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주의

윤리에 있어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의 대립양상은 그 역사가 꽤나 오래된 논의 중 하나이다.  오늘날에는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있기도 한 상대주의는 그 안에서도 내가 아는것만 대략 3가지 정도의 분류가 있을 정도로 그 양상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일단 상대주의가 발전하게 된 이유는 대단히 간단하다.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에서 시작된 인간 중심의 주체성 철학은 독일 관념론을 통해 완성이 되고 그렇게 중심에 선 인간 정확히는 서양인은 합리성과 이성이라는 미명하에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객체들을 향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흑인이나 이교도인들은 인간 취급을 안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그들의 문화도 그리스도교도 아닌데다 지나치게 원시적이다 판단하여 계몽의 대상으로 취급하게 된다.  그를 통해 발생하게 된 폭력에 대한 반성이 바로 상대주의의 핵심이다.  즉 자민족 중심 또는 자문화 중심적 태도가 가져온 특정 문화 또는 사회에 대한 혼란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상대적 관점이 널리 퍼져 대단히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대적 관점은 크게 봐서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주관적 윤리 상대성과 규범적 윤리 상대성이다.  



주관적 윤리 상대성

이는 아주 극단적인 견해인데 윤리란 가치나 문화의 문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는 견해이다.  간단히 말해 내가 좋다고 느끼면 그건 윤리적인 것이고 내가 안좋다고 느끼면 그건 비윤리적인 것이다.  즉 도덕원리는 개인이 수용 한 것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식이다.  이런식의 논리로 나아가면 연쇄 살인마 같은 사람도 도덕적인 사람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해 확신과 나름의 논리성을 가진채 행하였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은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수 밖에 없는데 예컨대 살인마가 자신을 사형시키려는 판결에 대해서 항소를 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 즉시 자신의 논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즉 반대로 보아 사형을 시키려는 의지도 주관적으로 봤을땐 도덕적인 것이 되니 말이다.  이렇듯 윤리의 문제는 논리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논리라면 도덕은 취향의 문제가 되고 마는데 이러한 주관적 상대성은 많은 경우에 있어 논리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더 간단한 예로 시험을 들어보자면 어떤 학생이 주관적 상대성을 신봉한다고 답안지를 썼다고 해보자.  그럼 채점을 하는 입장에선 주관적 상대성의 입장에서 아무리 그 답안이 훌륭하더라도 0점을 주면 그뿐이다.  그럼 그 학생은 그걸 받아들이는게 논리적으로 맞는 것인데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결국 이러한 입장은 지독한 유아론에 입각한 견해로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관례적 윤리 상대성

주관주의가 가지는 이러한 문제점은 자연스럽게 상대성 안에 어느 정도의 규범성을 추구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대주의의 원형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 "도덕 원리는 특정 사회의 문화적 수용에 의해 정당화 된다"는 식이다.  즉 보편적으로 타당한 도덕원리는 존재치 않으며 문화에 따라서 상대적인 특성을 가진다고 보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의 이성적 합리성과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며 타 문화에 대한 관용적 태도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규범적 상대성은 크게 두가지 논리를 가지게 되는데 첫째는 다양성 둘째는 의존성이다.  다양성 논리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은 사회와 문화에 따라서 다르기에 시대불문 모든 사회와 문화에 적용되는 보편적 도덕성을 정초할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논제이며, 의존성 논리는 모든 도덕적 판단은 그 문화의 수용여부에 의해 타당성이 도출된다는 논제이다.  결국 이 두 논리를 따른다면 우리는 문화적으로 결정되어진 존재이면서 그러한 결정되어진 존재는 문화의 수 만큼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논리는 같은 문화 또는 사회 내에서도 차이점을 드러낼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공간 안에서도 지배층과 노동층, 지식층과 비식자층, 기술자와 예술가 등등이 같은 것을 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같은 사회라도 시간적 흐름에 따라서 그 문화가 수용한 규범성이 약간씩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노예제를 바라보는 태도,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 이혼을 바라보는 태도 등등에서 확인이 가능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 문제를 논할때 개고기라던지 이런 식의 식문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부분 보다는 현재 지구촌사회에서 보편적 도덕이라고 여겨지는 문제에 다다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여성 할례와 관련된 문제를 보자면 상대성을 주장하면서도 이문제에는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곤 한다.  하지만 상대성을 그대로 유지하자면 거기에 대한 어떠한 비난도 가해져서는 안된다.  규범적 상대성은 상대적 관용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인류학자들은 그것에 대한 비난을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비난을 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은 어떠한가?  이 또한 그 당시의 독일 사회가 문화적으로 수용하였다면 정당한 행위로 귀결된다.  결국 지나친 상대성은 핵심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는 행위도 한사람이 하면 야만이지만 사회 전체가 꽤나 긴 시간을 행한다면 그건 문화가 되고 옹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점으로는 문화나 사회라고 하는 것의 개념정의가 굉장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 사회에서는 이는 더욱 모호해진다.  하다못해 같은 유교문화권이라 하더라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분명히 다르지 않는가?   같은 한국 사회 안에서도 각기 다른 종교에 의해 다른 작은 문화가 형성될 수도 있다.  한 인간은 여기에 속하기도 하면서 저기에 속하기도 함으로써 작은 문화들 안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영화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데 외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남미 그리고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마야인과 표범발 부족은 같은 문화권 즉 같은 신화적 배경 아래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들이 무작정 같다고 보기엔 애매한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표범발 부족이 끌려갈때 강을 건너는 장면이 있는데 한 여성이 신에게 기도를 하게 되고 그때 나오는 신의 이름은 이슈첼이다.  이슈첼은 마야 문명에서 달의 여신을 칭한다.  동료가 죽을때는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해주는데 이는 표범발 부족이나 마야인이나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표범발 부족이 자신들의 죽음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가?  결국 같은 신화적 문화권 아래에서도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차이점을 드러내게 되고 큰 사회가 적용하고자 하는 상대적 도덕은 작은 사회의 입장에서는 폭력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이런식이라면 더 작은 집단을 만들어 어떤 행위에 대한 도덕적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며 결국 이는 주관주의로 흐르게 될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상대성이 가지고 있는 관용이라는 생각조차도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즉 어떤 사회가 관용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타 문화가 가지고 있는 상대성에 대해 관용을 할 필요가 없다.  그 또한 상대적이니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

