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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2004), 형제애와 경계의 붕괴 본문

영 화/한국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 형제애와 경계의 붕괴

유쾌한 인문학 2010. 9. 2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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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워낙에 유명한 영화이니 특별한 부연설명은 할 필요가 없을듯하다.  올해가 한국전쟁 60주년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한국전쟁 특집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선보이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영화는 꽤나 많이 존재한다.  연세가 어느정도 되시는분들은 얼마나 많은 반공 영화들이 쏟아져나왔는지 잘 기억하실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반공영화의 내용이라는 것은 사실 고민할 것 없이 뻔하다.  80년생 이후의 사람들은 아마 다 기억할것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방학만되면 써야했던 그 수많은 반공독후감과 반공동화 말이다.  그러다 한동안 반공 영화나 전쟁영화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한참동안 사라진 전쟁영화가 어느날 갑자기 초거대 영화로 돌아온것이 바로 이 작품 "태극기 휘날리며"이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형제애를 그려넣음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측면은 철저하게 피해가는 영화이다.  뭐 사실 그런 측면을 부각시킨다면 영화가 상업성을 잃게 될테고 그렇다면 200억에 육박하는 엄청난 투자비가 회수가 안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철저한 상업영화의 자리에 매김하게 된다.  사실 이건 영화라고 하는 매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한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단순히 엄청난 자본을 부어버린 초거대 블록버스터급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전쟁 그 자체는 실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에 포인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형제애와 변화적 측면
누가 뭐라고 해도 기본적으론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전쟁이 터지고 두 형제는 어쩌다 어처구니없이 징집되게 된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모든 헌신을 다하는 형의 이야기.  이 둘의 형제애를 기반으로 하여 이야기는 하나둘 쌓여져 올라가게 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유치한 스토리라인일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람은 이 영화에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사람에게 있어 혈연이라는 것은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고 한국인에게 있어 혈연이라는 것은 가히 종교의 영역에 이른 절대적인 무엇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작게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넓게는 통일을 외치는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관객은 형인 진태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맹목적인 행위들은 모두 이해할 수 있고 이에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애라는 측면이 점차 전쟁광으로 변해가는 형인 진태의 모습에 일정한 설득력을 부여하게 된다.  점점 변해가는 진태의 모습.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점점 훈장에 한발 한발 다가가지만 그에게 있어 동생을 살리겠다는 목적 못지 않게 전쟁 그 자체가 어떤 유의미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다양한 전쟁 경험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떤 순수한 무언가를 보게 된다.  그게 무엇일까?  그 순수함은 평범한 상태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인바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이 파편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간 정신의 파편화는 그 파편화된 개개의 것에 공격성을 나타나게 되고 그 공격성은 아주 순수한 형태의 공격성을 띄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가 변해가는 주된 이유가 된다.




보도 연맹 사건과 진태의 붕괴
결국 진태는 태극무공훈장을 받게 되고 동생을 제대시킬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은 밀리게 되고 이에 설상가상으로 보도 연맹 사건이 터지게 된다.  보도 연맹이란 좌파전향자로 구성된 일종의 반공단체인데 1948년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서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와 국민의 사상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려는 이승만 정권의 대국민 사상통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쌀, 식량 등을 배급해준다"고 선전하였고, 실제로 배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상에 관계없이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등록한 양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다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이때 이승만 정부는 이들이 문제가 되자 학살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무차별적으로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였고 특히 최후방인 경상도 일대에선 가히 대량 학살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도연맹이라는 것이 공무원들로 하여금 할당제 비슷하게 내려졌기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배급받기 위해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고 이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양민 학살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보도연맹사건의 진상이다.

영화에서는 극중 고 이은주를 중공의 참전 이후 서울에서 만난 이후 그녀가 죽게 되는데 이때 그녀가 죽게 되는 주된 이유가 바로 보도 연맹 사건때문이다.  태극 무공훈장까지 받으며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동생을 제대시킬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결국 자신의 연인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살리기 위해 모든걸 희생하였던 동생마저 죽은것으로 오인하게 된다.  이에 그는 졸지에 인민군이 되어 인민의 영웅이 되어버린다.  이 대목은 이 영화의 핵심이자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진태는 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그의 정신은 철저하게 파편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동생을 살리는게 주 목적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쟁 그 자체가 그에게 더 큰 비중으로 자라나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생성된 주체를 이루는 경계가 점점 무너지게 되고 그 경계의 형성 이전에 존재하였던 파편화된 신체의 경험과 그것을 향한 공격성이 점차 일깨워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태가 진태로서 온전한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주요한 이유는 바로 혈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그어떤 문화보다 하나의 주체의 경계를 세움에 있어서 핵심적 요소는 바로 핏줄이고 그것이 영화에서는 형제애라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두가지가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이때 진태가 진태로서 존재하기 위한 주체의 경계선은 무너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에게 있어 국군이냐 인민군이냐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의 경계는 완벽하게 사라졌기에 오직 공격성만 남게 되었고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없애버린 모든 것들에게 그 공격성을 표출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급작스럽게 국군의 영웅에서 인민군의 영웅이 되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시나리오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는 오직 한국에서만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이성이 아닌 가슴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다. 




마무리
이데올로기고 전쟁이고 뭐고 간에 '나'라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  그리고 나의 가장 소중한 동생.  혹자는 신파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국수적 가족 이기주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이성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우리의 문화이고 우리의 삶이고 바로 우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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