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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의 새벽(1978), 좀비와 인간의 본질 그리고 쇼핑몰 본문

영 화/70's 영화

시체들의 새벽(1978), 좀비와 인간의 본질 그리고 쇼핑몰

유쾌한 인문학 2010. 3. 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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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3부작중 두번째 작품이다.  얼마전에 이 작품은 리메이크 되기도 했었는데 2004년도에 새벽의 저주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었다.  리메이크된 새벽의 저주의 특징이라면 좀비들이 아주 빠르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렇게 빠른 좀비가 나온 영화는 28일 후와 새벽의 저주가 처음이고 새벽의 저주 이후로 좀비 영화는 점점 다양하게 변화해나간다. 

그런데 그 변화상은 과거 좀비 영화가 던져주었던 무거운 주제의식을 이어나가기 보다는 철저하게 A급 블록버스터로의 발전이므로 사실상 큰 의미는 없어보인다.  역시 이런 류의 영화는 B급 영화로 작품이 나와야 제대로된 작품이 나오지 않는가? 생각된다.  아무튼 새벽의 저주를 보신분이라면 기본적인 내용은 동일하므로 굳이 시체들의 새벽을 안봤더라도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지 로메로 감독은 좀비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감독으로 그의 공포영화가 가지는 재미는 그의 영화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다양한 고찰점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놀래키고 무서운 특수효과로 범벅된 공포영화보다 영화를 꿰뚫어보는 수준 높은 지적 통찰력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공포야 말로 진정한 공포가 아니겠는가?  그럼 좀비 영화는 꼭 그렇게 봐야만 하는가?  그런건 아니고.  별 생각 없이 즐기기에도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대단히 간단한데 일단 밑도 끝도 없이 좀비가 온 미국을 다 점령했다는 식으로 나오고 방송국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방송국은 온통 난리통이고 이 상황에서 두명의 군인과 한명의 기자(여성) 그리고 그의 남자친구가 헬기를 타고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다 기름이 떨어져 쇼핑몰에 착륙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은 모든 좀비들을 처치하여 그속에서 모든 것을 충족시킨채 살아가게 된다.  아주 큰 쇼핑몰이니 없는것도 없고 4명이서 사용하기엔 많다 못해 차고 넘치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밖을 배회하던 폭주족 무리가 쇼핑몰에 침입하게 되고 대 약탈이 벌어지게 된다.  이때부터 좀비는 온대 간대 없고 인간들끼리의 전쟁이 벌어진다.  결국 폭주족은 물러나게 되고 쇼핑몰은 좀비들에게 떨어지게 되면서 남은 두사람은 다시 헬기를 타고 탈출하게 된다.





좀비와 인간의 차이점은? 
이 영화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B급 특유의 진한 향기와 비판의식이 아주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좀비라는 것을 가지고 하나의 장르영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고어물적인 특성과 더불어 왠지모를 쾌감 그리고 비판의식에 존재한다.  좀비라는 개체가 이렇게 비판에 적합할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장르영화로서의 좀비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왜 좀비가 되었는가? 라는 사실의 배제이다.  일단 밑도 끝도 없이 전부다 좀비가 되었다는 설정이 주어지고 그하에서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게 된다.  좀비영화가 항상 이런식으로 스타트를 하는 이유는 논리적 이해를 거세시킴으로써 극중 주인공들이 느끼는 당황스러움을 관객들도 동일하게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왜? 라고 하는 이유와 논리적 이해가 제거되었을때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극대화된다.  인간이 공포라는걸 느끼는 주된 이유는 그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는 우리가 흔히 새로운 집단이나 개인을 만날때도 생겨나게 된다.  뭐 학생들은 매년마다 이러한 것을 경험할테고 심지어는 학교가 바뀌면서 새로운 집단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항상 걱정을 하곤 한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쩔까?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걱정 즉 공포의 주된 원인은 역시 뭔지 알 수 없는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았을때 좀비라고 하는 대상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원래 인간이었던 존재가 좀비가 된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친숙한 존재들이다.  바로 우리의 가족이자 이웃이자 친구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좀비가 되는 그 순간 친숙한 그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면서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니 이를 이해할 수 없어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극중 주인공과 관객들은 좀비를 통해서 이러한 양자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극의 초반에는 좀비들을 어쩔 수 없이 죽이면서 왠지모를 미안함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넘어서게 되면 초반에는 죄의식을 느꼈던 극중 주인공들이 왠지 즐기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특히 이것이 극대화되는 상황은 쇼핑몰로 폭주족들이 난입했을때이다.  그상황에선 가히 뭐 좀비들은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파괴의 대상일뿐이다.  무자비한 학살, 약탈 등으로 나타나는 인간들의 일련의 모습에서 이성이 사라진채 본능만이 남아있는 좀비의 그것과 인간이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실 인간들이 좀비들로 뒤덮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바 스스로 그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련의 행위들을 제시함으로 인해 좀비라는 객체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밀한 파괴적 본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좀비는 우리 내면에 숨겨진 잔악한 면모들이 투사된 것에 다름아니다.