중세에 인간을 지배하던 원칙은 신과 자연법이다.  신이 창조한 세상 모든 만물은 신이 창조할 당시에 부여한 나름의 목표가 있으며 만물은 그 신의 섭리에 따라서 그 존재 의미를 찾아가게 되며 이러한 신의 섭리는 신의 지혜로서 영원법이라 칭하며 신에 의해 창조된 만물은 영원법 종속된다.  신의 창조원리에서 인간은 약간 독틀한 지위를 가지게 되는데 인간은 다른 생물과는 달리 이성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 역시 신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이기에 창세 당시에 신이 부여한 소명과 전우주적 신적 섭리에 의해 종속 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 역시 신의 창조물이기에 이러한 신의 창조 의지와 영원법에 따르게 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즉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측면에 의해 수동적인 입장이 아닌 능동적인 입장에서 영원법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듯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활용하여 능동적인 측면에서 신의 의지에 참여하여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자연법이다.  이러한 자연법은 인간 이성에 의해서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보편 타당한 도덕법으로 아퀴나스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사고관이다.  반면 인간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실정법은 각기 다른 사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으며 실정법은 자연법에 근거를 두게 된다.  정리하자면 영원법 - 자연법 - 실정법의 순으로 논리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이 이성에 의해서 발견하는 자연법에는 크게 보아 세가지 핵심적 사고관이 존재한다.  첫째는 인간 본성이다.  인간 본성은 결정되어진 것으로서 신에 의해 부여된 목적을 따르도록 운명지어지게 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은 크게 보아 세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인간은 하나의 개체적 존재로서 자기를 보존하려는 본성이다.  ② 하나의 동물로서 동물이 가지는 공통적 경향 예컨대 성욕, 수면욕, 식욕 따위의 본성을 가진다.  ③ 인간은 이성을 부여 받은 존재로서 이성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려는 본성도 가지게 된다.  자연법이 가지는 두번째 특징은 이성이다.  신의 지혜인 영원법이 인간에게 작용한 결과 인간은 이성이라는 자연의 빛을 부여받게 된다.  동물은 이성이 없기에 영원법에 따르는 것이 필연적이지만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법을 이해하고 자연법을 각각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신은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함으로써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하였고 이에 자연법을 따르고 추구하여 신의 의지를 완성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게 된다.  자연법의 세번째 특징은 의지이다.  인간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존재이다.  이에 인간에게는 어느정도의 자율성이 부여되고 이 자율성에 따라 인간은 도덕적 주체가 된다.  더욱이 이 세상은 신이 만든 세상이기에 만물은 신의 의지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성을 가진 인간은 신의 의지에 참여하여 도덕적 주체로 설 수 있게 된다.  결국 정리하자면 실정법은 그 근거를 자연법을 찾곤 하지만 자연법은 그 근거를 신의 의지에서 찾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중결과의 원리

위의 자연법의 원리 안에서 이중 결과의 원리를 통해 행위의 옳고 그름에 있어서 절대성을 추구하게 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에 의해 이성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합리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자연법은 지나치게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가지기에 부적절한 측면이 존재한다.  이에 아퀴나스는 예외가 없는 이론을 이성을 통해 정립함으로써 도덕적 딜레마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옳은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이중 결과의 원리란 하나의 행동이 가져오는 딜레마적인 두가지 결과에 대한 절차적 이론이다.    


