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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
통과의례는 일종의 성(聖)과 속(俗)의 구분으로 삶의 새로운 순간, 관문의 통과 따위에서 맞이하게 되는 의례를 말한다.  통과의례는 인간의 삶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성인식, 혼례식, 환갑잔치 그리고 상례를 들 수 있다.  제의에 직면한 사람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감에 대한 흥분과 긴장 그리고 두려움 더불어 기존의 세계에 안착하고 싶은 욕망 등 다양한 감정에 휩쌓이게 된다.  즉 과도기적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을 안정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통과의례라는 제의를 행하게 된다.

통과의례는 과거의 속에서 성으로의 나아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공간과 시간은 균질하지가 않으며 비균질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첫째로 공간의 비균질성은 예컨대 금줄같은걸로 확인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난 집에선 금줄을 치게 된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집은 평범한 여느집과 다를바 없는 공간적 특징을 가지게 되지만 금줄이 쳐지는 순간 성의 공간과 그밖의 속으로 완전히 다르게 나뉘게 된다.  이를 두고 비균질성이라 칭하게 된다.  둘째로 시간의 비균질성이 잘표현되는 것이 바로 통과의례이다.  의례를 통해 과거의 자신은 속의 영역으로 미래의 자신은 성의 영역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이 가지는 시간의 연속성은 얼핏보기엔 균질하게 보일지라도 하나의 의례를 통해 그 전과 그 후가 달라지게 되고 이것을 두고 비균질적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기실 인간의 주체성은 고정되어있는 형태로 지속되지 않는다.  주체는 끊임없이 재형성되어야 하는 무엇이며 이는 작게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크게는 통과의례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통과의례의 과정
오늘날에는 과거와 같은 형식적인 통과의례를 형식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거부하는 움직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하여 많은 부분이 전문화되어있는 형태를 띄게 되어 더이상 신화적 측면은 설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불안을 항상 내포하고 있으며 더욱이 차갑게 변해버린 현대의 사회구조는 더욱 더 그 불안을 목 조아오는 형태를 보여준다.  이에 현대인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신비주의적 요소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며 이는 변형된 형태의 통과의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아무리 전문화되고 고도로 기술이 발달한 세계이더라도 인간은 종교적 성향을 가진 존재로서 근원에의 회귀나 어떤 절대를 향한 욕망이 지속적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오늘날 정신분석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무의식으로의 여행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와 더 멀리는 원형적 신화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며 이러한 회귀는 자연스럽게 제의적 죽음을 불러와 새로운 나의 창조를 가져오게 된다.  통과의례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깨고자하는 끊임없는 욕망에 다름이 없다.  새롭게 변화된 나에 대한 열망.  좀 더 나은 나에 대한 열망.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우리의 삶 속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존재론적인 위치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바라볼 수 있다.

통과의례는 크게 보아 세가지 과정을 가지게 된다.  분리 – 시련 – 재창조의 과정이다.  첫번째로 분리는 주로 성년식 따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기존의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게 된다.  두번째는 시련으로 제의는 그 수행자로 하여금 다양한 형태의 시련을 부과하여 스스로 극복하여 나갈 것을 요구하게 된다.  세번째는 재창조로 시련을 극복한 수행자는 과거의 자신을 상징적 죽음으로 보낸 이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부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세가지의 과정을 거쳤을때 통과의례는 완성이 되고 이때 수행자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로서 재형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주체와 과거의 주체는 성과 속이라는 형태로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즉 俗 과거의 나 → 통과의례 → 聖 새로운 나의 재탄생의 과정인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웃집 토토로와 마녀 배달부 키키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하는 작품으로 많은 부분에 있어서 구조적 도식이 동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번째는 영화의 시작에 등장하는 이사 장면이다.  이사라고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공간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평소에 살아오던 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큰 불안의 감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세 작품의 이사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점은 토토로와 키키에서는 이사를 통한 불안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센에서의 상당히 큰 불안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토토로에서의 이사는 굉장히 즐겁고 적극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키키가 행하는 자립의 길로의 떠남 역시 불안보다는 즐거움과 흥분이 더 크게 다가오게 된다.  반면 센에서의 이사는 불안과 불만족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극의 배경에 놓인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과거에는 아이들이 자립심과 자아정체성이 뚜렷하고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얻어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양상을 보여주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러한 측면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오늘날의 아이들에게서는 더이상 토토로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이나 키키와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치히로와 같은 아이들만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는 고도로 발전한 현대문명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어두운 측면으로 사회의 기반이 되는 아이들의 변화를 잘 보여주게 된다.  

