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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천시의 실체는 무엇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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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천시의 실체는 무엇인가?

유쾌한 인문학 2011. 1. 2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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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질문을 던져보겠다.  1. 만약 상위 30프로 대학들이 전부다 영어 강의를 행하고 그 수업들이 진정으로 의미있게 이루어진다고 가정하자.  여러분들이 거기 학생이라고 했을때 바깥에서 영어를 쓰시겠나? 한국어를 쓰시겠나?  질문을 조금 바꿔 볼까?  2. 당신의 자녀가 저 상황이라면 한국어를 쓰게 하겠나?  영어를 쓰게 하겠나?  질문을 좀 더 확대해보겠다.  3. 현재 한국의 많은 고졸 이상의 사람들이 생활영어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해보자.  당신은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쓰겠나?  한국어를 쓰겠나?  

부족이 아닌 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상당한 수준의 경제 규모를 이룬 상태에서 상당한 기간의 역사까지 가진 국가 중에서 자국어를 가장 천시하는 나라는 어디도 아닌 바로 한국이다.  한국에선 오직 두가지 언어만이 존재하는데 귀한 언어인 영어와 천한 언어인 한국어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민족주의에 거의 미쳐 돌아가는 나라 치고는 대단히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말과 글을 구분 못한채 자국어에 대한 거의 광적인 찬양을 해대는 나라치고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건 대단히 웃기다고 해야 할까? 


영어가 도대체 무엇인가??  영어는 언어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것도 아닌 그냥 언어일뿐이다.  영어는 도대체 왜 배워야 하는건가??  그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두가지 이유밖에 도출되지 않는다. 첫째 의사소통. 둘째 학문어로서의 영어습득.  둘째도 궁극적으론 의사소통에 포함된다.  결국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의사소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욱이 학문어로서의 측면을 보더라도 우수한 학적 토대가 오직 영미에서만 도출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현대 한국 철학만 보더라도 프랑스의 영향권아래에 심각하에 경도된채 놓여있는 상태인데 프랑스인들은 자국어로 철학을 하지 영어로 하진 않는다.

국가가 가지는 인적자원의 경쟁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건가?  그 경쟁력이 영어에서 나오는건가??  영어에서 나온다면 일본, 유럽의 수많은 국가들은 무슨 공중에서 떨어져온 외계의 국가들인가??  작년이었던가?  일본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학자가 아주 독특한 말을 했는데 그는 영어를 하나도 할줄 모른다고 했다.  오직 일본어로만 연구했고 그정도 성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결국 인적자원의 경쟁력은 우수한 학문적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다.  국가내에서 학적 체계를 어떻게 수립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가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번역문화가 어마어마하게 발달되어 있다.  오랜 연구와 토의를 거쳐 개념어를 선택하고 번역하여 학적 토대로 삼는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특정 철학자의 저서를 번역한다고 했을때 그 철학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영어만 할줄 안다면 그냥 번역이 맡겨진다.  이게 현실이다.  원전번역?  그건 가뭄에 콩나듯이 생겨나는 우연한 일일뿐이다.

