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관리 메뉴

★ image or real

괴테 파우스트, 근대이성의 비극을 불러오다. 본문

인 문/문 학

괴테 파우스트, 근대이성의 비극을 불러오다.

유쾌한 인문학 2011. 2. 12. 06:20
반응형


괴테의 파우스트  
24살부터 구상에 드어가 자신의 인생 전반을 두고 만들어간 그의 인생 최고의 역작이며 마지막 작품인 파우스트는 그의 죽음 바로 1년전에 완성된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습득하고도 허망함을 견디지 못한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펠레스가 다가와 계약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작품은 총 2부로 나눌 수 있는 작품인데 보신분은 거의 없을거라 예상하고 내용설명을 가볍게 해보겠다.  파우스트
는 평생을 놓고 모든 공부를 다 하고 모든 것을 다 깨우쳤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 세상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늙어버렸다고 한탄을 하게 된다.  이를 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계약을 맺자고 유혹하게 되는데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루게 해줄테니 네가 만족을 하는 순간 너의 영혼은 악마의 것이 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그뒤로부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1부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고 2부가 이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2부는 헬레나 비극과 지배자 비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중 지배자 비극 부분만 조금 더 살펴보자.  파우스트는 왕을 도와 공을 세우게 되고 일정 정도의 땅을 하사받게 된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이 땅에 간척을 시도하게 된다.  쉽게 말해 자연과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는 것이고, 결국 그는 엄청난 제방공사를 감행하게 되며 이를 위해 백성들의 노동력을 무지막지하게 짜내서 결국 이를 완성하게 된다.  이 순간 파우스트는 최고의 만족감을 얻게 된다.  만족을 얻었으니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의 영혼을 거두려 하지만 이때 천사들이 내려와 파우스트를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근대성 이성의 비극
사실 파우스트는 저 공사를 쉽게 이루어내진 못했다.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을 말그대로 쥐어짜낸 것이다.  심지어 어떤 집이 공사가 방해가 되자 이를 없애려고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 집에 살던 노부부가 불에 타 죽는 사건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모든 쾌락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한 그가 자연과 신에 맞서 공사를 완성했을때 최고의 만족을 얻는 다는 것은 당시 시대가 보여주는 이성에 대한 확신을 잘 보여준다.  자연과 신에 맞서고자 하는 근대 이성에 대한 확신은 파우스트의 구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에 대한 확신은 대중에 대한 계몽으로 이어진다.  


이성은 크게 객관적 이성과 주관적 이성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객관적 이성은 객관적 현실에 내재하는 합목적적 이성과 그걸 파악하는 주체의 능력을 동시에 가리킨다.  객관적 이성을 지향하게 되면 수단보단 목적에 관심을 두게 된다.  주관적 이성이란 추론이나 영역 따위의 능력을 의미하는 개념어인바 주관적 이성은 목적의 달성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목적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에만 관심을 가지는다.  즉 목적의 달성이 중요한건 당연한데 그것으로 이르는 길로서의 수단 선택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합리성을 따지는 이성의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코키토 이후 나타나게 된 현상으로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세우고 주체가 중심에 서면서 자기 보존이나 자신의 유용성이나 이득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저렇듯 이성이 두가지 측면으로 나뉘는 주된 이유는 객관적 이성의 지배를 받던 시절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나 도덕 등 다양한 중세적 가치관들을 향해 엄청난 비판을 행하게 된다.  즉 과학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은 가치와 그 가치들이 행하고 있는 사회 전반에 퍼진 부패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론이 코키토 이후 인간이 중심에 서면서 대단히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을 보이게 된다.  이성이 주관적 이성으로 전면화 되면서 중심에 선 이성은 되려 자신이 비판하던 가치의 자리에 자신을 매김함으로써 계몽의 역할이 야만성을 줄이기는 커녕 되려 야만성을 확장시켜버리는 현상을 불러오게 된다. 

주관적 이성은 수단에만 관심을 가진다.  무슨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냐면 노예제도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유용성이 입증 된다면 아주 합리적인 제도가 된다.  여성에 대한 탄압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유용하다면 역시 합리적이게 된다.  이는 자연 파괴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 현재를 보자면 경기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건설로 운하를 파는게 유용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역시 합리적이게 된다.  이게 바로 도구적 이성이다.  이러한 이성의 지배를 받는 근대.  저러한 계몽의 정신.  

