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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와 구조주의 현대철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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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와 구조주의 현대철학

유쾌한 인문학 2010. 2. 1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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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수많은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져있다.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은 문서를 작성하는데 목적을 가지고 있고 익스플로러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분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통로로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컴퓨터라고 하는 구조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운명.  그것의 또다른 이름은 목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더 풀어보자면 '나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은 결국 나의 존재이유가 될 수 밖에 없는거 아니겠는가?

인식의 틀.  난 지금 모니터를 바라보며 타자를 치고 있다.  모니터라는 물건의 형상이 나의 눈을 통해 나의 뇌에 도달하고 난 저기에 모니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품어볼 필요성이 있다.  여러분이 보는 모니터가 정말 저렇게 생긴게 맞는것인가?  옆에 개가 한마리 있다고 해보자.  그 개가 모니터를 본다면 사람이 보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럼 개가 보는 모니터가 진짜인가?  사람이 보는 모니터가 진짜인가?  무엇이 되었든 중요한건 각 생물 내부에는 나름의 인식의 틀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인식의 틀을 통해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Matrix

이 시대가 만든 최고의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인류는 기계에 멸망했고 현실의 인간은 기계에 의해 사육되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전부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져 제공되었다는 것이다.


매트릭스를 설명할려면 배경지식이 조금 필요하다.  설명해보겠다. 
코키토 에르고 숨.  여러분들 다 아시는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여러분들 이런 상상 해본적 있는가??  본인은 초딩때 가지고 있던 의문이 하나 있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눈을 감고 있는 그 순간 이 세상이 내가 모르는 악마와 귀신들이 설치는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내가 눈을 뜨면 다시 내가 보는 현실의 세상으로 바뀌는게 아닐까??  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머리를 휘어잡았었다. 

나중에 데카르트라는 사람을 보니 이사람도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런 의문을 품었다.  내가 느끼는게 정말 느끼는 것일가??  나의 몸뚱아리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가??  어떤 악마가 나를 기만하는게 아닐까??  이런 의문에 의해서 데카르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데카르트적 회의 또는 방법론적 회의라는 것이다.  세상 전체를 놓고 의심스러운건 다 쳐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아무리 악마가 나를 기만하더라도 기만당하는 사유만큼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는 내가 생각에 속하는게 아니라 생각이 나에게 속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자기 투명성을 가지게 된다.  자기투명성이란 내가 내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채 그 어떤 것도 나의 사유와 인식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코키토가 멋진게 바로 이부분이다.  완벽한 주체성.  모든 사람은 독립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는 주체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아래에 있고 나의 통제 아래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코키토가 인간을 중심에 세운건 좋았는데 이게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목적지향적이게 되고 효율성만을 추구하게 되고 그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게 된다.  인간 이외의 것은 전부다 도구화시켜버리는 도구적 이성이다.  여기서 여성은 인간인가 아닌가??  여기서 여성은 인간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닌 존재이다.  즉 근대이성은 인간을 새롭게 등급화 시켰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중심에 인간을 놓고 자신만을 보증하는 이런 식의 주체성은 주변의 것들에 대한 극히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태 파괴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모습말이다.


미친 이성의 광기를 목격한 인간은 저 현상을 분석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정말 돋보이는 획기적인 시도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건 바로 구조주의이다.  구조주의는 하나의 관념적 체계라기 보단 방법론적 체계로서 코키토 에르고 숨을 철저하게 부정해버린다.

여러분들이 툭하는 하는 '사회 구조적으로 보았을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여기 이 구조적이라는 단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말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언어학에서 시작된 하나의 학문적 방법론이다.  랑그언어학은 소쉬르라는 사람이 도입한 독특한 언어학이다.  보통 언어학 하면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촘스키를 생각 하겠지만 난 이시대의 가장 위대한 언어학자를 딱 한명 집으라면 소쉬르를 고를 것이다. 

