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발 레/무용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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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발레단마린스키 극장은 제정러시아시대의 수도인 상페테부르크에 위치한 발레단이다. 구소련 당시에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도시이며 이 발레단은 그 역사가 황실극장 발레단에 자리매김하게 된다. 구소련 시절에는 키로프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가 구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재도약 이후 다시 마린스키라는 이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보통 키로프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리는바 같은 발레단으로 생각하시면 된다.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발레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차이코프스키라는 걸출한 작곡가 그리고 마리우스 프티파라는 천재 안무가의 영향을 들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발레를 향한 러시아 국민들의 열광이다. 그곳에선 춤을 잘추면 국민적 영웅이 된다. 어느정도냐면 구소련 당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수진 한국에선 가히 발사진 하나만으로 신적인 존재에 이른 본좌중에 본좌이지만 정작 한국사람들은 강수진의 발사진에만 감동 받았을뿐 그녀의 공연을 통해서 감동을 받은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일까? 아주 간단하다. 전막공연을 한적이 없으니깐. 그녀가 소속해있는 슈트르가르트발레단은 그어떤 영상물도 내지 않는 저작권에 있어서 극 보수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발레단이고 이는 그곳의 전설적인 안무가 존 그랑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강수진을 못본다는 것의 의미는 정확히 말해 존 그랑코의 안무를 못본다는 것이고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슈트르가르트 발레단의 공연을 못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수진의 무용세계에 대해서 정작 한국인들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잘한다 잘한다 말만 들..
강수진 한국에선 발사진 하나만으로 가히 신적인 존재에 이른 전설이지만 정작 한국사람들은 강수진의 발사진에만 감동 받았을뿐 그녀의 공연을 통해서 감동을 받은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의 세계적인 스타이지만 정작 이땅에서는 그녀의 전막 공연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녀가 소속해있는 슈트르가르트발레단은 그 어떤 영상물도 내지 않는 저작권에 있어서 보수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발레단이고 이는 그곳의 전설적인 안무가 존 그랑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강수진을 못본다는 것의 의미는 정확히 말해 존 그랑코의 안무를 못본다는 것이고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슈트르가르트 발레단의 공연을 못본다는 것이다. 강수진의 행보는 한국 발레의 초기 역사와 거의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국인 최초 국제..
Marie Taglioni 1804년~1884년. 탈리오니는 낭만발레 스타일의 확립자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 발레리나 중 한명으로 아버지 필리포 탈리오니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녀의 주된 특징은 우아함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예절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채 가벼운 몸놀림으로 마치 요정과 같은 추상성을 발레에 부여한 그녀는 현대 발레리나의 어떤 확립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된다. 낭만주의의 주된 특징중 하나인 규칙으로부터의 탈피, 감정의 향유 그리고 혁명과 전쟁으로 얼룩진 삶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도피적 성향. 이러한 시대상황은 결국 발레리나를 천상의 인물같은 요정같은 느낌으로 환상적인 존재로 만들게 된다. 이런 요정과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중력을 거부하는 테크닉이 발달하게 된다..
Svetlana Zakharova 1979년 6월 10일 생으로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발레리나이다. 키예프 발레 학교를 졸업한후 바가노바 발레학교 콩쿨에 입상하여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바가노바 발레학교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부속학교로서 러시아 발레의 산실이라고 볼 수 있는 세계최고의 학교이다. 어느정도냐면 단순히 재능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신체조건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신체가 변할것인가 이부분까지 예측하여 학생을 선발한다. 그 학교의 아주 유명한 말을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름답지 않은 신체에 담긴 재능은 재능이 아니다" 자하로바는 이 학교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드러내어 월반을 해대며 수석으로 졸업한다. 1996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하고 1년뒤에 프린시펄로 승진한다. 이렇게 ..
Margot Fonteyn 영국이 낳은 위대한 발레리나 중 한명이다. 생몰은 1919.5.18~1991.2.21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아시다시피 상당한 미인이다. 보통 발레 하면 사실 러시아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고 모든 면에서 러시아를 따라간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에서 러시아의 발레리나들 못지 않은 발레리나가 탄생하니 그녀가 바로 마고트 폰테인이다. 40년 가까운 꽤나 오랜 시간을 활동하게 되는데 보통 발레리나들이 30대를 넘어서면 모든 면에서 한계를 느껴 은퇴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녀는 58세까지 버티게 된다. 물론 중간에 위기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40세즈음되어 그녀는 더이상 발전이 없는 제자리걸음을 하는듯한 자신의 모습에 한계를 느껴 은퇴를 결심하게 되는데 바로 그..
Anna Pavlova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중 한명이다. 생몰은 1881~1931년이다. 러시아 황실 발레단과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에서 프린시펄로 활동하였다. 파블로바가 발레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된 계기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된 프티파 안무의 잠자는 공주를 통해서이다. 8세 경에 황실 발레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고 마리우스 프티파에게서 수학하게 된다. 엄격한 교육을 거친 파블로바는 1898년 18세가 되던 해에 마린스키 극장으로 소속되어 코드 발레로 활동하게 된다. 사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위대함은 황실 발레 학교의 엄격한 교육과 그곳에서의 경쟁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되겠다. La Camargo, Le Roi Candaule, Marcobomba, The S..
Sylvie Guillem 1965년생 프랑스출신의 발레리나로 현존하는 최고의 발레리나중 한명이다. 현 시점에서 Sylvie Guillem과 맞먹을 수 있는 발레리나는 니나 아나니아쉬빌리 정도가 있을 것인데 현재는 둘다 은퇴시점이라 활발한 활동을 하진 않는다. 처음엔 체조로 운동을 하다가 발레로 전향한 케이스이다. 상당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일단 파리 오페라발레단에 누레예프가 있던 시절 그의 눈에 띄어 19세에 단번에 에뜨왈이 된다. 19세에 에뜨왈이 된다는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후 그녀는 좀 더 다양한 레파토리를 위해서 다른 발레단에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누레예프에게 요청하는데 거부당하게 되자 영국 로열발레단으로 이적해버린다. 이 사건은 꽤나 큰 파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