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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저주(2004), 소수자가 된 인간,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본문

영 화/00's 영화

새벽의 저주(2004), 소수자가 된 인간,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유쾌한 인문학 2010. 3. 14.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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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저주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좀비 매니아들 사이에선 가히 엄청난 칭송을 받는 영화중에 하나인데 일단 이것 저것 말할 거 없이 재미가 좋기 때문이다.  혹자는 조지 로메로 감독 특유의 비판 정신이 사라졌기에 별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B급 영화라는건 비판의식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도 좋지만 결국 핵심은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것.  그 자체에 존재하기 때문에 뭔가 사회적인 메세지를 꼭 품어야만 좋은 작품이다라는 식의 논리에는 찬성하기 힘들다.  그런데다 이작품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작품도 아니니 말이다.  물런 기획에는 참여를 했지만.

일단 기본적인 내용은 원작과 동일하되 약간의 차이점이 나타나게 된다.  초반은 밑도 끝도 없이 좀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시작되어 이리저리 해매는 몇몇 사람들이 쇼핑몰로 모이게 된다.  쇼핑몰 내부에 있는 좀비들을 다 처리한후 그곳을 장악하여 살게되지만 몇백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한 남자가 굶어죽게 생겨 그를 구하러가게 되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그들은 선착장으로 탈출을 결심한다.  선착장으로 탈출하여 간신히 보트에 탄 그들은 배를 타고 섬을 향해 가지만 이미 섬에도 좀비들은 득실거릴따름이다. 



Copyright (c)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소수자가 된 인간,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일단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좀비들이 상당히 디테일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좀비들이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사실 뛰어다니는 좀비는 03년도에 나온 28일 후에서 이미 등장하게 되긴하지만 사실상 이 작품이 뛰어다니는 좀비의 효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8일 후는 약간 변형된 형태의 좀비 영화이고 전통 그대로의 장르적 특성은 이 작품이 이어받아가니 말이다.  아무튼 뛰어다니고 강력한 좀비의 변화상은 과거와 같이 열심히 뛰기만 하면 일단 살수는 있는 좀비물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나도 뛰지만 좀비도 뛰니 뛰어봤자 거기서 거기라고나 할까.

이 작품 역시 쇼핑몰이라는 공간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사실 이 작품을 통해서 조지 로메로의 그것과 동일한 형태의 비판 의식을 기대하긴 힘들다.  같은 쇼핑몰이라고 해도 어떤 자본의 모순점 같은건 크게 다가오진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작에서 등장하는 폭주족도 이작품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미 쇼핑몰안엔 폭주족과 비슷한 무리들이 먼저 점령하여 내부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를 보이기도 하지만 전작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은근히 곳곳에 삽입된 코믹한 부분이다.  온천지에 좀비가 깔린 상황에서 망원경을 이용하여 체스를 두고 있는 꼴이라니.  쇼핑몰 그리고 둘러싼 좀비들 그리고 체스.  이 세가지가 어우러진 기막힌 아이러니. 

마지막엔 그들은 사람이 안사는 섬으로 도망가서 좀비가 없는 땅에서 삶을 영위하기로 선택하고 과감하게 트럭을 타고 떠나게 된다.  그리고 간신히 도착한 이후 떠난 섬에는 이미 좀비가 득실거리는 상황.  그렇게 극은 끝맺게 된다.  사실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미 좀비와 인간은 그 위치가 뒤집힌 상황이다.  즉 좀비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한 좀비의 학살 및 적대시는 큰 의미가 없다.  바로 이지점에서 이 작품이 조지 로메로의 그것과 차별화된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소수자이다.  거대한 사회속에서 다수였던 인간이 소수가 되면서 느끼는 좌절감과 공포심.  한번 생각해보시라.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소수자들이 다수의 주류적 인간 사이에서 고통과 공포, 좌절을 느끼며 살아갈련지.  현대 사회의 주류적 인간이란 결국 좀비의 그것과 다를바가 없다.  다수라는 힘에 의존하여 이성이 함몰되고 감정과 본능에 따라 맹목적으로 집단화하여 움직이는 좀비들과 현대인이 과연 어떤점에서 차이점을 보이는지.  과연 인간은 좀비보다 나은 존재인가?

이러한 측면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가족의 좀비화이다.  이 작품은 자신의 가족이 좀비가 되어 가족 구성원을 공격하는 양상을 많이 보여준다.  극의 초반에 딸이 부모를 습격하는 장면이나 임신한 부인이 좀비가 되었음에도 살릴려고 애쓰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가 좀비가 되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딸.  이렇듯 가족 구성원이 좀비가 되어 자신을 공격하는 양상을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마저도 주류적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큰 억압과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은유라고 볼 수 있다.



Copyright (c)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마무리
재미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았을땐 새벽의 저주가 좀비 영화중에선 최고의 압권이 아닐까 생각된다.  긴박하게 뛰어다니는 좀비들과 가족들이 좀비가 되어 자신들을 공격하는 양상을 통해 다가오는 공포가 실로 대단하다.  좀비라고 하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인 본래적 인간으로서의 측면과 좀비로 변한뒤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측면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족이라고 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를 활용하는 측면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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