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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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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

유쾌한 인문학 2011. 2. 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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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을 규정하는건 여러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가장 큰부분은 사회 문화적 측면이다.  이는 사실 그 실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보이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학교-사회라는 영역의 확장을 통해 점차 사회 문화가 요구하는 일종의 상징적 법을 성장하면서 체득해나가게 된다.  그래서 타국의 언어가 배우기 어려운 것이다.  언어야 말로 문화의 핵심이니깐.  인간은 언어속에 갇힐 수 밖에 없듯이 구조속에 갇힐 수 밖에 없고 그속에 있는 인간은 강제적으로 그 체계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체계속에 속해 있고 구조가 만들어내는 인식의 틀에 갇혀 사물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주체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코키토적 자율적 존재라기 보다는 다양한 담론 구조들의 통과하는 통로이자 효과에 불과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 의해 생각 당해지고 존재 당해진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행하는 상상속의 공상들도 욕망과의 대화이다.  이러한 욕망들은 허용된 욕망과 허용되지 않은 욕망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 기준은 상징적 기표로서의 사회가 결정한다.  허용된 욕망은 그 발현이 허용되지만 허용되지 않은 욕망은 항상 억압된다.  하지만 억압되었다고 하여 그 욕망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그 욕망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게 되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기표의 세상에서 나 자신이 흐릿해지고 나의 주체성이 부정되거나 하는 시점에 우리는 그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화가 폭발하게 되면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억압된 욕망과의 대화는 너무나도 달콤하기에 쉽게 무시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다.  아무래도 상징적 기표에서 나의 주체가 흐릿해질때 상상적 기표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대화는 내가 꿈꾸는 완벽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가끔 홀로 앉아 끝도 없는 망상의 세계로 빠져들곤 하는거 아니겠는가?  결국 이것의 본질은 나를 둘러싼 체계의 외면이며 회피이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이것을 거부하고 싶고 나름의 일탈을 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작정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완벽하게 거부하기에 체계속에서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이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큰 두가지 흐름이 존재한다.  첫째는 생래적으로 즉 유전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는 생물학적 특징을 가졌다는 주장과 둘째는 사회화과정의 실패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첫번째 주장을 생래적 범죄인론이라고 부른다.  롬브르조라는 사람이 창시한 것으로 근대에 들어와 이성과 과학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생겨났고 그 믿음은 형법학계에선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기전에 먼저 범죄인의 특징을 알아내서 미리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초기 연구 방법은
범죄인들 모아놓고 얼굴의 공통된 특성을 찾아낸다는 식이다.  예컨데 생래적 범죄인은 코가 크다.  뭐 이런식이다.  이게 '아 그렇군 끄덕끄덕' 하고 끝낼만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모든 학문은 영향을 주고 받기에 이건 넓게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열등한 인간과 우등한 인간을 나눠보겠다는 시도에 다름아니다. 

근대적 이성의 폐단은 도구적 이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이 되는 것이고 근대이성의 미친 광기를 목격한 이후부터는 인간을 미리 결정지으려는 시도는 사라지게 된다.  그뒤로는 환경결정론으로 대세가 기울게 된다.  이것이 바로 두번째 논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다시 생래적 범죄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결정론 대세가 뒤바뀌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여전히 환경결정론이 다수의 의견을 이룬채 유심히 찾아보니까 생래적 범죄인이 있더라는 주장이 나오게 되고 그것이 바로 사이코패스이다.  사이코패스 이론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논리적 인과 귀결에 대한 설명 방식이 무엇이 되었던 한가지 확실한 자명한 사실은 이들은 상징 질서를 수용할 의도가 없다는 점이다.  이사람들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상징질서 내부에 아주 독자적인 체계와 논리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확인을 해줘야 하는데 그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학적 체계로서 철학을 할 수도 있을테고 혼자서 정신분열하여 미치광이로 살아갈 수도 있을테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안으로 강제적으로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효과적인건 불특정 연쇄살인이다.  보통의 살인은 돈이나 질투심 이러한 막대한 물질적 이득이나 감정의 제어 실패로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불특정 연쇄살인은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련의 규칙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규칙과 논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징질서의 논리를 그대로 상징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가 만든 윤리와 법의 안에서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자신이 신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이 거부한 상징질서에의 굴복을 의미하게 된다.  내가 신이 되어 만든 세상을 드러내기 위해 규칙 및 상징을 이용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특정 다수인을 살해한다면 충분히 세인의 관심을 끌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건 이 안에서 게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일단 사람이 죽어나가기에 수사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때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게임의 참여자가 된다.  게임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신으로서 끌어들인 모든 사람들을 조종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즉 자신이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자이자 술래라는 것이다.  잡히면 술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죽는다는 식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자들을 상대할때는 절대로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논리의 부정확함과 모순을 파고 들어가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체계를 무너뜨리면 자신의 신성이 무너지기에 의외로 쉽게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어디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결국 현사회내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들이기에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 이해가 뒤틀리게 된 주된 원인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체계 논리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분석하는 것이 프로파일링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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