만약 정말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한국어는 그 존립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영어로 중고등수업을 다 알아들을수있게 그 진행에 무리가 없다면 한국어를 왜 굳이 유지해야하겠는가??   이는 영어사용자와 한국어사용자의 계급이분화와 더불어 한국어사용자의 실질적 천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높다.  지금 현 상황은 말로는 그래도 한국어가 중요하다고 우기고는 있지만 그 기반마저도 무너진다는 점이다.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당장 처음의 2번 질문으로 돌아가서 답변을 해보시라.  거기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출처는 정확히 될 수 없지만 어디선가 본 것인데 프랑스에서는 외국인 교수를 고용할때 내세우는 조건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국어로 수업이 가능하도록 스스로 프랑스어를 배우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능이나 한일인가? 회화수업 목적이 아닌 외국인 교수 초빙하면서 일정 기간내에 한국어로 수업가능 조건을 내건다고 하면 다들 비웃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 프랑스는 그렇게 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만큼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가치관이 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라는 국가는 민족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나라이다.  국가 전반으로 전체주의적 사고관을 경멸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나라가 보여주는 저 태도와 민족주의에 미쳐 쪄든 한국이 보여주는 대립적 태도는 대단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더 재미있는건 이런 말을 하면 그냥 영어 공부 열심히 하라는 반응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게 어렵냐?는 식인데 대단히 아쉽게도 딱 여기까지 한국인의 인식수준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다들 인정하다시피 이나라에선 영어는 분명 귀한 언어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해져보는건 어떨까?  이중국어도입 말이다.  이런 말을 던지면 또 다들 비난하기 바쁘다.  이건 정말 표리부동의 극치라고나 할까.  귀한 언어로서의 영어도 중요하고 한국어의 유지도 중요하다는 식인데.  그렇다면 이러한 표리부동의 근간에 위치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비투스이다. 
이는 하나의 구별짓기의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아주 대단한 고급문화라고 생각하는 오페라나 발레 그외 현대 미술등의 감상등은 사실 일정한 문화적 코드에 익숙해져야 함을 전제로 한다.  문화적 코드 그 자체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왠만해선 즐기기 힘든 그런 양상의 문화들이 바로 저러한 것들이다.  저러한 문화적 코드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착취라고 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귀족들이 대부분 향유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착취에서의 자유로움은 지배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다.  이는 문화적 코드에 의한 지배 문화의 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코드는 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교육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러한 문화적 코드의 위치에 바로 언어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즉 착취라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자들이 선택한 구별짓기가 바로 언어의 선택인 것이다.  언어 습득의 가장 빠른 길은 유학이고 이는 일정정도의 경제력이 받침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경제적 이해관계에서의 자유로움이 지배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잇는 원동력이라면 거기에서 나오는 문화적 코드가 바로 영어가 되는 것이다.  사실 정말 독특한 현상인데 비슷한 현상은 과거 영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영국에서 잠시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을때 그들은 프랑스어를 고귀시하고 영어를 천시하는 현상이 생겨나게 된바 전형적인 아비투스이다. 

사실 이는 한국내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어 내에서도 우열의 관계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경기지역을 중심으로한 억양과 표준어의 조합이 바로 귀의 위치에 속하게 되고 그외의 억양과 단어들은 열의 위치에 속한다는 점이다.  표준어 정책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한국의 표준어 정책은 언어의 우열을 성립하게 하였고 그로 인해 열의 위치에 속하는 언어들은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이미 엄청나게 많은 단어들이 사라졌고 급기야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유네스코, 제주어 '소멸 위기의 언어'로 등록   실제로 부산지역의 많은 젊은 부부들은 자녀에게 부산 억양을 못쓰게 강요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경기 지역 이외의 억양은 천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내에서도 이런 현상이 생기는데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어제 나온 세가지 기사를 살펴보자. 

부모의 경제력, 자녀의 '성적'에 결정적 영향준다   
온종일 “Speak in English”…당신은 한글맘? 영어맘?
치솟는 물가… 폭발직전 가계빚… "성장 발목 잡을 최대 복병"

보통 이런 기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될놈은 되고 안될놈은 안되고 식으로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인듯 보이지만 결국은 포인트를 한참 벗어난 말이다.  핵심은 무엇인가?  경제적 이해관계에서의 자유로움이 지배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의 언어이다.  이걸 이해 못한다면 허구헌날 될놈 타령하면서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없이 요모양 요꼴로 그래도 나아가지 않을까 판단된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면 너무나도 쉽게 하는 말들이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대안이라..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무슨 대안타령인 것인지?  좋다 그럼 한번 말해보자.  흔히 나오는 대안들을 살펴보자면 입시 방법을 바꾸면 해결이 날까?  안된다.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면 해결이 될까?  이말은 이중국어 도입과 다를바가 없다.  사실 저러한 부분의 변화는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한 사회는 아주 정교한 유기체와 같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사회는 그 자체로서 살아있는 생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즉 자기조직화된 사회로서의 준 생명체적 성격이다.  인간은 엄청나게 많은 단일 세포들의 조합인바 이 세포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개체성을 가지게 되고 인간의 내부구성요소인 세포들의 상호작용으로 하나의 조직화 능력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해 인간이 유지된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조직화에서 핵심은 자립적 개체와 이들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질서혹은 패턴이다.  이러한 자기조직화를 생명의 핵심으로 본다면 넓게 보아 사회도 준생명체로서의 실질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부분의 변화는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대단히 힘들다.  핵심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움직이는 본성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한국인 스스로 행하는 자신의 낯설게 보기이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한발떨어져서 낯설게 본다면 그 실체가 뚜렷하게 보인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전체적인 본성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땜방질도 효과를 가지기는 대단히 힘들다.  작은 변화는 본성이 자신에게 맞도록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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