟁 그리고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전체주의적 양상들을 비판하는 영화가 바로 전작품인 위대한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독재자라는 작품은 단적으로 들어나는 것은 히틀러에 대한 비판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국가가 보여준전체주의적 양상을 그 전반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자본주의의 극도의 발전과 인간중심적 사고관이 만나고 이것이 극도로 왜곡되면서 중심에 선 인간은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고 그 중심에 자본이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즉 모든 것을 도구화시키는 과정속에서 자기 자신마저도 도구화시키는 현상이 생겨나게 되고, 이때 도구화된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중심에 선 것이 바로 자본이 된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주된 이유는 자본을 가짐으로 인해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인간본위의 목적성을 상실한채 오직 자본 그 자체가 목적이 되버리는 자본의 자기목적성에 인간이 빠져들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의 자기목적성에 빠져든 인간이 보여준 행태는 어떠했던가?  다들 알다시피 10살짜리 아이를 하루 18시간이라는 노동현장에 투입시키고 비인간적인 노동행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이는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합리적 논리성이라는 즉 형식주의적 논리성 앞에서 철저하게 정당화된다.  그뿐인가?  그것을 넘어서 어느 순간은 대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니 이 역시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자본의 자기목적성에 철저하게 지배당하는 인간들이 보여준 최악의 형식주의적 논리의 귀결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속에서 채플린이 보여주는 전반적인 양상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자본의 자기목적성에 의해서 30년간 근무해온 회사에서 짤려나가게 된다.  당시 사회는 그 어떤 사회보장제도도 존재하지 않기에 그의 삶은 극한으로 밀려나가게 되고 결국 그는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붙인 자본의 목적성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그 또한 똑같은 행위를 행하게 된다.  적당히 속여서 사기를 치고 여자들을 죽여서 재산을 가로채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채플린이 이 영화에서 극도로 비관적인 양상만을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다.  빗속에 홀로 있던 여자를 만나 독약을 실험해보려다가 중간에 마음을 바꿔 살려주는 장면 여기에서 나름의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또다시 기가막힌 연설이 나오게 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은 인간으로서 35년간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자신에게 주어진건 최악의 상황뿐이었다.  세상이 살인자를 싫어하여 나를 이렇게 잡아 가두었지만 이미 사회는 무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수도 없이 죽이지 않았더냐?  자신은 살인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이다.  사회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재판장에 있는 너희들도 곧 나처럼 될 것이다."  감옥에 갇힌 이후 기자를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 가히 압권이다.  "한두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100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  이말을 남기고 그는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마무리
채플린의 영화가 여전히 오늘날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에 존재한다.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과거의 것이 오늘날에도 나름의 설득력을 제시할 수 있을때 기억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설득력이 우리의 일상 생활과 극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제시된다면 그 힘은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정말..  한국사람들은 채플린의 후기 영화들을 전부다 봐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바이다.  채플린 영화가 나오는 상황들과 비판점은 21세기 현대 한국에서도 정확히 유효하게 다가오니 말이다.  먼훗날 언젠가 채플린의 영화를 보며 공감이 아닌 정말 저런 시절이 있었나? 하고 회상해볼 수 있는 그런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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