 두번째는 부모의 부재이다.  토토로에서는 엄마가 병으로 인해 부재하고 있는 상황이며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는 키키가 부모를 떠나게 되며, 센에서는 부모가 돼지로 변해버린 상황이다.  세 작품 모두 부모의 부재 상황에서 일련의 시련을 경험하게 된다.  토토로에서는 메이의 실종을 통해서 키키에서는 마법의 상실을 통해서 끝으로 센과 치히로에서는 자신의 이름의 상실을 통해서 시련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보통 부모의 부재는 아이들의 주체형성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어머니라는 거울상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사회적 주체로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부모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일련의 제의를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보살핌을 통해 제의적 시련을 통과하여 사회적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치히로 이름을 뺏기다
우연히 들어온 신화의 세계에서 남의 음식을 함부로 먹던 부모님은 돼지가 되어버리고 치히로는 홀로 남게 된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당황해하는 그녀를 하쿠가 단번에 알아보고는 도와주게 된다.  하쿠는 치히로를 어디서 만났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어릴때 만났다는 사실만을 가진채 치히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하쿠의 도움을 받아 치히로는 유바바의 온천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때 주목할 부분은 치히로가 이름을 빼앗기는 부분이다.  마녀 유바바는 치히로의 이름 중 몇자를 뺏어가게 되고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게 된다.  이것이 치히로의 통과의례의 첫단계이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은 기존의 자신에 대한 부정에 다름이 없다.  결국 유바바가 이름을 빼앗는 것은 일단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분리의 과정에 상응한다.  사실 통과의례라는 것은 타인이나 사회적 관습에 의해 강요되는 측면이 강하기에 극중에서 이름을 뺏기는 것도 같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유바바에게 이름을 뺏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영원히 유바바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이것의 의미는 통과의례의 실패를 말한다.  통과의례라는건 과거의 자신의 단절과 재창조를 핵심으로 가지게 된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이 단절을 의미하는 반면 다시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시련을 통과하여 자신을 재창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재창조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하쿠같은 존재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계속 중간영역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통과의례의 실패는 정체성의 상실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오물신을 만나다
치히로는 유바바와 계약 후 센이 된다.  그런데 딱히 온천장 동료들이 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일도 제대로 못하는대다 악취까지 풍기는 인간 아이를 귀찮아한다.  그러던 어느날 오물신이 등장한다.  정말 엄청나게 더러운 신으로 유바바는 이 오물신의 시중을 센에게 맡기게 된다.  오물신의 등장은 센에게 있어 첫번째 다가온 시련의 상황으로 지하에서 일하는 가마우지 할아범와 린 그리고 얼굴없는 요괴의 도움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게 된다.  특히 센은 오물신의 몸에서 자전거를 발견하게 되어그걸 잡아당겨보니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나오게 된다.  사실 오물신은 오물신이 아니라 유명한 강의 신이었고 인간들이 강에 버린 쓰레기 때문에 강의 신의 몸이 온통 쓰레기 덩어리가 되버린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대놓고 도구적 이성의 폐해로 인한 자연파괴를 비판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러한 장면을 집어넣으면서 그 비판정신을 놓지는 않게 된다.  이러한 정신은 얼굴없는 요괴의 폭주에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강의 신은 센에게 경단을 하나 준다.  그것이 뭐에 쓰는건지는 가르쳐주지도 않은채 그냥 떠나버리게 된다.  이렇게 엄청난 위기를 잘 돌파하면서 센의 통과의례는 점점 발전해나가게 된다.


