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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블렛(2010), 가족내의 모순된 가치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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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블렛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다. 감독은 처음보는 사람인데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였다고 한다. 일단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장 르노가 출연하는 측면일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장 르노의 폭발적인 카리스마는 이 작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가끔 이런 영화들이 존재한다. 딱히 철학적으로 인상깊은것도 없고 그렇다고 이미지가 인상 깊은것도 아니며 되려 서사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불완전한 구조를 가진 영화를 그 안의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와 카리스마로 모든 것을 매꿔버리는 형태이다. 즉 간단히 말해 인과적으로는 설득력이 없지만 배우의 눈빛 하나만으로 설득력이 부여되어버리는 형태라고 볼 수 있겠다. 물런 그렇다고 해서 22블렛이 그런 불안한 영화라는 것은 아니고 괜찮은 작품에 이런 카리스마가 부여되니 자연스럽게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다.
마피아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갱스터 영화인데 흔해빠진 갱스터 장르영화의 공식은 배제된다. 사실 많은 장르영화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발견되었고 이는 헐리웃의 제작시스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뭐 간단히 말해서 세트하나 지어놓고 주구장창 우려먹는 식이다. 이런식의 제작시스템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쓸데 없는 모험을 감행할 필요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겠다. 범죄 장르영화는 몇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갱스터와 필름 느와르 그리고 그 이후의 현대적 범죄영화이다.
갱스터 영화는 1920년경부터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 이미 갱스터 영화 장르의 공식이 거의 성립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갱스터는 기본적으로 당시 금주법, 대공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채 시작되는 장르로서 많은 부분에 있어 실존 갱스터들을 많이 도입하여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배경과 실존 인물들에게서 받는 영향은 범죄 영화가 가지는 근본적 특징인 사회의 거울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40년대 들어 갱스터영화는 그힘을 잃어가게 되는데 주된 이유 역시 사회적 변화에 기인한다.
가족내의 모순된 가치관
이 작품을 보고 대부를 떠올리는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단순히 둘다 마피아가 나와서라기보다는 가족을 중요시하는 측면 때문일 것이다. 상당히 유사한부분이 많다. 두작품 모두 가족에 대한 아주 커다란 가치의 부여 그리고 가족과 비슷한 느낌의 집단의 형성.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가족 이외의 더 큰 형태의 집단이 가지는 의미이다. 이 작품에서는 어릴때부터 친구였던 세명이 영원히 배신하지 않고 함께 한다는 죽음의 맹세를 하게 되는바 이 맹세가 무너지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부분이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적인 영화적 가치인데 역시 대부와 아주 유사하다.
우리는 흔히 마피아 하면 뭐랄까 의리 그리고 가족 이런 가치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러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일정한 집단으로 확장하여 부여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대부이다. 마이클 꼴리오네가 초반에 보여주었던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가치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고 패밀리를 이어받으면서 그렇게 강조하였던 패밀리와 이민자 내부의 결속이라는 가치 역시 무너지게 된다. 즉 집단의 가치의 외연과 내연이 아주 심각하게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측면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폭력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어린시절에 연결된 친구라는 집단은 결국 그 연결고리가 폭력이기때문에 철저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모순을 가지게 된다. 분명 죽음을 함께 맹세한 가족과 같은 집단이었지만 대단히 미약한 연결고리에 불과한 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의 모순의 발현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것이 장 르노가 지키고자 하는 가족이라는 가치관이다. 처음에 자신을 죽이려고 시도가 나왔을때 그는 그냥 용서하기로 하지만 자신의 최측근이 죽음을 당하게 되자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가족에게 해가 미치게 되자 그의 복수는 더욱 강해지게 된다.
