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관리 메뉴

★ image or real

브이포벤데타(2005), 또하나의 매트릭스 본문

영 화/00's 영화

브이포벤데타(2005), 또하나의 매트릭스

유쾌한 인문학 2010. 11. 17. 13:33
반응형




V for Vendetta
이영화를 맨처음 봤을때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너무 감동이었다 뭐 이런말을 기대하시겠지만 사실은 너무 지겨워서 정말 억지로 억지로 보다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채 나와버린 그런 영화였다.  혹자는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못해서 지겨웠겠거니 할수도 있겠지만 그런건 아니고.  그냥 지겨웠다.  아무래도 매트릭스 정도의 액션과 SF를 기대했다가 느낀 실망이 커서그런게 아닌가 판단된다.  아무튼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이글을 쓰기위해 다시금 찾아보니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을정도로 뚜렷하다.  3차대전 이후 영국이 배경이며 극중 영국은 기가막힐 정도의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어떤 이상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 하나의 매트릭스
이영화의 홍보문구로 주로 사용되었던 말은 매트릭스와의 비교였던걸로 기억된다.  뭐 매트릭스에 묻어갈려는 홍보전략이라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아주 틀린말도 아닌 것이 이영화는 매트릭스의 숨겨진 구조비판을 겉으로 대놓고 들어낸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거대한 체계이자 구조이다.  인간의 현실은 기계에 의해 사육당하고 있지만 매트릭스 속의 인간은 그걸 느낄 수 없다.  그게 바로 매트릭스이다.  마치 여러분이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 의식하고 사용하는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매트릭스는 하나의 거대한 인식의 틀이 된다.  그 틀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매트릭스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내부의 프로그램들처럼 매트릭스 내부의 객체에게 목적을 부여한다.  그 부여된 목적을 통해 우리는 그속에서 나의 존재이유를 찾곤 하지만 결국 매트릭스가 부여한 목적에 불과하다. 

구조가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구조속에 속해 있지만 그걸 느끼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한다.  구조속에서 나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구조속에서의 선택에 불과하다.  이러니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설사 구조를 말해준다 하더라도 그걸 거부하는 사람이 수두룩 할 것이다. 




전체주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뭐 다양한 측면의 이론에 의해서 그 원인에 대해서 연구되고 그 현상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서 집중할부분은 그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전체주의라는 것이 유지되기위해서는 유토피아적 환상과 그와 대비되는 소극적 환상이 필요하게 된다.  소극적 환상에 대한 가상적 적대시는 필연적으로 그들이 소유한 권력 또는 힘이 과장되어 나타나게되고 여기에 그 구성원들의 능동적 참여와 지지가 더해지면서 전체주의가 유지되기 위한 힘이 나오게 된다.  이를 표현하는 각종 극중 장치들은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과 탄압이다.

사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결국 똑같은 생김새와 똑같은 생활패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먹고 자고 생식하고.  하지만 사람은 다양한 기준에 의해서 나뉘게 되는바 그 기준이 바로 '다름'을 규정짓고 인간을 집단화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집단은 그 힘의 유무와 경중에 따라 타집단에 대한 배타성을 가지게 되는바 전체주의하에서는 이러한 배타성이 소극적 환상을 품게 되면서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띄게 된다.  그것이 바로 2차대전 당시에 있었던 유태인학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능동적 참여와 지지라는 측면이다.  능동적이라고는 하지만 인식하지는 못한다.  구조속에서 살아가는 객체는 그 구조가 부여한 목적에 적합한 인간상이 되기때문이다.  극중에서 나타나는 영국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말도안되는 선동이나 일삼는 티비쇼가 최고의 프로그램이 되고 국가권력이 말하는 것에 크게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여기서 도출되는 두번째 중요점은 바로 민중에 의한 권력의 확대재생산이라는 측면이다.  쉽게 말해 여러분들의 삶을 억압하는 것에 분노하지만 결국 그것을 확대재상산하는 자 역시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은가?  예컨대 항상 학벌에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의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목숨거는 모순된 행태들 말이다.