유바바의 아들 보
하쿠가 유바바의 심부름을 갔다가 반폐인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유바바는 그런 하쿠를 쓸모 없다고 여겨 그냥 죽이라고 명한다.  센은 하쿠를 구할려고 유바바의 방으로 들어가다 그녀의 아들을 만나게 되는데 유바바의 아들인 보 역시 굉장히 인상깊다.  보는 유바바가 정말 소중히 보호하고 있는 아들로서 병균에 걸린다고 방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한다.  덩치는 엄청나게 크지만 하는 짓은 완전 애기로  자기 마음에 안들면 모든걸 다 부셔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도 가지고 있다.  더 흥미로운건 천하의 유바바도 아들 앞에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유바바의 아들 역시 작품 내에서의 작은 통과의례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큰 구조로서의 치히로의 통과의례와 내부에 또하나의 통과의례를 장치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유바바의 아들은 하나의 상징을 더 가지게 된다.  이른바 덩치만 커다란 정신은 미성숙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서 이러한 보의 모습은 센의 부모님의 모습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다.  작품 초기에 센의 부모님은 굉장히 물질적인 것에 함몰된 현대인의 전형을 보여주게 된다.  이른바 돈이면 다된다는 식의 태도로서 이러한 부모님의 모습은 마치 덩치만 큰 미숙한 정신의 보와 다를바가 없는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쿠를 구하다
하쿠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센.  알고보니 유바바가 하쿠에게 제니바의 도장을 훔쳐오라고 명하게 되고 하쿠는 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유바바의 언니인 제니바의 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니바가 종이인형을 통해 나타나게 되고 그녀는 유바바의 아들을 쥐로 만들어버린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하쿠와 쥐로 변한 유바바의 아들을 데리고 가마우지 할아범의 지하실로 내려오게 된 센은 하쿠에게 경단의 절반을 먹인다.  사실 센은 그 경단을 부모님에게 먹이려고 했었다.  그걸 부모님에게 먹이면 부모님은 돼지가 되어버린 저주에서 풀릴테고 그럼 이 세계에서 탈출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센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을 함에 있어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는다.  하쿠를 좋아하게 된것일까?  아마도 그렇겠지만 결국 센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때의 센의 모습은 극 초반에 나오는 치히로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
이 시점에서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가 폭주를 해버린다.  가오나시가 원하는건 오직 센이다.  이 얼굴 없는 요괴는 끝도 없이 먹어치운다.  급기야 사람도 무려 세명이나 먹어치우게 된다.  가오나시의 탐욕에는 끝이 없다.  한마디로 돈이면 다된다는 식이다.  돈줄테니 먹을거 내놔라.  돈줄테니 센을 내놔라.  매사가 이런식으로 얼굴 없는 요괴의 상징은 위에서 본 강의 신 그리고 센의 부모님과 동일하다.  탐욕스러운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만족을 할까?  얼마나 많이 먹어야 만족을 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사람을 세명이나 먹어치우게 된다.  극중에선 세명이지만 현실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도구로서 그렇게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결국 센은 나머지 남은 경단도 아무론 고민도 없이 얼굴없는 요괴에게 먹이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얼굴 없는 요괴는 모든걸 다 토해내게 된다.  우리는 얼굴 없는 요괴의 참모습을 잘 알고 있다.  가오나시는 조용하고 착한 센을 도와주던 그런 존재였는데 어느 순간 탐욕스러운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인간문명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른바 인간 문명의 양면성으로 이를 잘 활용하면 친절한 문명씨가 될지도 모르지만 잘못 활용하면 탐욕스러운 괴물이 될뿐인 것이다.  


