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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인 더 워터(2006), 소통의 단절과 동화적 사고로의 회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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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인 더 워터(2006), 소통의 단절과 동화적 사고로의 회귀

유쾌한 인문학 2010. 9. 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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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인 더 워터(Lady In The Water)

샤말란 감독의 6번째 작품이다.  2006년에 공개된 작품인데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완벽하게 망한데다가 아마 샤말란 작품중에서 평도 가장 안좋은 영화일 것이다.  국내에선 홍보를 무슨 잔혹 동화라는 식으로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하였는데 그 주된 이유는 같은 시기에 개봉한 판의 미로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며 아마 많은 관객들이 판의 미로와 같은 작품을 생각하고 관람하였다가 더 큰 실망을 한걸로 보인다.  

극중에서는 한국 사람도 등장하고 기본 이야기가 한국의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저런 동화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야기도 처음 들어보는데다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슨 게임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파티맺고 사냥하는 기분?  뭔가 업하는 기분?  특히 마지막에 나타난 그 원숭이 비슷한 생물체는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06년도에 그것도 샤말란 정도되는 감독이 그런 허접한 쌍팔년도에나 등장할법한 분장을 한채 내보낸다는것이 사실 대단히 이해하기 힘들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악평의 원인
이영화에 쏟아지는 대부분의 악평은 극중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태도에 존재한다.  자 어느날 요정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다음날 남자주인공은 자신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서 왠 전래동화를 듣게 되고 그 전래동화를 갑자기 나타난 여자아이에게 그대로 대입시켜 요정이라 믿게 된다.  전래 동화에 푹 빠져든 그는 그 이야기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아파트 사람들에게 전래동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럼 아파트 사람들은 그걸 또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은채 저 요정을 집에 보내기 위해 뭉치게 된다.  

상식적으로 이 과정이 대단히 어처구니 없다고해야 할까?  밑도 끝도 없이 믿는 태도도 웃기지만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나타나는 합리화 현상.  즉 자신들은 이 동화가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대사들이 상당히 우습다.  결국 이지점에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가 도출되게 된다.  극중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저런 어처구니 없는 대도를 보고 비웃는 사람들과 한편으론 저런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라는 행위 그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둘중 하나인 것이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동화적 사고관으로의 회귀와 관계의 측면
그렇다면 후자의 사람들이 흔히 보여주는 호평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는 신화적 사고관에 대한 향수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근대 합리주의가 점점 이사회의 주류가 되고 이성적 사고관이 널리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는 신화적 사고를 사회전체가 가지는 내면에 억압시키게 된다.  이른바 이성의 신화에의 억압이다.  뭐 이성에 의한 상상의 억압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를 발전시키게 된다.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재화가 풍성해지게 되고 인간의 삶은 과거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나아지게 된다.  사실 절대적 빈곤에 빠져드는 사람이 상당수 줄어든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속에서는 너와 나를 구별짓기 위해 물욕이라는 욕망이 싹트게 된다.  과거에는 생존 그 자체로 구별짓기가 가능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물질적 가치로 구별짓기기 이루어지니 말이다.  

결국 이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라는 설정과 그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비주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라는 것은 신화적 사고에 대한 일종의 향수라고 볼 수 있겠다.  뭐 아이적 사고관으로의 회귀를 꿈꾼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이러한 신화적 사고관이 잘 나타나는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면 호메로스의 시를 들 수 있겠다.  돌을 던지길 원하면 반드시 바로 옆에 돌이 등장하고 말을 타길 원하면 인과와는 관계없이 그냥 말이 생겨난다.  이러한 사고관을 일종의 신화적 사고관이라 볼 수 있으며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측면을 짚어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관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이유는 무엇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관계와 소통의 측면에 존재한다.  극중 배경은 아파트라는 공간이다.  하나의 건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사는 이 건물은 옹기 종기 모여살기에 소통과 관계의 측면이 강화될 것 같기도 하지만 의외로 극심한 단절 현상을 보여주는 현대성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극중의 상황을 보더라도 주인공인 아파트 관리인은 수많은 아파트 주민과 관계를 맺을법도 하지만 딱히 그런측면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파트 주민 상호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날 요정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통해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 잘 표현하는 장치가 요정을 본 사람들이 느끼는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인 것이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마무리
결론을 내려보자면 어떤 방향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던 각자의 몫일듯하다.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도 저도 아니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감독의 의도가 정확히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유치하다는 기분도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전반적인 유치한 분위기 역시 샤말란 감독이 일부로 의도한 것이고 그러한 분위기가 위에서 언급한 사고관과 관계의 측면을 잘 표현하는 하나의 장치로서 역할하게 된다.  이 작품 역시 샤말란 감독이 보여주는 전반적 작품세계와 그 주제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오직 반전이 약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렇게 욕먹을만한 졸작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확실한건 이 작품 역시 샤말란 감독의 영화 전반으로 흐르는 어떤 사고관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결정론적 사고관이라고나 할까?  그 사고관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들의 관계적 측면에 대한 고찰이 샤말란 감독 영화들의 큰 주제중 하나이다.  이 큰 흐름을 철저하게 견지한채 다양한 작품들이 나열되는 형국인 것이다.  샤말란과 비슷한 사고관을 가진 감독이 한명 더있는데 알렉스 프로야스이다.  대표작은 아이로봇, 다크시티, 노잉, 크로우 등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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