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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인질링(2008)과 드레퓌스사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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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인질링(2008)과 드레퓌스사건

유쾌한 인문학 2010. 10. 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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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사건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지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라는 기사를 톱으로 실었고 이 기사는 에밀 졸라의 인생 뿐만 아니라 프랑스 역사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다.  드레퓌스 사건의 내용과 배경은 다음과 같다.

보불전쟁의 패배로 인해 프랑스는 제3공화국이 수립되고 세계 제2차대전까지 지속되게 된다.  이러한 제3공화국은 그 성립시부터 이미 독일에 대한 복수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고 잃어버린 알자스로렌지방에 대한 열망으로 엄청난 내셔널리즘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은 과거부터 내려오던 대금업 등으로 부를 축적해온 기반위에 1830여년경의 보수왕정복고시기 부르주아 자본가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금융귀족은 자연스럽게 왕정복고기에 복고파들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럽게 엄청난 반대세력과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제3공화국 초기에는 보수적인 유태 금융자본가들이 왕당파를 지지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반유태 감정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터지게 되는것이다.  사건의 내용은 간단하다.  유태인 장교인 드레퓌스가 독일군의 스파이로 오인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다 문제의 문건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장교에 의해 만들어진것임이 밝혀지게 되고 그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지만 그는 무죄 석방된다.  이 시점에서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신문기사를 내게 되고 그날 수백만부가 팔려나가는 엄청난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시점에서 드레퓌스에 대한 재심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드레퓌스는 복귀된다.



나는 고발한다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유태 민족주의와 이스라엘 건국의 계기를 가져오게 되지만 역시 중요한 지점은 다른곳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드레퓌스 사건이 가져온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이는 20세기로 넘어가는 초입에 벌어진 마지막 보수 왕당파와 진보 공화파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의 상황은 보불전쟁의 패배로 인해 매우 보수적인 상황이었고 이러한 보수성과 혼란의 상황은 민족주의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를 두고 한나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반드레퓌스파 군중들은 사실상 각 사회계급의 낙오자들로 형성된 군중으로 자신의 계급적 상황을 증오하면서 강력한 지도자를 찾게 되고 이로 인해 국가권력에 의해 조종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둘째 드레퓌스 사건은 언론에 의한 여론조작의 측면을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당시 반드레퓌스파의 중심에 선 신문사는 "르 프티주르날" 이라는 신문사이고 드레퓌스파의 신문사는 "로로르" 였다.  이 두신문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두 신문사가 내놓는 기사를 통해 어떻게 군중이 형성되고 밀집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드레퓌스 사건이 급진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인 것은 결국 '로로르'지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신문기사덕분이고 이 기사에 의해 대폭적으로 드레퓌스파가 결집되었다는 사실을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드레퓌스 사건이 가져온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지식인의 사회참여이다.  이 사건을 통해 지식인은 구체적 지식인.  즉 지적 활동과 사회 참여의 양부분을 동시에 충족시켜야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영화 체인질링 
아이를 잃어버린 여인에게 경찰은 어디선가 아이를 데리고와서는 그 여인에게 이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고 우기기 시작한다.  경찰에게 찾아가 항변해보았지만 그 여인은 미친사람 취급 받을뿐이다.  학교 선생님에게 찾아가 그 아이가 당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확인 받아도 그 여인은 여전히 미친사람 취급을 받을 뿐이며 급기야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이 영화의 기본 구조는 드레퓌스 사건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억울한 누명을 쓴 여인과 드레퓌스.  잃어버린 아이와 감춰진 진실.  그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된 사건.  그리고 여론조작 과정까지 말이다.  인간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기 이전에 나도 모르는 곳에서 생각 당해지고 있고 그 내밀한 영역은 언어에 의해 만들어지고 언어의 구조에의해 움직이게 된다.  은유와 환유의 법칙으로 꽉 짜여진 그물망 같은 무의식의 영역은 인간을 억압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권력 역시 하나의 거대한 상징구조이다.  거대한 체계이자 구조로서 그 안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것을 인지하거나 느낄 수는 없다.  구조에 의해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사육당하기에 구조의 틀에서 벗어나 사고하는 것도 상당히 힘든일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름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곤 하겠지만 결국 구조가 부여한 목적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조속에는 다양한 담론들이 떠돌게 되고 이는 다양한 억압적 형태를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담론은 권력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바 권력관계는 한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분유되어 각자가 억압받는자이자 억압을 행하는 자로서 나타나게 되고 이는 결국 권력의 거대구조를 더욱더 공고히 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은 위에서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바 정작 자신이 속한 상황에 대해서 개탄스러워하면서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에서 이런 권력관계의 모순을 찾아볼 수 있다. 


Copyright (c)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영화속에서 나타나는 정신병원은 하나의 소도구로서 이러한 구조의 상징성을 잘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정신병원을 하나의 거대한 구조라고 했을때 그속에서 일을 하는 의사 간호사들은 그 속에서 정신병원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일조하는 권력관계의 주체로서 존재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상황에 따라서는 저런 어처구니 없는 누명을 쓴채 이곳에 갇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지만 한치의 고민도 없이 권력관계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의 모순을 깨부시고 이것의 진실을 밝히는 자는 누구인가?  그건 바로 지식인이다.  라디오 캐스터. 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하지만 이미 이 캐스터는 지속적으로 권력구조의 모순은 그 자체를 이야기 했었지만 거기에는 눈감던 시민들은 엽기적인 사건과 결부된 라디오 캐스터의 말에는 귀를 귀울이게 된다.  그 후론 일이 일사천리이다.  능력있는 변호사의 능력을 얻게 되고 문제의 경찰서장 및 국장까지 처벌하기에 이른다.


Copyright (c)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한 정의의 승리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의는 조작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불쌍한 여자를 미친여자로 만들어버린 것도 사회이며 군중이었고 그녀를 다시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으로 불쌍히 여기고 정의의 승리를 이끌어낸 것 역시 사회와 군중들이다.  이는 드레퓌스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천하의 죽일놈에불과했던 드레퓌스가 에밀 졸라에 의해 부활하는 모습은 영화 체인지링에서 보여주는 사실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렇듯 너무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두가지 형태의 군중은 절대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부분이 재미있는 지점이다.  실천하는 지식인의 역할에 의해서 어떻게 어떠한 방향으로 여론조작이 가능한가?  그것이 불러오는 결과는 어떠한가?   이러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바로 드레퓌스 사건과 영화 체인질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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