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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2007), 문명속에 은폐된 광기 본문

영 화/00's 영화

미스트(2007), 문명속에 은폐된 광기

유쾌한 인문학 2010. 8. 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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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The Mist)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4번째 영화이다.  감독이름이 대부분 생소하겠지만 이감독의 대표작인 쇼생크 탈출은 대부분 알 것이라고 생각된다.  모르긴 몰라도 미스트 이 영화도 꽤나 보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스티븐 킹 소설인 안개를 영화한 작품인데 정말 흥미로운 영화이다.  일단 기본적인 형태는 괴물이 나오는 SF 영화 정도로 정리가 되겠는데 이 영화에서 괴물이라는 요소는 사실상 곁가지에 불과하다.  최근들어 이런 영화들이 상당히 많아진것 같다.  즉 괴물이나 멸망 이라는 어떤 독특한 상황을 제시한채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에 대해서 그려내는 영화들 말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영화의 효시격은 좀비 영화가 아닐련지.  좀비야 말로 모든 것이 멸망하고 나의 가족이 나를 먹으로 온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공간을 협소화시킨 이후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게 주안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좀비의 아버지인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비판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B급 영화의 형태를 띄게 되며, 좀비 영화가 오락 영화의 성격을 가지게 된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현상이다.  어쨌든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를 차용하여 최근에는 실로 다양한 형태의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형국이며 공통된 특징이라면 공포나 SF적 요소를 많이 띄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스트는 어떠할까?  괴물과 SF적 요소를 적절히 섞어서 만들어낸 사건 위에 서있는 영화인데 어떻게 보면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이 살짝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영화이다.  시체들의 새벽이 좀비와 쇼핑몰의 조합으로 기막힌 영화를 만들어냈다면 이 영화는 쇼핑몰과 안개를 이용하여 더 독특한 인간적 양상을 제시하게 된다.  참고로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많은 말들이 있는데 난 정말 이해가 안가는 것이 왜 그리 결말에 집착을 하나?  결말은 그냥 재미의 한요소일뿐이다.  반대로 결말을 내려도 문제될건 없다.  진짜 문제는 꼬랑지에 집착하다보니 몸통은 다 놓치고 가는 어처구니 없는 우를 범한다는 점이다.




문명속에 은폐된 광기
쇼핑몰이라는 공간이 아주 중요하다.  쇼핑몰은 조지 로메로 감독이 사용하고부터 대단히 영화적으로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쇼핑몰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이 만들어낸 어떤 결정체와도 같은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쇼핑몰은 그 자체로서 자본과 문명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매개체이다.  이러한 쇼핑몰이 안개로 둘러 쌓인다는 설정은 문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게 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필연적으로 안정감 있는 공간을 선호하게 된다.  나의 몸이 속해있느니 공간은 폐쇄적이되 그 공간 바깥은 열려 있어 관찰할 수 있는 그런 공간.  이러한 공간이 생존에 가장 적합하기에 자연스럽게 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인간도 동물이니깐.  그래서 커피숍 같은 곳의 창가자리가 선호되는 것이다.  커피숍 자체가 안정감 있는 폐쇄적 공간이라면 창문은 그 공간 바깥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가 되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공간 외부를 안개로 둘러싸버리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크게 공간이 가지고 있는 양가적 성격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  즉 한편으론 안정감이 느껴지는 폐쇄적 공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외부를 전혀 알 수 없기에 그 폐쇄성에서 비롯된 아주 불안한 공간이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쇼핑몰이 가지는 양가적 성격이고 이러한 쇼핑몰은 다시 도시문명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다.  결국 문명 그 자체가 양가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형이상학적 공간의 성격을 띄게 된다.  꼭 물리적인 형태의 공간이 아니더라도 어느 집단의 동질성을 통하여 그 동질성 밑에 폐쇄적인 공간을 설정하여 그 안에서 가장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은 이질적인 것들의 억압적 동질화이므로 어느정도 불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문명은 지속적으로 폐쇄적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바깥을 위험적 요소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바깥에 존재하는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엇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실체를 알 수 있다면 심각하게 분열되지 않고 동질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문명이 유지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하지만 영화는 바깥의 무엇의 실체가 뭔지 알 수 없게 해버린다.  오직 자욱한 안개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폐쇄적 공간에 갖혀버린 인간들이 어떠한 양상을 보여주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해서 영화는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양상을 제시하게 된다.  뭐 엄밀히 말하면 스티븐 킹이 제시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일단 외부에 대해서 모든 정보가 막혀버렸다 하더라도 쇼핑몰 그 자체는 여전히 대단히 안정감 있는 공간을 제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인간 문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쇼핑몰과 같이 모든 재화들을 가지고 있는 공간을 통해 물질적으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정감 있는 공간과는 달리 그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은 대단히 불안전한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오직 외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영화에서는 다양한 면모로 나타나게 된다.  뭐 이성적인 면을 극도로 강조하는 흑인 변호사 무리들과 어느정도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무리 그리고 광신도로 변해가는 무리들 정도로 나타나게 되는데, 가장 흥미로운건 광신도들로서 끊임없이 신을 외치고 요한계시록을 외우며 광신적으로 변모하다가 급기야 재물을 바쳐야 한다는 광기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광신도들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보여주는 집단적 공간 형성의 과정이 더 크게는 쇼핑몰이라고 하는 공간의 형성과정과 과연 뭐가 다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광신도들은 자신들이 발딛고 있는 쇼핑몰이 어느정도 안정감을 가지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스스로 불안감에 휩쌓이게 된다.  그때 그들의 선택은 또다른 공간의 창출이다.  물리적 공간 그 자체의 안정감은 이미 존재함에도 스스로 무너진 상황이기에 그들은 정신적 안정감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는 신이라는 것을 급작스럽게 다시금 만들어내고 공간 위에서 다시금 폐쇄적인 공간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지만 이 공간 역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양가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대단히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공간에서도 결국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자기 파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자기 파괴는 재물이라는 형태로 나타날테고 말이다.  결국 이건 마치 그 어떤 공간속에서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적 한계 같다고나 할까.  미스트라는 영화는 이러한 측면을 정확히 조망한 상당한 수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마무리
어째 괴물의 모습이 우주전쟁에 나오는 외계인과 비슷하다고 느낀건 나뿐일까?  뭔가 좀 괴물이 독창성 있게 다가왔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저런 영화들 짜집기 한 것 같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고 말이다.  또 한가지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모기한테 물린 여성이 그 자리에서 좀비가 되어 일어났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좀비팬으로서의 작은 바램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이 감독.  만들어낸 작품들마다 대부분 상당한 명성을 얻어내게 되는데 작품수가 상당히 적다.  97년도 쇼생크 탈출 이후 영화는 쇼생크 포함하여 단 4개에 불과하다.  정말 엄청난 소작 감독 아닌가?  작품 활동을 조금 더 활발하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감독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해보자면 아래의 링크에 보이는 세작품은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공간의 문제로서 두개는 감옥이고 하나는 쇼핑몰이다.  무엇이 되었건 인간을 가둔다는 점이다.  그리고 외연을 이루고 있는 감옥과 쇼핑몰이라는 공간은 문명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다.  중요한건 그 문명을 어떠한 방향에서 바라보느냐?  바로 이부분이다.  즉 세 작품은 똑같이 문명속에 담긴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다양하게 집중하지만 그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문명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에 세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태의 양상이 전부다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부분이 바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작품세계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따라오셨다면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다음 작품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으며 그 작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셨을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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