이성의 빛에 대한 믿음이 과연 근대를 빛나게 밝혔던가?  두번의 전쟁.  대학살.  이성은 변질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근대적 이성의 폐단이다.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은 데카르트적 주체에 인간이 아닌 국가나 민족을 세우게 되었고 그로 인해 2번의 대전쟁과 대학살을 통해 인간 자체를 도구화 시켜버리게 된다.  오직 합리적이라는 이름하에서 이루어진 이성적 판단은 이것이 비판하고자 했던 중세적 가치의 그 어떤 것도 감히 맞서지 못할 정도의 폐단을 불러오게 된다.  바로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결국 이는 극심한 인간소외를 불러오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소외가 극한으로 다달았던 시점이 자본주의 초기에 등장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아래 아이들을 하루 17시간이라는 노동속으로 몰아 넣게 되고 이에 대해 특별한 비판의식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이 자체가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분명 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기에 전반적인 수정이 일어나게 된다.


파우스트의 꿈과 낭만주의
1832년에 사망하게 되는 독일 문학의 거장이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파우스트의 마무리를 지은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는 낭만주의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도이치 국가라는 것은 사실 그 실체가 뚜렷해 진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  사실상 도이치는 작은 국가들의 연합체 비슷한 형태를 띄게 되고 30년 전쟁을 통해 하나의 도이치로 뭉칠 기회도 자꾸 잃어만 간다.  유럽의 한복판이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거의 누리지 못한채 역사솩에서 많은 시간을 2등 국가로 전락한채 머물게 된다. 

물론 합스부르크 왕가가 존재하긴 했지만 역시 도이치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주변국가들 특히 프랑스와 비교해보았을때 많이 뒤쳐졌다고 보는게 맞다.  이때 즈음 해서 괴테가 탄생하고 나폴레옹 등의 위협을 통해 도이치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나오게 되며,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도 활동을 하게 되는 시점이다.  
18세기 즈음 하여 독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토대가 되는 계몽주의와 프랑스 문학의 영향에서 맞서기 위해 도이치적인 것을 찾는 것에 주력하게 된다.  사실 괴테의 파우스트도 그 이전에 도이치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는 구전문학 같은 것을 괴테가 약간 손본 것이 파우스트이다.  이때 프랑스에서 도입되는 것이 계몽인데 계몽이란 비이성적인 것의 배제 즉 미신이나 종교 그외 비합리적인 이해할 수 없는 관습따위의 배제를 뜻한다. 

결국 도이치도 이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도이치는 뭔가 구심점이 되는 나라도 없고 같은 말 쓴다는거 말고는 딱히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인지라 이성 중심의 계몽이 아닌 예술, 종교, 신비주의까지 건들게 된다.  결국 도이치 지성인들의 목표는 철저한 이성중심적이 될 수가 없었다.  일단 하나로 뭉쳐야할 필요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과거로 돌아가 도이치적인 것을 찾고 이에 몰두하기 시작하게 된다.  각종 민담이나 도이치어 문법책도 나오고 그림 형제는 사전도 펴낸다.  완벽한 이성위주보단 필요에 의한 도이치적인 것의 몰두.  이 두가지가 만났을때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코키토의 중심에 독일 민족이 서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이성의 변질이 일어나게 된다.

괴테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측면을 정확히 반영하는 부분이다.  이성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목적을 위해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모습도 동시에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파우스트 자체가 독일의 민담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일련이 흐름속에서 나치의 모습이 일치감치 싹트고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무리
책 판본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한때 파우스트 붐이 인적이 있다.  한해에 3종의 번역본이 쏟아져나왔으니 말이다.  지금 보면 몇가지가 더 보이는데 문학 동네판은 두가지가 동시에 보인다.  둘다 같은 것으로 보시면 된다.  세로로 긴 형태의 책이 먼저 나온것이고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 전집을 기획하면서 저것이 전집안으로 들어간 것인데 분권되버렸다.  내가 만약 새롭게 책을 사는 입장이라면 분권된걸 선택하겠다.  역시 이쁜게 최고니깐.  문학동네판은 안에 삽화가 들어있다.  뭐가됐든 마음에 드는 쪽으로 선택하시면 되겠다.  특별히 현격한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그외 볼만한 것으로는 파우스트 주해가 있는데 이건 파우스트를 독일 원어로 적어놓고 주해하는 식이다.  제일 뒤쪽엔 논문이 하나 실려있다.  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  이 책은 문학동네판을 번역한 분이 쓰신 연구서이다.  본적은 없지만 목차를 보니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그외 괴테의 전기도 들 수 있겠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 민중본도 존재한다.  저것이 바로 괴테의 파우스트의 원전이 되는 책이다.  여기까지 다 본다면 어디가서 괴테 전문가라고 말해도 충분할 것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