소쉬르는 랑그와 파롤이라는 것을 구분하게 되는데 랑그는 체계를 뜻하고 파롤은 언어 사용을 뜻하는 개념어이다.  뭔말인가??  랑그는 개개인이 따라야하는 언어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고 파롤은 랑그가 개인에 따라 자유롭게 실현되는 현상 그 자체이다.  랑그는 사람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법칙 및 체계로서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며 사람은 혼자서는 절대로 이 체계를 바꿀수도 만들수도 없다.  다만 이 체계를 사용할 뿐이다. 

더 쉽게 말해보자면..  자 한국어 문법을 당신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가??  못만든다.  이는 법칙 또는 체계이기 때문에이다.  그게 바로 랑그이다.  이런 한국문법을 사용하여 우리가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시대에 따라 우리의 말이 바뀌는 변화과정 등 이런 것들이 파롤이 된다. 

랑그는 기호들의 체계가 된다.  그럼 기호란??   언어학에서 기호는 기표와 기의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고양이라는 글자를 보라.  저 글자 자체를 기표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저 고양이라는 기표를 보면 야옹 하는 동물을 떠올리게 되는바 기표에 담겨진 의미가 바로 기의이다. 

그럼 기표와 기의의 연결에 무슨 필연성이 존재하는가??  고양이라는 기표에 반듯이 야옹하는 동물이라는 기의를 결합해야할 당위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는 약속일뿐..  이게 무슨말인가??  한마디로 기호는 체계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고양이가 고양이가 되기 위해선 다른 개나 코끼리, 쥐 등등 따위들과의 관계에 따라 가치가 부여된다.  결국 기호가 체계안에서 다른 기호들과 구분된다는 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론은 다양한 분야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된다.  

이 체계라는 걸 제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영화 큐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큐브라는 건축물이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속에 있는 인간은 강제적으로 그 체계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주체는 사라진다.  인간은 체계속에 속해 있고 구조가 만들어내는 인식의 틀에 갇혀 사물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결국 주체는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코키토적 자율적 존재라기 보다는 다양한 담론 구조들의 통과하는 통로이자 효과에 불과하게 된다.  자주 하는 말로 프레임이라는게 있다.  따지고 보면 프레임이나 담론이나 비슷한 말이다.  사람의 머리속에 꽉 박혀 있는 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빨간 안경 쓰고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빨갛게 보이는 것이고 파란 안경 쓰고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파랗게 보이는데 이 안경이 바로 프레임 또는 담론 또는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 의해 생각 당해지고 존재 당해진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이제 영화속으로 들어가보자.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거대한 체계이자 구조이다.  인간의 현실은 기계에 의해 사육당하고 있지만 매트릭스 속의 인간은 그걸 느낄 수 없다.  그게 바로 매트릭스이다.  마치 여러분이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 의식하고 사용하는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즉 매트릭스는 하나의 거대한 인식의 틀이 된다.  그 틀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매트릭스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내부의 프로그램들처럼 매트릭스 내부의 객체에게 목적을 부여한다.  그 부여된 목적을 통해 우리는 그속에서 나의 존재이유를 찾곤 하지만 결국 매트릭스가 부여한 목적에 불과하다. 

구조가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구조속에 속해 있지만 그걸 느끼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한다.  구조속에서 나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구조속에서의 선택에 불과하다.  이러니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설사 구조를 말해준다 하더라도 그걸 거부하는 사람이 수두룩 할 것이다.  영화속의 배신자.  사이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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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네오는 누구인가?  간단하지 않은가?  구조의 모순을 스스로 깨달은 자이다. 


Matrix Reloaded

왜 제목이 리로디드일까?  한번쯤 왜 리로디드인지 생각해본적이 있으신가?  요즘 유행하는 인기드라마 선덕여왕을 예로 들어보자.  신라시대에 미실같은 여성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색공을 잘해서?  그럼 조선시대에 여자가 색공을 잘했다고 해서 그 정도 위치까지 갈 수 있었을까?  신라와 조선의 차이점은 뭘까?  

