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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고찰

유쾌한 인문학 2010. 12. 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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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사건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지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라는 기사를 톱으로 실었고 이 기사는 에밀 졸라의 인생 뿐만 아니라 프랑스 역사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다.  드레퓌스 사건의 내용과 배경은 다음과 같다.  보불전쟁의 패배로 인해 프랑스는 제3공화국이 수립되고 세계 제2차대전까지 지속되게 된다.  이러한 제3공화국은 그 성립시부터 이미 독일에 대한 복수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고 잃어버린 알자스로렌지방에 대한 열망으로 엄청난 내셔널리즘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은 과거부터 내려오던 대금업 등으로 부를 축적해온 기반위에 1830여년경의 보수왕정복고시기 부르주아 자본가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금융귀족은 자연스럽게 왕정복고기에 복고파들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럽게 엄청난 반대세력과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제3공화국 초기에는 보수적인 유태 금융자본가들이 왕당파를 지지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반유태 감정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터지게 되는것이다.  사건의 내용은 간단하다.  유태인 장교인 드레퓌스가 독일군의 스파이로 오인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다 문제의 문건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장교에 의해 만들어진것임이 밝혀지게 되고 그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지만 그는 무죄 석방된다.  이 시점에서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신문기사를 내게 되고 그날 수백만부가 팔려나가는 엄청난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시점에서 드레퓌스에 대한 재심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드레퓌스는 복귀된다.


나는 고발한다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유태 민족주의와 이스라엘 건국의 계기를 가져오게 되지만 역시 중요한 지점은 다른곳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드레퓌스 사건이 가져온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이는 20세기로 넘어가는 초입에 벌어진 마지막 보수 왕당파와 진보 공화파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의 상황은 보불전쟁의 패배로 인해 매우 보수적인 상황이었고 이러한 보수성과 혼란의 상황은 민족주의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를 두고 한나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반드레퓌스파 군중들은 사실상 각 사회계급의 낙오자들로 형성된 군중으로 자신의 계급적 상황을 증오하면서 강력한 지도자를 찾게 되고 이로 인해 국가권력에 의해 조종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둘째 드레퓌스 사건은 언론에 의한 여론조작의 측면을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당시 반드레퓌스파의 중심에 선 신문사는 "르 프티주르날" 이라는 신문사이고 드레퓌스파의 신문사는 "로로르" 였다.  이 두신문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두 신문사가 내놓는 기사를 통해 어떻게 군중이 형성되고 밀집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드레퓌스 사건이 급진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인 것은 결국 '로로르'지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신문기사덕분이고 이 기사에 의해 대폭적으로 드레퓌스파가 결집되었다는 사실을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드레퓌스 사건이 가져온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지식인의 사회참여이다.  이 사건을 통해 지식인은 구체적 지식인.  즉 지적 활동과 사회 참여의 양부분을 동시에 충족시켜야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반유대주의
사람이라는 동물은 어느 누구나 똑같다.  두개의 눈을 가지고 두개의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다.  생식하는 방법도 동일하며 먹고 자고 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렇듯 태어날때부터 동등하게 벌거벗은채 태어난 인간은 그 후 다양한 기준에 의해서 인간을 구별짓게 된다. 작게는 가족에서 크게는 국가까지 그 방법은 다양하다.  결국 인간을 구별짓는것은 어떻게 무리짓는가.  즉 집단 형성의 기준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리고 하나의 집단과 그외의 모든 집단은 배타적 관계를 이루게 되는바 바로 이 지점에서 유대인의 상징성이 도출된다.  즉 인간이라는 집단과 유대인이라는 상징적 인간집단의 '다름'이다.

당시 유대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뚜렷하게 대조되는 두가지로 표현된다.  하나는 돈이나 아는 벌레와 같은 아주 경멸의 대상으로서의 태도이며, 다른 한가지는 유대인의 돈과 지식을 이용하기 위해서 행하는 은근한 경외로서의 태도이다. 이러한 경외로서의 태도는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한 태도를 정당화시켜주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되며,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 전체주의적 요소가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유지하기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소극적 환상의 개념적 요소가 필요하게 되는바 이것이 바로 타자에 대한 과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타자를 소외시키는 과정은 타자의 권력에 대한 과장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중과정이다.쉽게 말해보자면 사실 유대인이라는 집단이 전부다 부자일리도 만무할테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이라는 인간상 역시 존재하지 않은 허상의 것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전형성은 굳이 갖다붙이면 모든 인간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그들을 개념지은 인간의 상상적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구조의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유대인을 그렇게 개념짓는 것은 내부적 억압의 외부적 돌림을 뜻하게 된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의 대립 그리고 더 넘어 "우리안의 다름"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 징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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