가상감옥의 경험과 파놉티콘
위에서 말한 이러한 측면들을 잘보여주는 극중 장치는 여자주인공인 에비가 겪는 가상감옥의 경험이다.  V는 정부에게 붙잡혀갈 위기에 처한 에비를 구해내지만 그녀에게 마치 정부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는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게 되고, 에비는 자신은 안전한곳에 있는지도 모른채 가상감옥에 갇혀 정부에 의해 고문을 당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에비가 경험하는 가상감옥은 벤담의 파놉티콘과 매우 비슷하다.  파놉티콘은 일종의 감옥인데 둥근형태의 구조물이며 중앙에 탑이 존재한다.  탑에서는 죄수들을 바라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그 탑에 감시자를 볼 수 없게 되어있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파놉티콘이 재미있는 것은 중앙의 탑에 감시자가 없더라도 죄수들은 그들을 볼 수 없기에 스스로 권력에 훈육되어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파놉티콘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되는데 특히 구조주의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군대, 학교, 병원 등  이런 기관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이러한 제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교육하고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키는 곳인데 비슷한 방식으로 훈육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훈육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훈육의 특징은 어떠한 절대권력이 존재하여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 관계의 그물망속의 내부권력관계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점이다.  위계질서라는 특정한 감시시스템을 통해 행사되는 이러한 권력은 아주 기계적이면서 항구적이고 자신도 모르게 이 기계 시스템속에 우리 스스로가 속해있으면서 권력을 분유한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를 보자.  학교라는 장을 통해 각 개개인이 각 개개인에게 그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룰을 스스로 주체가 되어 타인에게 강요함과 동시에 나 스스로 거기에 종속시키지 않는가??  사실 군대, 학교, 감옥, 병원 전부다 내가 해야할 행동을 나 스스로 종속시키고 또한 그와 동시에 타인에게 해야할 행동을 강요하는 장이되는 곳이다.




에비의 가상감옥 역시 파놉티콘과 동일하다.  그 감옥은 정부의 감옥이 아닌 V가 만든 가상의 감옥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에비는 그것을 진짜라고 굳게 믿으며 하나의 편지를 위안삼아 살아가게 된다.  그런 에비가 그 감옥에서 빠져나왔을때 그녀는 깨닫게 된다.  자신을 억압하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정녕 국가권력이 자신을 억압하였던가?  자신을 억압했던건 결국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현실의 이 미친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 역시 권력의 억압이 직접적 원인이라기 보다는 사회라는 거대한 파놉티콘속에서 스스로 감시하고 스스로 훈육되는 스스로 확대재생산하는 권력관계의 모순때문아니던가?


에비와 V의 대립
남자주인공은 V이고 여자주인공이 에비이다.  V는 극중에서 생체실험을 당하게 되는바 그로 인해 엄청난 신체능력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다.  V는 성공한 실험체였지만 실험소의 사고?  아무튼 어떤 화재로 인해 그곳에서 탈출하게 된다. 

한편 에비는 V가 만든 가상의 감옥 경험을 통해 도망가려는 태도를 버리고 V와 같은 길을 걷기로 결심하지만 V와 행동을 같이하지는 않느다.  즉 목적지를 향하는 길을 다르게 선택했다고나 할까?  이러한 하나의 목적을 향한 양가성은 V가 그의 길을 설정하게 되는 불의 상징성과 에비가 자신의 길을 설정하게 되는 물의 상징성으로 표현된다.  사실 V가 행하는 맹목적 살인행위를 두고 그것이 옳은것인지 그릇것인지를 놓고 설왕설래하는것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것은 그의 행동이 옳바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그의 행동과 에비의 선택이 보여주는 대비성이다.
 



마무리
이영화의 핵심은 결국 스스로 확대재생산하는 권력관계를 개인에게서부터 차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수많은 모순점은 결국 스스로 변하지않는 개인에게 존재한다.  별에 별 음모론이나 권력의 억압만을 강조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건 단 한가지이다.  당신은 변할마음이 전혀 없는 것인가?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