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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2000), 기억과 존재성의 문제 본문

영 화/00's 영화

메멘토(2000), 기억과 존재성의 문제

유쾌한 인문학 2010. 7. 25.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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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Memento)

이 작품이 제일 처음 발표되었을때의 충격과 공포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10분 이상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설정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극이 보여주는 역순적 진행은 더 충격적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영화는 흑백과 컬러로 각 신들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난다.  그리고 흑백과 컬러는 각각의 시간으로 흘러가는데 흑백은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컬러는 결론부터 역순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에 만나게 된다.

즉 간단히 말해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 구조가 있는데 그 중간을 딱 잘라서 그 끝부분을 극의 제일 마지막에 놓고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흑백으로 하여 극의 처음부터 나오게 되고 중간부터 마지막까지는 컬러로 해서 역순으로 진행되는 식이다.  그리고 흑백과 컬러는 교차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이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완전하게 보고 싶다면 처음부터 일단 흑백부분만 건너뛰면서 시청한 다음 극이 마지막에 가서는 컬러부분만 다시 역순으로 보면 완전한 이야기 구조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런식으로 이야기 구조를 파편화시켜 재조립시키는 방법론은 아마 이영화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짧은 쇼트.  그 쇼트들의 모음이 된다.  즉 카메라가 시작되고 그것이 딱 끝나는 짧은 순간을 쇼트라고 한다면 그 쇼트들이 모여 단일한 시공간으로서 Scene를 이루게 되고 이러한 Scene이 모여 단일한 사건인 시퀀스를 이루게 되는 식이다.  결국 영화의 최소단위는 쇼트이고 각 쇼트를 어떻게 이어붙여서 관객이 쉽게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 핵심이 된다.