쇼핑몰와 좀비
그와 동시에 또 한가지 살펴볼 부분은 바로 쇼핑몰이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왜 하필 쇼핑몰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쇼핑몰은 그 자체로서 자본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매개체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보다 쇼핑몰이라는 공간이 아주 중요한데 이 쇼핑몰과 좀비라는 두가지 대상이 결합되면 좀비가 또다른 의미로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극중 좀비들은 끊임없이 쇼핑몰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게 된다.  이를 두고 극중 주인공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중 한명이 내놓는 의견이 상당히 인상깊다.  좀비들이 쇼핑몰로 계속 들어오려고 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과거에 지속적으로 행해왔던 쇼핑습관이 본능으로 남게 되어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조지 로메로 감독은 이 대사를 통해 쇼핑몰이라는 공간을 선택한 이유를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의 발달과 그로 인한 소비성의 증대로 인해 우리가 매일 같이 가지고 싶어하는 물질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 욕망이 과연 좀비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좀비는 이성이 배제된채 철저하게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존재인바 사실상 현대인이 보여주는 소비를 향한 맹목적 욕망 역시 좀비의 그것고 뭐가 다르겠는가?  극중으로 돌아가 제일 처음 쇼핑몰에 도착한 4인은 그 쇼핑몰 전체를 점령하여 엄청나게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된다.  먹을것부터 입을 것 모든 것을 넘치다 못해 감당을 못할 정도로 소유하게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폭주족들이 침입하게 되면서 그들은 전투를 벌이게 된다. 

사실 폭주족들과 그 쇼핑몰의 모든 것들을 공유한다고 하여 크게 문제될건 없다.  어차피 쇼핑몰은 엄청나게 큰 거대 쇼핑몰이기에 다같이 나눠쓰기에 재화가 부족하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극중 주인공들의 선택은 자신들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로 인해 두사람을 제외한 전부다 죽게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두사람 마저도 결국 쇼핑몰에서 좀비들에 의해 쫓겨나 다시 헬기를 타고 목적없는 어디론가로 떠나게 되고 쇼핑몰은 좀비들이 점령하게 된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웃기는 행위들인가?  세상이 망했는데 돈이 다 뭐에 소용이란 말인가?  이 아이러니에 대해서 한번 잘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우리 사회 아니 전세계가 가지고 있는 부의 총량과 그 나눔에 대해서 말이다. 





마무리
이작품은 정말 좋은 작품이다.  살아있는 시체들 3부작중 2부작에 속하는 작품인데 세개의 작품중 가장 메세지가 뚜렷하고 확실하게 다가오니 말이다.  좀비라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비판의식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조지 로메로 감독의 뛰어난 역량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저 모든 비판의식들이 가능한 주된 이유는 좀비가 느리기때문이다.  사실 극중에서 좀비는 그렇게까지 위협적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너무 느리기때문이다.  그렇기에 좀비들이 지배한 세상에서 되려 좀비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요즘 좀비들은 너무 빠르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작품들을 리메이크한 빠르고 강한 좀비들의 등장을 놓고 혹자는 비판정신의 상실이니 뭐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대자본이 들어간 좀비영화라고 하더라도 그 특유의 정서를 함유하고 있다면 B급영화로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B급 영화의 핵심적 모토 즉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부분을 정확히 만족시켜주기에 크게 문제될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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