어려울꺼 없다.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하시는 바로 그것이다.  결국 신라시대에 미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시대의 여성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조선시대와는 많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각시대마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구조가 다르고 그 구조가 변화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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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으로 들어가보자.  저 영감은 다들 아실테고 리로디드의 핵심은 저 영감과의 대화속에 전부 담겨 있다.  저 영감은 지금의 네오 너는 6번째 네오이고 앞서 5개의 메트릭스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네오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컨트롤 했다고 말하며 자기들은 이미 시온을 5번이나 파괴 할 수 있었으니 네오에게 소스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온과 인류를 멸망시켜버릴 것라면서 말이다.  



앞선 5번의 매트릭스는 결국 각 시대를 지배하는 매트릭스가 다르고 시대가 바뀔때마다 매트릭스는 항상 새롭게 리로디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구조는 각시대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항상 존재했었고 파괴ㆍ재생성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층을 생각해보면 된다.  각 층 하나하나가 그 시대를 지배했던 매트릭스가 되는것이다.

그럼 영화속에선 왜 5번의 매트릭스라고 했을까?  ① 그리스로마시대,  ② 중세,  ③ 16세기의 르네상스,  ④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까지의 고전주의 시대,  ⑤ 근대.  그리고 6번째 매트릭스인 현재.  즉 각각의 시대 마다 각기 다른 매트릭스가 존재하며 시대가 바뀔때 매트릭스 즉 구조도 같이 바뀐다.  그게 마치 지층구조와 같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이해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한가지 더 확인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저 영감 뒤쪽에 있는 티비화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티비속에 티비 있고 그 티비속에 또 티비 있가 있는 형태.  저게 뭘까?   간단하다.  하나의 사회를 지배하는 매트릭스가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시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 잘못 생각하신거다.  그건 마치 여러분들의 삶을 억압하는 것이 오직 하나뿐이라는거 하고 뭐가 다를까?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  즉 구조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내부에는 소매트릭스가 무수하게 많이 존재한다.  그것 하나 하나를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칭할 수 있다.  사실따지고 보면 담론이나 구조나 이데올로기까지 크게 다를건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때에는 어떤 매개체가 존재하고 그 매개체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바로 저것들이니 말이다. 

담론이라고 했으니 담론이 뭔지 한번 짚어봐야 하겠는데..  담론이란 다양한 측면에서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딱한가지만 말해보자면 '개별화 할 수 있는 언술의 집합체'이다.

여성을 예로 들어보자.  여성담론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여성담론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측면만 가지는 건 아닐 것이다.  여성을 바라보는 이론적 근거틀도 다양할 것이고 여성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테고 꼴페들 재수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각기 다른 이말들은 결국 여성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낼 수 있는 것들 아닌가??  이게 바로 담론이다.  즉 여성을 향한 다양한 시각은 '개별화 할 수 있는 언술'이 되는 것이고 이를 모은것이 바로 '집합체'로서의 여성담론인 것이다.

이 담론이라는 것은 권력관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다시금 말하지만 권력이 아니라 권력관계이다.  권력은 한점에 집중된 소유할 수 있는 형태의 것을 말하는 것이고 권력관계는 사회 전체의 사람들에게 분유되어 각자가 업악받는 자이자 억압하는 자라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담론은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틀을 구조화시키는 것으로서 하나의 관행 또는 규범적 원리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즉 어떠한 사물이나 일어난 사건을 우리가 인식할때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담론의 구조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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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을 복제하면서 급기야 위에서 보다시피 모든 매트릭스 내부의 사람을 자기화 시켜버렸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미스가 무서운건 매트릭스 내부에서의 획일성이다.  아무리 매트릭스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다양성은 보장이 되고 있는 사회이다.  구조에 의해 목적성이 부여될지언정 이런 저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위의 스샷과 이 그림은 너무나도 똑같은 그림이다.

그런데 스미스는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구조라고 하는 폭력만 해도 숨막힐 지경인데 구조속의 획일화된 인간.  저것이 과연 무엇을 불러오겠는가?   그리고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사회는 기계들이 만들어놓은 매트릭스에 가까운가?   스미스의 변형된 매트릭스에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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