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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발레의 상징, 마고트 폰테인 본문

발 레/무용수

영국 발레의 상징, 마고트 폰테인

유쾌한 인문학 2011. 11.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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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ot Fonteyn
영국이 낳은 위대한 발레리나 중 한명이다. 생몰은 1919.5.18~1991.2.21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아시다시피 상당한 미인이다. 보통 발레 하면 사실 러시아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고 모든 면에서 러시아를 따라간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에서 러시아의 발레리나들 못지 않은 발레리나가 탄생하니 그녀가 바로 마고트 폰테인이다. 40년 가까운 꽤나 오랜 시간을 활동하게 되는데 보통 발레리나들이 30대를 넘어서면 모든 면에서 한계를 느껴 은퇴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녀는 58세까지 버티게 된다. 물론 중간에 위기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40세즈음되어 그녀는 더이상 발전이 없는 제자리걸음을 하는듯한 자신의 모습에 한계를 느껴 은퇴를 결심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 20대의 누레예프를 만나게 된다. 둘의 만남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누레예프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은 그녀는 제2의 전성기를 40대에 누리게 되고 실로 놀라운 파트너쉽을 이루어내게 된다.

혹자는 폰테인이 은퇴하지 않은 이유로 남편의 치료비를 들기도 한다. 남편의 치료비라. 무슨 말일까?  폰테인하면 정말 유명한 남편과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폰테인 나이 17세에 그녀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파나마인 남성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음에 그를 담고는 있지만 큰 관계의 진전이 없던 상황에서 그는 갑작스럽게 파나마로 돌아가게 되고 1년뒤 다시 만나지만 그녀는 그를 기다렸으되 거부하게 된다. 그뒤 17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때 이미 그는 세아이의 아버지인 상태이다. 폰테인은 여전히 미혼이고 말이다. 그러다 그때 그는 이혼을 하게 되고 따라서 두 커플은 결실을 보게 된다. 그때가 1955년이다. 하지만 1964년 그녀에게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지니 남편의 피저격소식이다. 하반신 마비가 되어버린 남편을 보살피기 위해 그녀는 58세까지 무대위에 오르게 된다.




로열 발레단 당시 발레 뤼스의 해체로 인해 유럽 발레 전반에 위기가 싹트는데 당시 로열 발레단의 안무가인 프레데릭 애쉬튼과 함께 다양한 안무를 만들고 로열 발레단의 레파토리로 살아남아 로열발레단을 위대한 발레단으로 발돋음하게 만든다.  누레에프와의 만남과 파트너쉽과 누레예프가 전해주는 러시아 발레의 전수는 유럽과 미국 발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혹자는 폰테인을 일컬어 위대함을 획득한 발레리나라고 표현하는데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 판단된다.  사실상 서방 발레 발전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인물이고 가장 위대한 시기를 자신의 은퇴시점을 넘어섰을때 보여주게 되니 어찌 대단하지 않다 할 수 있을까?





위의 영상은 누레에프와 폰테인의 백조의 호수로 65년도 공연이다.  누레예프의 백조의 호수는 기존의 프티파의 백조의 호수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게 되는데 위의 안무는 소위 말하는 비엔나 백조의 호수라고 부르는 안무이다. 64년도에 빈 국립 발레단과 함께 처음 개정안무가 올려지게 된다. 64년도 백조의 호수는 당시 26세인 누레예프와 47세인 마고트 폰테인과 함께 오른 무대로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관객으로 부터 89차례의 커튼콜을 받게 된다. 그 이후 66년 10월 15일에 마고트 폰테인과 빈에서 다시 연기를 하게 되는바 이것이 현재 영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뒤 다시 이 안무는 수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주고 많은 변화가 생긴 이후에 현재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의해서 올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재미있는건 66년도 당시의 작품과 현재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안무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엔나 백조의 호수와 파리의 백조의 호수는 별개의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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