제니바를 만나다
얼굴 없는 요괴의 폭주를 막아낸 센은 쥐로 변한 유바바의 아들도 데리고 하쿠를 위해 제니바의 집으로 떠나간다.  그곳은 갈 수는 있으되 돌아올 수는 없는 곳이다.  하지만 센은 하쿠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 길을 떠난다.  그런데 막상가보니 제니바는 그 엄청난 악명과는 달리 정말 친절한 할머니에 불과하다.  제니바는 유바바와 달리 욕심이 없다.  자신의 마법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부려서 큰 부를 누릴 생각은 전혀 가지지 않으며 그냥 자신의 마법을 자신이 살아갈만큼만 활용하는 사람이다.  유바바와 제니바의 대립은 인간문명에 대한 또다른 비판점을 제시해준다.  마법은 인간의 기술문명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기술문명을 극한으로 이용해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의 이름을 빼앗아 도구로 삼아 유바바처럼 탐욕스럽게 살아갈것인가?  아니면 기술문명을 적절히 이용하여 제니바처럼 적당히 살아갈 것인가?  하야오의 앞선 작품인 원령공주는 타타라 마을 사람들을 통해 인간기술문명의 어쩔 수 없는 측면을 부각시킨채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고 끝내버리는 작품이으로 원령공주 이후 또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이후 하야오는 이 작품을 통해 또다른 해답을 주는 것이다.  즉 제니바로서의 삶 그리고 제니바와 같은 기술문명의 활용.  적절히 이용하되 탐욕스럽지 않은 것.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제니바의 모습은 바람직한 부모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의미가 깊다.  치히로나 유바바의 아들 보는 현대의 아이들의 전형으로서 외동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과보호 그리고 부모와의 유대감의 상실, 대화의 부족으로 잘 표현되는바 제니바는 이렇게 아이들을 잘못이끌어나가는 부모에 대한 하나의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통과의례의 완성
제니바를 만나는 지점이 센의 통과의례의 핵심이다.  돌아올 수 없는 길.  자기 자신만을 믿은채 걸어야하는 무거운 발걸음.  그 길을 그렇게 걸어감으로써 센의 통과의례는 완성이 된다.  그리고 극중 작은 통과의례인 유바바 아들의 통과의례 역시 완성된다.  이제 온천장으로 돌아간 센은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되찾게 된다.  이때의 치히로는 과거의 치히로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과거의 치히로와 센의 경험이 결합된 새로운 치히로로 재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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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ehe

    | 2009.09.18 14:21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정말 다분히 일본스러운 연출에 일본의 색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는 ... 수많은 신과 온천 ㅎㅎㅎ 우리나라도 충분히 이런 요소들을 갖고있는데 작품이 안나오네요 작품이...

  3.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09.09.21 12:44 신고 | PERMALINK | EDIT |

    그러게요. 우리도 가능할텐데.. 아쉬워요.ㅠㅠ

  4. 쏠트[S.S]

    | 2009.09.21 10:50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아... 센과 치히로에 대한 분석, 제가 생각했던 것들과 비슷하네요~~^^
    이 영화 너무 좋아해서 다섯 번은 봤었는데..ㅎㅎㅎ
    아~~ 감사감사^^

  5.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09.09.21 12:44 신고 | PERMALINK | EDIT |

    역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게 다 비슷비슷한거에요.ㅋㅋ

  6. SHINee

    | 2009.10.24 16:54 | PERMALINK | EDIT | REPLY |

    센과 치히로 마지막 부분에는 코 끝이 시큰했죠
    제가 마지막인가요? 1달여 만의 코멘트 같아요 ㅋㅋ
    정말 감동받은 작품 중 하난데.. 한 번 더 보려구요

  7.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09.10.24 22:04 신고 | PERMALINK | EDIT |

    하하... 그러게요. 한달만에 리플달리는것도 첨 경험해보네요.

    이 만화는 가끔씩 다시봐도 참 좋은 것 같아요.

  8. 7드런

    | 2010.03.26 01:10 | PERMALINK | EDIT | REPLY |

    왜 돼지냐고 묻는 분들 ㅋ 오우삼 감독의 비둘기를 떠올리시면 비슷한게 아닐까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농담입니다 ㅋㅋㅋ

  9. Gabriel

    | 2010.05.31 18:42 | PERMALINK | EDIT | REPLY |

    우연히 On Your Mark 블로그를 보게되서 들어왔다가
    평소에도 관심있는 감독의 작품들을 분석해놓으셨길래 다 보게됐네요.

