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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소쿠로프

소쿠로프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회화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어 굉장히 환상적이면서 몽환적인 영상미를 드러낸다.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그의 영상은 극속에서 주어진 상황을 풍경화와 같은 방식으로 은유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을 잘 나타낸다.  이러한 그의 작품 태도는 자본과 결합한 영화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대중성과 오락성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예술은 오락이 아닌 인간의 본질적 삶을 잘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쿠로프는 영화적 기법으로 롱테이크와 인상주의 회화의 양식을 많이 빌려오게 된다.  인상주의 회화의 양식은 카메라 렌즈에 먼가 덧칠을 하여 일정한 이미지의 왜곡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소쿠로프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영화적 주제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그는 지독하리만큼 담담하게 삶의 부조리나 억압,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이나 사랑 따위를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다고 서사의 구조가 아주 복잡하게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이야기의 구조를 거부한채 그는 오로지 영화 본연의 형식미를 통해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게 된다.  따라서 소쿠로프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저항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해답은 나올 수가 없다.  결국 그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그렇듯 그냥 관조하는듯이 작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뚜렷하게 전해지는 메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그의 영상미를 통해서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바 그것이 바로 그의 영화가 가지는 회화적 특징인 것이다.  따라서 소쿠로프의 작품에서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내용보다는 각 예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형식성을 객관적이로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특정한 예술이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형식주의는, 현대의 영화가 보여주는 지나친 오락성 그리고 자본에의 종속성을 거부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그는 서사 내용을 단순화시키고 영화의 본연의 이미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파우스트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2011년도 작품이다.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러시아 영화의 건재함을 알린 상당히 중요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각색한 작품으로 괴테의 작품은 2부 구조의 4개의 비극으로 이루어져있는바 소쿠로프는 4개의 비극 각각이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버무려낸다.  파우스트라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 주제의식 특히 작품의 마지막 비극인 지배자 비극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근대 이성에 대한 확신과 계몽에의 의지 그리고 권력에 향한 욕망이다.  소쿠로프는 이러한 측면을 적절히 버무러내어 극중에서 드러내면서 완전히 상반되는 분위기를 집어넣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극단적인 허무적 상황과 삶에 대한 의지의 추락 그리고 죽음에의 동경이다.  


소쿠로프의 파우스트 역시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토로에서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게 되지만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는 배고픔의 고통으로 인해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이 아닌 관계를 맺게 된다.  극중 도시의 상황은 반지옥에 다름없는 양상을 보여준다.  삶의 희망 따위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으며, 지나친 배고픔으로 시체를 팔고, 전당포 주인으로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모두들 의존하는 상황이다.  파우스트는 너무 배가 고파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 먹을 것을 몰래 먹으며 배를 채우려하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파우스트의 입장에서 자기 아버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서 돈도 받지 않은채 공짜로 치료를 해주는 아버지를 애당초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파우스트에게 있어 영혼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높은 지식이 삶의 의미를 주는 것도 아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이던 소쿠로프의 파우스트이던 둘다 지식의 한계를 느끼는 자들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더 높은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하지만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악마와 관계맺는다는 점이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전당포 주인인 메피스토펠레스를 찾아가는 파우스트는 그에게 철학자의 돌이라는 반지를 맡기려하지만 악마는 그것을 거부한다.  이유인 즉슨 생명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에게는 바그너라는 제자가 한명 존재한다.  그는 극중 초반에서 영혼의 존재를 믿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극중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자였지만, 그 역시 전당포 주인에게 의존하고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극의 중반에 이르면 바그너는 자신이 호문쿨루스를 만들었다며 마가레타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호문쿨루스 역시 영혼이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영혼의 존재를 믿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바그너 역시 악마와의 계약을 위해 대기번호 150번을 부여받은 대기자로서 그는 자신이 만든 호문쿨루스를 통해 마지막 발악과 같이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려고 들지만, 자신의 공허한 영혼과 마찬가지로 호문쿨루스에도 영혼은 존재하지 않으며 도리어 유리병에 들어있던 호문쿨루스가 깨지면서 자신의 영혼도 깨지는 경험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파우스트와 바그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삶 그 자체가 죽음보다 더 못한 상황의 제시인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양상은 영화 속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동경, 죽음이 도리어 더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황.  이러한 상황은 전당포 주인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극의 중반에 파우스트와 마가레트가 교회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파우스트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누가 신의 존재를 믿겠느냐고?  질문을 던질때 "저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바 그 대답은 마가레트가 아닌 전당포 주인의 입에서 나오게 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하는 저 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은 결국 자신이야 말로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대답인 것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죽음보다 못한 상황에서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그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건 삶의 영역 바로 옆에 악마가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 악마에게 매달리고 그 악마에게서 구원을 바라게 된다.  


배고픔에서 시작한 파우스트의 여정은 마가레트의 대한 욕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파우스트는 전당포 주인에게 영혼을 팔게 된다.  이 부분 역시 괴테의 파우스트와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괴테의 파우스트는 처음부터 계약을 맺고 시작하게 되지만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는 처음엔 단순한 관계맺음에서 계약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삶이 부정되고 죽음에의 동경이 싹트는 시대를 맞이하여 그 안에서 희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악마의 권력에 대한 바람인 것이다.  따라서 괴테와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는 동일한 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즉 세상의 본질에 대한 지식에의 추구나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악마의 저 절대적 권력에 대한 추구나 궁극적으론 같은 지점인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은 이후 그는 마가레트와의 하룻밤을 보장받지만 그로 인해 메피스토펠레스의 지옥에 빠지게 된다.  


그곳에서 앞서 죽은 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파우스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자신들을 지휘해달라고 요구한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난 그들은 죽음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결국 일정한 결핍을 내포한 한계를 가진 편안함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파우스트에게 자신들을 지휘해달라고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삶에 대한 긍정은 사라진채 죽음에의 동경이 낳은 모습이다.  지옥에서 작은 온천을 만난 그는 뜨거운 물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보고 그 원리를 하나님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설명할 수 있다면서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권력은 이성에 대한 긍정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메피스토펠레스가 가지는 전능함이다.  따라서 그는 악마를 돌로 쳐죽이지만 이 또한 결핍을 내포한 해결방식일 뿐이다.  이성에 대한 긍정과 권력을 취한다 한들 그는 그 지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괴테의 파우스트와는 달리 소쿠로프의 파우스트에게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끝없는 하강과 심연만이 존재할 뿐인 것이다.





마무리

소쿠로프의 작품은 관람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4개 정도의 작품만이 DVD로 발매된 상황이며 그나마도 연속성은 없다.  소쿠로프의 작품은 시리즈 같은 특징을 가진 작품군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의 일부분만 발매가 되니 전체를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간간히 작품을 볼 수 있는바 예술 극장에서 가끔식 걸리므로 그곳에서 관람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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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자라지

    | 2013.01.02 11:31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와...사이드바에 엠블렘이 넘쳐나네...
    완전 부럽...ㅋ
    잘 지내시는지요...자주 안부 못여쭤 죄송...^^

  2.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3.01.10 00:07 신고 | PERMALINK | EDIT |

    자주 안보는게 좋은거임.ㅎㅎㅎ

  3. 최선미

    | 2013.05.14 09:15 | PERMALINK | EDIT | REPLY |

    파우스트 작품만 읽어봤는데, 영화로도 나왔군요 :D
    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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