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관리 메뉴

★ image or real

영화 나인(2009), 7명의 여인과 한명의 남자 그리고 1/2 본문

영 화/00's 영화

영화 나인(2009), 7명의 여인과 한명의 남자 그리고 1/2

유쾌한 인문학 2010. 2. 5. 13:19
반응형





나인(Nine)
롭마샬은 시카고 그리고 게이샤의 추억으로 엄청난 명성을 쌓아올린 감독으로 그의 09년 신작이다.  이 작품은 펠리니 감독의 1963년 작품인 8과 1/2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8과 1/2은 뮤지컬 영화는 아니고 그냥 일반 극형식의 영화이고 이것을 뮤지컬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듣기로는 나인이라는 동일내용의 뮤지컬도 존재하는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솔직히 말해서 좋다는 느낌도 들지않고 큰 감동도 없다.  이런 형식의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졸수 밖에 없는 영화라고나 할까.  


기본구조와 문제점
영화의 구조를 살펴보자면 귀도라는 주인공 남성이 자신의 9번째 영화인 이탈리아를 찍는 과정이 드러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의 과거와 현재까지 아우르는 총 7명의 여인들이 액자처럼 등장하면서 이때 뮤지컬 공연이 이루어진다.  물런 액자 같다는거지 그 공연자체가 그녀들의 또다른 스토리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공연이 그런식으로 나타난다는것일뿐이다.  총 몇번의 뮤지컬공연이 나오는지는 세보지 않았지만 최소 7번은 나온다고 봐야 할것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뮤지컬영화이기에 서사의 흐름자체는 좀 부실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뭐 뮤지컬이나 발레, 오페라의 고전들도 스토리의 흐름 자체는 부실한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음악 그리고 춤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많다. 

뮤지컬 영화라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음악과 춤을 위주로 하는 극과 스토리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극.  양쪽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영화형태는 양자의 장점을 모두 취하거나 아무것도 취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어느 한곳에 방점을 찍거나로 총 4가지의 형태로 나뉠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나인이라는 영화는 어떠할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이도저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이영화의 유일한 화려함은 배우들 정도랄까? 

드라마 인과성의 심각한 결함은 이 영화를 바라보는 비평적 관점을 흐리게 한다.  7명의 여인은 귀도의 삶 전체를 통과하는 욕망들의 상징성이다.  그런데 이 욕망들에 대한 큰 설명이 없으니 어떤말을 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진다.  바로 이점이 시카고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련지.  시카고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스토리와 뮤지컬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시카고에서 뮤지컬은 이야기에 스며들어 그 자체를 보완하거나 캐릭터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무대장치와 춤 그리고 음악은 기가막힐 정도의 풍자적 요소를 동시에 가지는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바로 최초로 사형당한 여자죄수 장면 아니겠는가?  결국 시카고는 대중성, 작품성, 예술성 전부 다 갖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인은 그게 없다.  뮤지컬과 극이라는 두 요소가 따로 놀다보니 이야기 구조가 치밀하지 못하게되고 드라마 자체가 재미가 없어진다.  원작에서는 귀도의 시각이 투영된 그녀들의 모습이 기가막히게 등장하지만 나인은 그런것도 없다.  거기에다 음악이나 춤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보기도 힘들다.  뭐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발레와 오페라에 미쳐살아온 나의 관점에선 솔직히 별로였다.  기억나는건 오직 란제리뿐.  어쨌건 흐리지만 흐린 그 상태대로 이 영화의 관점내에서 귀도의 욕망에 대해서 한번 풀어보겠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7명의 여인
왜 제목을 나인으로 바꾼건지는 모르겠지만 8과 1/2이라는 제목이 사실 아주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8이라는 숫자는 7명의 여인과 귀도 그 자신을 의미하게 되는바 7명의 여인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귀도의 욕망이다.  크게봐서 귀도는 어린시절의 귀도와 어른이 된 귀도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어린시절의 귀도는 두가지 형태의 대립적 욕망과 어른이 된 귀도는 그 대립의 다양한 발현이 나타나게 되는바 그것이 나머지 5명의 여인이다.

어린 귀도는 가톨릭 교회에서 자라난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도 독실한 신자인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아마 어린시절부터 그러한 신실한 삶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결국 귀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여인인 어머니라는 존재는 귀도가 가지는 도덕적 삶에 대한 욕망의 상징이다.  누구나 어린시절 나타나게 되는 어머니의 욕망을 채워주는 팔루스로서의 역할을 꿈꾸게 되는바 귀도에게 있어 그것은 바로 도덕성인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로 상징되는 욕망은 그의 부인인 루이사에게는 일종의 죄책감으로 다가가게 되고 친구인 의상디자이너 릴리에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서게 되는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낼 수 있을듯하다.

한편으로 어린 귀도는 그러한 어머니의 팔루스를 만족시켜주기위해 그러한 삶을 욕망함과 동시에 정반대의 타락성에 대한 욕망도 나타나게 된다.  이것의 상징적 여인은 사루기나이다.  극중에서는 블랙 아이드 피스의 멤버인 퍼기가 연기하는 인물이다.  사루기나에 대한 욕망은 어른이 된 후 자신의 정부인 칼라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아찔하고 금기에 대한 욕망.  여기서 한발 더나아가면 가학적이고 악마적인 성향을 보일수도 있을것이다. 

재미있는 인물은 니콜 키드먼이 연기하는 클라우디아이다.  유일하게 귀도가 성적접촉을 하지 않은 여인으로 보인다.  일종의 중간자적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그녀에 대한 욕망은 가지고 싶고 가질수도 있으되 가지지 않은 그렇다고 완벽하게 성스럽지도 완벽하게 타락하지도 않은 것을 향한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귀도와 1/2
저러한 7명의 여인을 향한 다양한 욕망들의 교집합에서 귀도라는 인물이 탄생한다.  여기에서 숫자 8이 완성되는바 그 교집합속에 서있는 귀도는 귀도의 어떤 본질을 표상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쉽게 표현하자면 7개의 욕망이라는 천을 덕지 덕지 기워만든 옷을 입고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귀도의 겉모습은 대단히 화려하고 그 욕망들을 이용하여 영화를 찍기에 한편으로는 천박하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히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9번째 영화를 제작하는것에 실패하게 되는바 이미 자신을 이루고 있는 8개의 욕망을 다 사용하였기에 그런것이 아닐련지.  재탕하자니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자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대충찍자니 자신의 명성에 흠이 갈것 같으니 각본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그는 영화를 뒤엎게 되고 그뒤 홀로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다시금 돌아와 마지막 영화를 촬영하게 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영화를 뒤엎고 홀연히 떠나버린 그는 그때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그때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을 덮고 있는 욕망들의 천으로 만든 옷안에 있는 자신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1/2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귀도가 8개의 욕망을 버렸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이 놓치고 있던 또다른 절반의 발견.  그것으로 인해 그의 작품세계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