상당한 아이러니인데 이러한 사태를 만든 것도 가족과 유사한 집단에 부여하였던 가치의 붕괴에서 시작된 것이고 복수를 시작하게 되는 것도 동일한 가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치가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대비를 통한 모순의 제시를 통해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가 드러나게 된다. 사실 이런 가치의 모순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현실에서 쉽게 보여지는 가족이라는 가치의 신성시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이러한 것들 역시 비슷한 형태이 가치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이후 장 르노는 가족과 이제 편안한 여생을 보내겠다며 해변가를 거니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데 그 끝에서 장 르노는 뒤돌아보게 된다. 그때 눈빛이 정말 미묘하다. 뒤돌아볼때의 그 눈빛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은 이제 새롭게 태어났고 가족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중요시여기며 살아가겠다고 말하지만 그 가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자신의 뒤에서 언제 다시 덥칠줄 모르기에 느끼는 불안. 그것이 그의 눈빛에 담겨있었다.
마무리
부산국제영화제 시리즈로 올릴때 쓰다가 잠시 중단시켰는데 그대로 까먹어버렸다. 오호 통제라. 이제서야 생각이나서 마무리를 지어본다. 혹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런 영화도 초청하느냐?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다. 실제 있었떤 사건을 모태로 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건인지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친구하고 비슷하게 바라보면 될려나?
가족내의 모순된 가치관
이 작품을 보고 대부를 떠올리는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단순히 둘다 마피아가 나와서라기보다는 가족을 중요시하는 측면 때문일 것이다. 상당히 유사한부분이 많다. 두작품 모두 가족에 대한 아주 커다란 가치의 부여 그리고 가족과 비슷한 느낌의 집단의 형성.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가족 이외의 더 큰 형태의 집단이 가지는 의미이다. 이 작품에서는 어릴때부터 친구였던 세명이 영원히 배신하지 않고 함께 한다는 죽음의 맹세를 하게 되는바 이 맹세가 무너지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부분이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적인 영화적 가치인데 역시 대부와 아주 유사하다.
우리는 흔히 마피아 하면 뭐랄까 의리 그리고 가족 이런 가치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러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일정한 집단으로 확장하여 부여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대부이다. 마이클 꼴리오네가 초반에 보여주었던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가치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고 패밀리를 이어받으면서 그렇게 강조하였던 패밀리와 이민자 내부의 결속이라는 가치 역시 무너지게 된다. 즉 집단의 가치의 외연과 내연이 아주 심각하게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측면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폭력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어린시절에 연결된 친구라는 집단은 결국 그 연결고리가 폭력이기때문에 철저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모순을 가지게 된다. 분명 죽음을 함께 맹세한 가족과 같은 집단이었지만 대단히 미약한 연결고리에 불과한 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의 모순의 발현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것이 장 르노가 지키고자 하는 가족이라는 가치관이다. 처음에 자신을 죽이려고 시도가 나왔을때 그는 그냥 용서하기로 하지만 자신의 최측근이 죽음을 당하게 되자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가족에게 해가 미치게 되자 그의 복수는 더욱 강해지게 된다.
상당한 아이러니인데 이러한 사태를 만든 것도 가족과 유사한 집단에 부여하였던 가치의 붕괴에서 시작된 것이고 복수를 시작하게 되는 것도 동일한 가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치가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대비를 통한 모순의 제시를 통해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가 드러나게 된다. 사실 이런 가치의 모순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현실에서 쉽게 보여지는 가족이라는 가치의 신성시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이러한 것들 역시 비슷한 형태이 가치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이후 장 르노는 가족과 이제 편안한 여생을 보내겠다며 해변가를 거니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데 그 끝에서 장 르노는 뒤돌아보게 된다. 그때 눈빛이 정말 미묘하다. 뒤돌아볼때의 그 눈빛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은 이제 새롭게 태어났고 가족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중요시여기며 살아가겠다고 말하지만 그 가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자신의 뒤에서 언제 다시 덥칠줄 모르기에 느끼는 불안. 그것이 그의 눈빛에 담겨있었다.
마무리
부산국제영화제 시리즈로 올릴때 쓰다가 잠시 중단시켰는데 그대로 까먹어버렸다. 오호 통제라. 이제서야 생각이나서 마무리를 지어본다. 혹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런 영화도 초청하느냐?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다. 실제 있었떤 사건을 모태로 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건인지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친구하고 비슷하게 바라보면 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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