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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라레(2001), 내마음이 들리나요 본문

영 화/00's 영화

사토라레(2001), 내마음이 들리나요

유쾌한 인문학 2010. 4. 2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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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라레(Satorare)
아주 유명한 일본영화이다.  당시에 일본에서 드라마가 먼저 나왔던걸로 기억되고 그 이후에 단행 영화로 다시 이 작품이 나오게 된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어쩌다가 가끔씩 발견되는 어마어마한 천재가 존재하는데 이 천재들의 특징은 그가 마음속에서 행하는 모든 생각들이 주변사람들에게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총 7명의 사토라레가 존재하게 되는바 이들의 천재성을 잘 활용하여 국가재산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을 보호하게 된다.  사토라레가 자신들의 상태를 알게 되면 그 상황을 못견뎌 다들 자살을 시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이 영화는 1998년도에 개봉한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트루먼 쇼의 기본적 설정인 한 개인의 일생을 드라마하고 주인공을 완벽하게 속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방송하는 것이나 나의 생각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사념파로 전달된다는 것이나 한 개인의 일상이 주변사람들에게 완벽하게 까발려진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공통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역시 두 영화는 별개의 영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제의식이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트루먼쇼는 소비성이 강조되지만 이 작품은 인간 그 자체에 집중된다.


내마음이 들리나요
사실 상대방의 마음을 듣고 싶다는 생각은 인류문명전체를 살펴보면 자주 등장하게 되는 사고관이다.  왜 흔히 만화에서 나타하는 텔레파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방을 마음을 읽는 것이 말이다.  어떤면에서 보면 투명인간이라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중요한건 텔레파시이던 투명인간이던 핵심은 나의 정보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정보를 나에게로 가져온다는 점이다.  투명인간은 철저하게 나의 정보는 숨긴채 타인의 정보를 완벽하게 획득하겠다는 욕망의 발현인 것이고 텔레파시 역시 사토라레처럼 무차별적으로 정보가 세어나가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명인간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즉 나는 숨긴채 타정보를 획득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공통된 욕망이다.  아주 간단하게는 우리가 커피숍에 가서 행하는 행위를 보더라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픈된 공간보다는 구석자리 또는 창가자리를 선호하게 되는바 이역시 나를 감춘채 타자를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에 이러한 성향이 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대단히 불필요한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진화적 관점에서 보았을때 현대의 삶에서 대단히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진화적 산물들이 현재에도 많이 남아있는 양상을 보여주곤 한다.  그 이유는 급격한 변화가 불과 50여년에 걸쳐 일어나기때문에 진화적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토라레라는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화적 산물로서의 본능을 역전시켜버린다.  되려 내가 다 까발려지고 타인이 나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습득한다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하나의 개체로서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는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백만년을 흘러오며 쌓아온 진화적 산물로서의 본능이 엄청난 위험경고를 울리게 되니 말이다.  어떤 존재의 위기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사토라레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자살을 감행하게 된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자살마저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 생각이 타인에게다 전달되버리니 말이다.

현대적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근본적 변화들은 실로 놀랍다못해 아주 다채로울 지경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소통의 부재 또는 단절이라는 부분이다.  흔히 군중속의 외로움이라고 표현되곤 하는 문제점으로서 이는 현대인들이 가지는 근원적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는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원인으로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집단적 성향이 강한 국가에서는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집단성이 심하게 강요되고 사회 전체가 일가치 우선적인 성향을 나타나게 될때 그 가치를 향한 욕망과 집단성이 시너지 효과를 이루면서 그 일가치가 개개인에게 강요되게 된다.

하지만 현대적 삶을 생각해본다면 사실 생존 위주의 획일적 가치와 그것의 강요는 큰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맹수에 의해 죽임을 당할 일도 거의 없고 물질적 풍요속에서 굶어서 사망하게 되는 일 역시 없기 때문이다.  즉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점들은 비약적으로 해결되었기에 그외 다른 어떤 것을 욕망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욕망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건 현대사회는 저러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점들을 또 다른 가치들로 치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가치같은 것으로 말이다.  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치환현상 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적 본능의 한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가 됐든 바로 이지점이 군중속의 외로움의 주된 원인이 아니겠는가.  나에게 강요되는 가치와 그것을 향한 맹목적인 추구에서 개인과 개인사이의 유대가 무너지기 시작하게 된다.  과거에는 인간 집단의 생존을 위해 어느정도 협력하는 양상들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현대는 한개인의 성공만이 유일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형태의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는 것은 철이 없거나 나약한 자들이나 행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더해지고 여기에 사회전체가 가지는 집단적 폐쇄성이라는 외부구조가 더해지면 기가막힌 인간소외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토라레라는 것은 소통을 향한 욕망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다.  흥미로운건 영화속에서 이러한 가능성의 제시는 매우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사회 현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소통부재와 일련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바 현실과 영화속에서 나타나는 소통이 보여줄 수 있는 양극단의 제시는 현대에서의 인간소외가 가지고 있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잘 표현하게 된다. 

실제 영화에서도 사토라레라는 인간형을 제시하고서 그 인간형이 보여줄 수 있는 흥미를 돋우는 방향으로 플롯을 이끌어나가기 보다는 사토라레라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소통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  즉 극중 주인공에게 사토라레라는 설정을 부여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한 천재인간으로 보아도 인간소외와 소통 가능성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사토라레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놓고 평범한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의 제시가 주요한 지점이 된다.


마무리
흥미로운 영화이다.  재미도 쏠쏠하고 말이다.  듣기론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다고 하던데 드라마를 다보기엔 조금 무리가 따르지 영화를 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토라레라고 하는 아이디어가 누구의 머리에서 창안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창의력 또한 대단히 놀랍다는 생각이다.  흔하게 생각되던 것을 역으로 뒤집어 제시하는 것.  아주 간단해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접근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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