    그런데 다른 애니의 분석과 달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분석의 방향이 많이 엇나가신 듯 합니다.
    다른 작품들의 분석글이나 블로그의 카테고리만 봐도
    글쓰신 분은 서양 철학쪽에 정통한 분이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제목부터가 지극히 일본적인 작품입니다.

    일본어에도 행방불명(行方不明)이란 단어가 있지만
    굳이 神隱し라는 단어를 쓴건 神隱し가
    신령들의 소행으로 어린이나 여자들이 사라진다는 설화를 담고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유바바의 목욕탕의 붉은색은 의미하는 바가 따로 있습니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는 귀족의 시대인데, 이 때의 건축양식과 관련이있습니다.
    화려함과 검소함의 대비적 가치관 중 화려함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붉은색입니다.
    그러니 신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목욕탕이 최대한 화려함을 내뿜은 것이붉은 색으로 나타난 겁니다.
    아울러 일본의 붉은색은 부도 상징하므로 일종의 영업장인 온천에서 돈 많이 벌고자 하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아울러 하쿠의 복장이나 온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도 헤이안풍입니다.
    청색의 경우 붉은색과 대조적인 색이라는 선입관으로 봐서 그러신것 같습니다.
    온천이라는 배경상 물이 등장할 수 밨에 없고 만화라는 상황에서 물을 파란색으로 나타냈을 뿐인거 같습니다만 이건 온천에 국한된 파란색 얘기일 뿐입니다. 다른 곳에서의 파란색은 또 다른 상징일 수도 있어서요.

    다음 오물신에 관한 얘기입니다.
    저는 처음 만화를 볼 때 부패의 신으로 봤습니다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배경이 온천이기도 하고, 일본 신화에서의 목욕 자체가 정화의 의미를 담고있기 때문에
    유바바가 오물신을 더러워서 피한건 절대 아닙니다.
    일본의 신도 일종의 계급이 있습니다.
    산, 강 등과같은 자연물의 신은 꽤 상급에 속합니다.
    부패와 같은 자연 현상은 자연물보다 아래의 신입니다.
    오물과 같은 사물의 신은 신중에서 하급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유바바가 처음 오물신이든 부패신이든을 봤을때
    중요하지도 않은 신인데 할일은 많아 꺼려한 것이죠.
    하지만 치히로에 의해 강의 신임이 밝혀졌을 때 태도가 돌변한 것입니다.
    마치 거래처 사람이 대리급인 줄 알고 대접했는데
    알고보니 그사람이 이사급임을 알았을때의 심정이랄까요.
    거창하게 인간의 탐욕과 산업사회의 문제등의 무거운 주제보다는
    강의 신이 쓰레기 때문에 오물신으로 오해받으니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라는 자연보호적 메세지의
    센과 치히로판 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뒤에서 다시 쓰겠지만 이건 카오나시와는 좀 다른 문제입니다.

    앞에꺼는 뭐 사소한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이름에 관한건 좀 치명적인 것 같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치히로(千尋)는 유바바에 의해 센(千)이라고 불리고
    하쿠도 역시 자신의 이름 중 일부만을 기억합니다.
    이는 자아 일부의 소실이고 이에 의한 자기 정체성의 상실입니다.
    유바바에 의해 이름 일부를 잃는것이 통과의례가 아니라 이는 유바바에 의한 시련이고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모든 이름을 기억해 내는 것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음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고 이것이 통과의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인간관계 입니다.
    글쓴분께서 센과 하쿠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하셨지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됩니다.
    카오나시의 등장역시 이런 주제의 연장선입니다.
    카오나시의 경우 글자 그대로 '얼굴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치히로와 센의 이름의 문제가 얼굴이 된 것인데
    어차피 이름이 얼굴이고 얼굴이 이름인 존재죠.
    이 캐릭터의 경우 존재감 없고 소심한 성격에 타인과 교류하는 법이 매우 서툽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삐그덕거리게 되죠.
    결국 치히로 덕분에 안정되지만 그래도 역시나 타인과 관계맺기는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반면 유바바의 아들은 부모의 과보호 속에 타인과 단절된 채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만 행동하죠.
    하지만 치히로와 동행하게 되면서부터 점점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배워나갑니다.
    유바바의 아들과 카오나시를 극단적 양단에 놓고 그 사이에서 치히로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애니의 초반에 보여지는 제멋대로고 자기밖에 모르는 치히로가
    점점 남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배워나감으로써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뭐 그런 주제랄까요.