조건1  행위는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이거나 도덕과 무관한 중립인 행위이어야 한다.

조건2  나쁜 결과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된다.

조건3  행위자의 의도가 나쁜결과가 아닌 좋은 결과에 있어야 한다.

조건4  나쁜 결과가 허용되는 경우 불가피한 중대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중결과의 원리 하에서 직쏘의 행동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조건1을 충족하지 못하고 조건2 역시 충족하지 못한다.  조건3은 예컨대 한 사람을 죽이면 세상이 구원되고 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했을때 그 사람을 죽인다면 그 나쁜 결과는 의도된 것이기에 허용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보면 나름대로 직쏘는 명분을 내세우며 그들에게 죽음의 게임을 유도하곤 하지만 결국 그 명분 역시 조건3을 충족할 수 없기에 허용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결과의 원리는 여러가지 문제점도 가지게 된다.  첫째로 행위자가 명확히 의도를 가진채 행한 행위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예컨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대로 직진을 하면 5명을 치여 죽이게 되겠지만 옆으로 꺽으면 1명이 죽는 상황이다.  이때 공리주의자들은 당연히 꺽는 것을 주장하겠지만 이중결과의 원리에 의하면 그대로 직진을 해야 한다.  조건2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행위자가 옆으로 꺽는 행위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도에 있지 않았기에 조건3이 위반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가 그러한 의도와 무관하다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두번째로는 기술의 문제가 있다.  의도된 도둑질을 행하면서 기술하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를 원했다는 식으로 재기술 할 수 있는 문제가 존재한다.  세번째는 넓게 보아 절대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인데 인간 본성을 목적론적으로 바라보아 신으로 부여받은 계획에 따라 운명주어졌다고 바라본다면 자연스럽게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 된다.  이러한 관점 하에선 인간에게 부여된 목적으로서의 출산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난 동성애는 그른 것이 된다.



절대주의

절대주의적 윤리관은 크게봐서 절대주의와 보편주의 두가지로 나뉠 수 있다.  절대주의에 따르면 절대적이라고 하는 규범은 그 어떤 예외도 갖지 않는다.  예컨대 약속을 절대로 어겨서는 안된다는 규범이 있다면 사람을 살해하기로 한 약속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반면 보편주의는 절대주의와는 달리 보편적인 규범을 받아들이되 예외를 인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살인을 하지 말라는 명제는 절대주의와 보편주의 양자 모두에 타당하며 선한 행동이 된다.  하지만 강도가 들어 우리 가족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을때 가족을 구하기 위해 강도를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주의의 입장에서는 이 또한 비윤리적인 행동이 된다.  그 어떤 예외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주의의 입장에서는 이는 허용이 가능하다.  보편주의의 입장에서 예외를 허용하는 이유는 예외들 그 자체에 보편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당방어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인을 하지 말라'라고 했을때 이렇게 서술된 규칙은 예외를 포함하게 된다.  결국 정당화하는 상황조차도 미리 규정한채 모든 인간에게 보편성을 부여한다면 이는 보편주의자가 된다.  보편주의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을 놓고 그위에 규범을 정초시키는 체계이다.  만약 모든 예외적 상황을 완벽하게 그 어떤 예측불가능한 예외도 없도록 예상하여 규칙을 정한다면 이는 절대주의 및 보편주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편주의는 윤리적 상황주의로 바라볼 수도 있다.  상대주의와 비슷하게 보여 착각하기도 하는데 윤리적 상황주의는 객관적인 도덕원리는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된다는 태도이다.  즉 하나의 목적이 부여되었을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상황에 따라 다른 수단이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상위의 보편적 목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신에 의해 주어진 의무로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있다.  안식일에는 그 어떤 노동도 행해져서는 안되며 신에게 경배하는 시간으로 오롯이 돌려져야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밥먹이기 위해 안식일에 노동을 하여 의무를 행하지 않은 적이 있다.  이에 사제들이 예수에게 비난을 가하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게 된다.  안식일의 목적은 인간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에 있으며 그에 대한 감사로서 신에게 경배를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된다.  이에 제자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안식일에 노동을 하는 자신의 행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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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 2012.09.03 08:46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살짝 윤리시간에 공부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ㅎ

  2. 여강여호

    | 2012.09.03 20:04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요즘 어찌어찌한 이유로 철학책을 들춰보고 있는데 첫장부터 나온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로 그야말로 패닉 일보직전이었는데 너무도 쉽게 설명해 주셔서 뭔가 잡히는 듯 합니다.

  3. 안용태 용짱

    | 2012.09.05 12:27 신고 | PERMALINK | EDIT |

    음 윤리책 보시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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