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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걸(1995), 파편화된 개인과 그 욕망의 공격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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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걸(Showgirls)
폴 버호벤 감독의 11번째 작품으로 1995년에 공개되었다. 혹자는 원초적 본능과 비슷한 스릴러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고 그냥 어느 촌에서 쇼걸이 되기 위해 라스베가스로 온 여성이 겪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상당한 비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단적인 예로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왠만한 상은 다 쓸어담게 되는 비운의 작품이다. 거기다 이작품의 주인공이나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이나 둘다 작정하고 벗고나온건 같은데 어째 뒤의 행보가 상당히 달라진다. 샤론스톤은 대스타가 되는 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대로 기억에서 사라지니 말이다. 역시 벗더라도 좋은 작품에서 벗어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이 내려지는 순간이다.
사실 이영화에 혹평이 쏟아지는 이유는 아주 자명하다. 즉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것에 그 원인이 존재한다. 아마 평자들은 자본과 쇼비지니스 사이에 치열한 관계를 보기를 원한 것 같지만 사실 그런 부분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주로 주인공 여성의 개인적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마디로 아무나와 섹스를 통해 몸을 파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지만 쇼걸이 되어 성공하고 싶은 여성의 소소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쓸데 없는 거대자본 이런 식으로는 얘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라스베가스라는 초거대도시에서 겪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일뿐이다.
라스베가스와 자본의 욕망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는 실로 상당히 재미있는 곳이다. 사막한 가운데 도저히 도시가 들어설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자리잡고 있는 초거대도시. 그리고 이 도시를 먹여 살리는 주된 산업은 도박이다. 이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저 수많은 네온사인과 하루에 소비하는 엄청난 분량의 물 따위를 공급하기 위해 매일매일 뿌려지는 돈의 액수가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다. 존재할 수 없는 곳에 존재를 유지하려니 그럴 수 밖에.
이러한 도시가 생성될 수 있는 주된 이유는 바로 자본 그 자체에 존재한다. 즉 존재할 수 없는 곳에 거대도시를 만들고 싶은 것을 두고 자본의 욕망이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본의 욕망이 만들어낸 도시속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또다른 개인적 욕망들은 자본을 향한 욕망이라 칭할 수 있다. 자본의 욕망이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건 라스베가스라는 도시가 그 정점에 서있는 것은 확실하다. 부존재를 존재로 만들어낼 정도의 욕망이니 정점이라 칭할 수 밖에.
그리고 그 자본의 욕망이 꿈꾸던 바로 그 자리에서 자본은 개인의 욕망을 잉태해내니 온갖 종류의 욕망들이 꿈틀되게 된다. 그리고 그 개개의 욕망들이 보여 자본의 욕망이 꿈꾸던 것을 이루어주게 된다. 결국 자본의 욕망을 이루어주고 받쳐주는 그 힘은 바로 파편화된 개인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파편화된 개인과 그 욕망의 공격성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파편화 현상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뭐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곤 하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주된 이유는 자본을 향한 욕망 그 자체에 존재한다. 현대 사회자체가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다보니 모든 개인의 욕망은 자본을 향해 집중되게 되고 이러한 다양성이 아닌 단일성으로의 욕망의 집중은 자연스럽게 공격성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자본을 향한 욕망은 아주 순수한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는 순수 그자체의 열망. 이른바 목적성을 상실한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자본을 향한 욕망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되고 그것으로 인해 달성되는 목적성이 실로 어마어마하기에 여기에 집중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성을 상실한 욕망. 여기에서 아주 순수한 욕망의 결정체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순수한 욕망의 결정체는 인간이 가지는 최초의 근원성에서 확인할 수 있는바 이는 이자구조를 넘어선 그이전을 향한 근원적 욕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그러한 근원성을 향한 욕망은 신체에 대한 파편적 공격본능을 가지게 되는바 이 매커니즘이 사회라는 측면으로 확장되면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파편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극중에서도 이러한 공격성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격성을 불러온 주된 원인은 역시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매커니즘은 위에서 설명한바와 같다.
마무리
폴 버호벤 감독 영화가 가지는 주된 주제는 바로 욕망 그 자체에 존재한다. 욕망과 자본 그리고 그를 표현해내는 리얼성. 숨기는 것도 없고 가리는 것도 없다. 다드러내버리는 것이 주 목적이다보니 나신도 자주나오게 된다. 이를 두고 어떤이는 비교육적이니 뭐니 하면서 비판하곤 하지만 우리 아주 솔직해져보자. 저런 쇼야 우리 사회에서도 수시로 일어나는 현상 아니었던가? 매일밤 주요 도시의 향락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룸속에서의 작은 쇼들 말이다. 뒤로는 비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며 앞에서는 도덕적인척하는 위선에서 벗어나 이면의 적나라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폴 버호벤 감독의 리얼리즘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쇼걸은 그리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영 화/폴 버호벤] - 블랙북(2006), 전쟁이 내포한 욕망의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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