한마디로 관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놀란 감독은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할 것을 강요하게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 재조합 할 것을 강요하게 되고 이러한 강요는 수동적 관람이 아닌 능동적 관람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능동적 관람 태도는 영화의 이해에 좀 더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기억과 존재성
뭐 내용을 전반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보이고 간단한 기본 설정만 보자면 극중 주인공인 레너드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상태이다.  기억이 10분이상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장기기억 마저도 사라진건 아니다.  언어를 사용한다거나 운전을 한다거나 그외 일상 사회생활에 근간이 되는 지식들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즉 사고가 생기기 전의 기억은 다 가지고 있으되 사고 이후의 기억은 10분의 단기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자신의 짧은 기억에 의존한채 자신에게 남겨진 최후의 기억인 부인의 성폭행 기억을 확대하고 증폭시키게 된다.  즉 사고 당시 자신의 부인이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기억을 스스로 만들어내게 되고 이 기억의 복수를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위해 메모에 의존한다.  지속적으로 메모를 하고 중요한 정보는 몸에 문신을 새겨서 혼자 수사를 하고 자신의 부인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기억과 주체성의 문제이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서 구성되는 측면이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름, 학적, 직장, 주소, 국적 등등 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하나의 주체가 구성되기 위한 형식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필요한 것이 한 인간이 살아오면서 쌓아올리게 되는 형식적 요소들의 내용적 요소.  즉 기억을 실체적 요소라 할 수 있겠고 바로 이부분이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극중 주인공인 레너드는 이 핵심적인 기억이 생성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레너드라는 사람은 과거의 어느 순간 까지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로서 자신의 과거의 기억이 생각나는 시점까지의 존재와 현재의 나의 부존재가 공존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즉 자신의 마지막 기억인 부인이 강간 폭행을 당하는 장면에서 하나의 경계선이 세워져 존재와 부존재의 공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존이라는 측면이 대단히 중요한데 기본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그는 부존재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누군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부존재를 자기 나름대로 존재화로 바꾸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 바로 의미의 부여이다.  그 의미는 자신이 존재했던 시절의 마지막 기억에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측면 때문에 존재와 부존재가 공존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극중 주인공인 레너드에게 있어 자신의 부인이 강간당해 살해당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복수는 대단히 중요해진다.  자신의 삶의 유일한 이유가 되니깐 말이다.  결국 그는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사실 그녀는 강간은 당했으되 살해는 당하지 않았고 되려 10분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자신 때문에 고통받으며 살아가다 스스로 자살과 비슷한 행동을 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증오의 대상인 존G라는 인물에게 이미 복수가 이루어지고 실제 자신의 부인을 강간한 대상도 역시 살해하였고 그 기록을 남겼음에도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걸 인정해버린다면 자신의 존재의미가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되려 그는 이런 사실을 말해주는 형사를 증오하며 그 형사를 존 G로 만들어버리겠다며 그 짧은 10분동안 다양한 단서들을 메모에 남기게 되고 10분뒤 다시 기억을 까먹게 된다.  그리곤 그 단서들에 의지해 다시 존G를 추적하게 되고 진실을 말해준 형사를 존G로 오인하여 그를 살해하게 된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파편적 기억과 문장의 파편 그리고 영화의 쇼트들
레나드는 모든 것을 기록해둔다.  수시로 메모를 해놓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항상 문신을 해둔다.  그리고 그 짧은 문구에 대한 신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절대로 의심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기록들은 10분이라는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기록들이고 그렇기에 대단히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정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유일한 삶의 목적인 복수를 위해 그 파편화된 문장에 의존하게 된다.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중요정보를 몸에다가 문신을 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이것은 자신의 실존하는 몸뚱아리에 대한 일종의 제의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의 실체이지만 그 몸뚱아리 자체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핵심적인 문구를 자신의 몸에 새김으로써 자신의 유일한 목적을 확인하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을 통해 자신이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제의적 행위인 것이다.  이는 극중에서 나오는 대사의 하나로 확인할 수 있는데 "눈을 감고 있더라도 세상은 존재한다"  이 대사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이러한 파편화된 기억과 문장의 파편에 의존하는 행위는 라캉의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거울 단계 이전의 파편화된 자신과 동일시 할 수도 있다.  라캉의 정신분석에서 거울단계라는 것은 자아가 생성되는 핵심적 단계이며 그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통해서 자신의 완전한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그것은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한계점과 그 한계점으로 인해 소외가 발생하긴 하지만 이 시점에서 자아가 발생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거울단계 이전은 어떠한가?  그 이전 단계의 유아기시절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통제할 수도 없는 파편화된 경험에 근거하게 되고 이때는 자아와 주체도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할때 이는 바로 극중의 레나드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더 짚어보자면 파편적 기억과 문장이 가지는 상징성과 영화의 쇼트의 관계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최소단위의 쇼트들의 집합체이다.  각기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시각에서 촬영된 쇼트를 잘 편집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는바 이러한 편집은 분열되고 파편화 된 것들을 모으는 기술에 다름아니다.  그렇기에 똑같은 쇼트를 가지고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내용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부분을 연구한 것이 바로 러시아의 몽타주 기법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영화에서의 편집은 관객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 즉 인지하기 쉬운 편집을 보여주게 되고 그를 통해 관객은 극에 몰입하게 되면 쇼트의 분할들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몰입감은 바로 통일적 이미지.  즉 위에서 언급한 거울단계의 이미지와 동일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파편화된 신체의 경험과 파편화된 쇼트의 완전한 이미지로의 결합이니 말이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 편집을 아주 독특하게 나열하게 된다.  이는 극중 주인공인 레나드가 가지는 경험과 영화적 장치의 일치를 의미하게 된다. 


마무리
정말 최고의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 나름대로 많은 부분을 짚어내어보았지만 아마 나보다 더 깊은 레퍼런스를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짚어낼 수 있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품이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고의 다양화와 가늠하기 힘든 깊이에의 향연이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아직 영화를 안보신 분이 계신다면 꼭 한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있게 외친다.  10점 만점에 20점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그리고 왜 영화가 예술인가를 잘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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