    여담입니다만 치히로의 부모가 왜 하필 돼지가 되었느냐 하는건
    일본에서는 돼지를 우스꽝스럽고 미련하고 욕심이 많은 동물로 생각합니다.

  10.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5.31 19:09 신고 | PERMALINK | EDIT |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아주 좋은 내용이에요.

    그런데.. 글쎄요.. 님과 저는 바라본 방향이 다른거죠. 저는 말입니다. 도구적이성론과 엘리아데를 사용하여 바라본것이죠.

    그렇죠? 일본문화에 대해서 이해가 깊으신것 같은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반드시 님처럼 그것에 기반해야 할 필요성도 못느끼겠구요.

    원래 평이라는건 말입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볼수있는거랍니다. 님이 적은것 역시 하나의 방향성이구요. 그러니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에 수많은 연구논문들이 생산된는거죠. 그렇죠? 심지어 셰익스피어 작품 연구 논문중에 유교를 사용한 것들도 보인답니다. 다 그런거에요.

    하야오 작품들에 대한 평이 어디 이거뿐일까요? A-Z까지 정말 다튀어나옵니다. 쌓여있는 양이 어마어마하죠. 괜찮은 작품이기에 다양한 이론과 철학을 갖다붙여 보는거죠. 그렇죠?

    센만 하더라도 별에 별게 다있어요. 결국 그쪾과 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고 접근방향이 틀린것이니 틀리니 머니 그런말 할 필요도 없는거에요. 그렇죠? 기표가 일의적 기의를 가진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거죠.


    아무튼 남에 홈피에 이렇게 긴 댓글을 남기는것도 쉽지는 않는데.. 왜 이런걸 본인홈피에 안남기시고 여기다가??

  11. 너돌양

    | 2010.06.06 22:42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이 만화 참 유명하죠. 그런데 난 이 만화 안봤음. 솔직히 일본 애니매이션은 거의 안봤음. 난 일본 락만 들음 ㅋㅋㅋㅋㅋㅋ ㅡㅡ;;아 러브레터는 몇십번 봤다 ㅋㅋㅋㅋㅋㅋㅋ

  12.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7:53 신고 | PERMALINK | EDIT |

    머 엑스재팬?? ㅋㅋㅋㅋ

    우리는 루나씨 좋아함..

    우리는 루나씨 빠돌이 빠순이임..

    내 블로그 image or real 이것도아마

    루나씨 앨범 이름일꺼임..ㅋㅋㅋㅋ

    많은 사람들이 형이상학을 표현한 문장으로 생각하는데..

    현실은 이런거임.ㅋㅋㅋㅋㅋ

  13. 미자라지

    | 2010.06.07 06:40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오늘은 듣보잡이 아니네요?ㅋ
    애니 나오면 방가방가...저도 본거니까..ㅋ

  14.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7:54 신고 | PERMALINK | EDIT |

    방가방가

    햄토리..ㅋㅋㅋㅋㅋㅋ

  15. 펨께

    | 2010.06.07 06:50 | PERMALINK | EDIT | REPLY |

    제 댓글 찾느라 한참 헤멨네요.ㅎ
    헌데 전 이 만화 보지 못했어요.
    망가 잘 보지 않아요.

  16.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7:54 신고 | PERMALINK | EDIT |

    저기 어딘가에..

    한번 보세요.

    요거 되게 잼있어요..ㅎㅎㅎ

  17. LiveREX

    | 2010.06.07 06:59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참 재밌게 봤던 애니네요 ㅎㅎ

  18.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7:54 신고 | PERMALINK | EDIT |

    이만화는 좀 짱인듯..ㅋㅋㅋㅋㅋ

  19. 따뜻한카리스마

    | 2010.06.07 07:01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저도 정말 재밌게 봤던 영화 중 하나인데 이러한 묘미들까지 찾아내시다니 놀랍습니다^^ㅎ
    나중에 꼭 좋은 책으로 출간되길 고대하고 있겠습니다^^ㅎ
    그때까지는 제 책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좀 밀어주세용^^ㅋㅋㅋ
    행복한 한 주 출발하세용^^ㅎ

  20.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7:55 신고 | PERMALINK | EDIT |

    아 아직 다 못봤어요..

    얼렁얼렁 봐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책씨름하는 인생이라..

    빨빨 안봐져요..ㅠㅠ

  21. 머 걍

    | 2010.06.07 07:45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전 이거 못봤지만 너무 익숙할 만큼 유명한 애니네요.
    애니도 한번 보면 헤어나오기가 힘들어서...

  22.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7:55 신고 | PERMALINK | EDIT |

    헉 이건 꼭 보셔야 하는거임. 필수에요..

    안보면 큰일남!!!

    꼭 보세요!~!!!!

  23. ★입질의 추억★

    | 2010.06.07 07:57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헉 용짱님 글 송고 한두시간만에 댓글 124... 덜덜덜;;;;
    그리고 댓글을 다 다시는 열정까지.. 대박입니다.
    센과 치히로는 나름 재밌게 봤어요 ^^~ 인물들의 묘사라던가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 연출, 묘사부분이 인상깊더라구요

  24.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7:58 신고 | PERMALINK | EDIT |

    헐 날짜를 보셔야지요..ㅋㅋㅋㅋㅋ

  25. ★입질의 추억★

    | 2010.06.07 14:15 신고 | PERMALINK | EDIT |

    하하하~ 입질의 추억이 오늘 낚였습니다 ㅋㅋ

  26. 예또보

    | 2010.06.07 08:02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이거 그때 봤던 포스팅 같은데 ㅋㅋㅋ
    센과 치히로 또 볼까싶으네요 ^^
    입질의 추억님 너무 재미있게 댓글 다셨네요 ^^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27.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0.06.07 08:37 신고 | PERMALINK | EDIT |

    아항항..

    이거 다올리고 나면...

    한 두어달 뒤에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새로운 미야자키 하야오 시리즈를!!!

  28. 배리본즈

    | 2010.06.07 08:43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간만에 본 영화의 포스팅을 보게 되는군요.T.T
    즐거운 하루 되세요.

  29. mint1234

    | 2010.06.07 13:18 | PERMALINK | EDIT | REPLY |

    저도 이 영화 참 좋아합니다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서글퍼지는 영화입니다.
    유바바거 이름을 없애버리는데. 저는 왜 일제치하 우리나라사람들
    창씨개명을 종용한 일본이 생각날까요? 일본은 이름에 그사람의
    혼이 들어간다고 믿더군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이부분만큼에서는 씁쓸하긴합니다.
    좋은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30. Phoebe Chung

    | 2010.06.07 16:44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요거 재미나게 본 만환데 이런 어려운 이야기로 헷갈림을 주시네....하하하...

  31. claire1909

    | 2010.07.23 12:08 | PERMALINK | EDIT | REPLY |

    미야자키는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가 최고가 아니였나 싶어요. 정말 수십번은 본 것 같네요...진짜 <센과 치히로...>는 거의 20번은 본듯? 진짜 좋은 영화는 여러번 봐도 새로운 영화있듯.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32. 7월

    | 2010.07.31 21:00 | PERMALINK | EDIT | REPLY |

    얼굴없는 요괴에 대한 해석이 독특하네요~ ㅎㅎ

  33. HaPpy BluE

    | 2012.09.19 16:58 | PERMALINK | EDIT | REPLY |

    정말 해석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 대한 해석이 제일 좋았습니다! 견해가 높으셔요 ^^

  34. 123

    | 2013.06.23 21:00 | PERMALINK | EDIT | REPLY |

    돼지로 변한 이유는.... 탐욕때문이 아닌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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