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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쉽 트루퍼스(1997), 국가의 욕망과 미국의 파시스트적 성향 본문

영 화/90's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1997), 국가의 욕망과 미국의 파시스트적 성향

유쾌한 인문학 2010. 2. 10.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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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쉽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
폴 버호벤 감독의 12번째 작품이자 로보캅 이후 10년째 되던 해인 97년도에 공객된 작품이다.  우주 SF영화로 티비에서 상당히 많이 방영했던지라 아마 많은 분들이 보았을거라 생각된다.  내용을 간단히 언급해보자면 인간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정복하게 되었는데 어디선가 발견된 외계 괴생명체인 곤충들과 충돌이 일어나게된다.  얼핏보면 곤충이지만 소행성을 조정하여 지구로 보내기도 하는 등 이런 저런 독특한 능력을 가진 곤충으로 보이고 인간은 이들과 전쟁을 수행중인 상태이다. 

이 영화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로보캅과 아주 흡사하다.  로보캅과 마찬가지로 우주방송이라는 뉴스장면이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고 그 뉴스를 통해서 로보캅과 비슷한 식이 비판점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인간 사회도 상당히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바 엄청난 군국주의의 향연을 폴 버호벤 감독이 제시하게 된다.  로보캅은 대기업, 스타쉽은 군대라고나 할까? 아무튼 별거 아닌 SF영화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영화이고 그저 그런 SF영화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영화라 생각된다.




군대와 방송 그리고 국가내 차별적 요소
영화가 시작하자 말자 나오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다.  여러분은 당신의 몫을 다하고 있냐면서 군대에 입대하라는 식이다.  더 재미있는건 군대에 갔다온 사람과 갔다오지 않은 사람의 차별적 요소이다.  즉 이 세계에서는 인간이 되려면 군인이 되야 하고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받쳐야 한다.  사실 뭐 우리입장에서는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장면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징병제가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여겨지기에 이러한 모습에 대해 의문을 품을 이유가 없다고나 할까?  그런데 모병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상당히 의문스러웠나보다.  아무튼 극중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전투현장에 방송 카메라를 보내게 되는바 모든 전투를 실시간으로 방송하게 된다.  이건 단순히 근처에서 취재하는 정도를 넘어서 전투 그 자체를 방송으로 내보내게 된다.  물런 그런 과정에서 카메라맨이 죽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사회상은 권위주의 모델의 전형을 보여주게 된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고 그의 수단으로써 전쟁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전쟁을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위기를 끊임없이 조장하고 갈등을 조장하게 되고 그외에도 아이들에게 이러한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전투원을 미화하고 아이들에게 총을 선물하는 등의 공익광고가 지속적으로 방송된다.  일반인들은 이를 통해 적군에 대한 무한 분노를 품게 되고 거기에 다시 군대에 입대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야만 진정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아마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전쟁은 베트남전이나 걸프전 그외 중동전쟁따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의 스샷에서 볼 수 있듯 장면 하나하나가 저 전쟁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니 말이다.  사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지속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이유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유지에 그 주된 이유가 존재한다.  국가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내부의 결속일테고 그 내부의 결속을 외부의 적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런식의 매커니즘은 일종의 파시스트적 경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나치의 그것과는 내용적으로 약간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전국민이 보여주는 단하나의 생각과 그를 통한 국가에의 무한 충성 유도는 파시즘과 그 구조가 완벽하게 일치하니 말이다. 


결국 이영화가 비판하고자하는 주된 지향적은 파시즘적인 성향을 강하게 내보이는 미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어떠한 나라였던가?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자유의 수호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국가이다.  미국의 역사 그 자체가 독립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니 그들에게 있어 자유정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핵심중에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이 내세우는 자유정신은 왜곡되고 편협해지기 시작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독일이 전쟁에 승리하여 절대적 지배자가 되기를 꿈꾼 것이나 절대강국인 미국의 일방통행적 국제관계나 다른게 무엇인지 나로선 모르겠다.




국가의 욕망
영화를 보면 애시당초에 인간이 버그를 건들인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식의 말이 나오게 된다.  즉 괜히 멀쩡한 그들을 곤충이라 하찮게 여겨 공격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틀린말도 아닌 것이 대전이후에 일어난 주요전쟁에는 미국이 참전하게 되지만 그 전쟁 자체가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적은 단 한번도 없다.  딱 한번의 테러만 입을뿐이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전쟁은 버그들의 행성에서 이루어지고 버그들이 행한 것은 단한번의 테러와 비슷한 수준이 원거리 지구 공격뿐이다.  결국 멀쩡한 그들을 미생물정도로 취급하여 공격을 일삼다가 이런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중간에 이르면 개별적이던 버그들이 갑자기 집단적 전략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른바 우수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 버그의 출현이다.  최고로 웃긴 장면은 아래의 오른쪽 스샷을 통해 알 수 있듯 지도자 버그를 잡았을때 땅굴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째 익숙한 모양새이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에 다달으면 다시금 방송을 통해 외친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군인이다.  군대에 지원하라." 

이런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영화에선 그래도 버그들이 곤충의 형태라고 띄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버그 취급한다.  그들 나름대로 수천년을 이어오며 살아온 삶이 있는데 외부인이 이를 짓밟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으론 그들의 강함을 약자에게 선보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과의 전쟁을 통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러고선 국내에서는 그들의 무지막지함을 열심히 선전하게 된다.  버그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침략자이지만 인간세계의 국민들은 그런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끊임없이 방송을 통해 자신들에게 주입되는 사회의 지배적 담론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있을뿐이다.  하나의 사회적 구조가 완성이 되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 밖을 보기가 힘들어지니 말이다. 

결국 자신들이 왜 버그와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진짜 목적은 사라져버리게 된다.  전쟁 그 자체만이 목적성을 가지게 되고 아무런 근거 없는 적에 대한 분노감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국가의 욕망의 실현이라 말할 수 있겠다.  국가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초거대 법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로서 살아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로 볼 수 있다.  하나하나의 구성원은 국가의 세포가 되고 그 하나하나의 구성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기조직화 과정을 통해 국가라는 생명체가 움직여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그 자체도 욕망을 가지는게 가능할터 그들의 욕망은 주로 팽창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팽창과정이 간단하지는 않게 되는바 많은 내부의 논란이 생겨나게 된다.  마치 인간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때 마음속에서 다양한 대립상이 생기듯이 말이다.  그러다 가끔 인간은 어느순간이 되면 마음속에서 다양한 대립상이 사라지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는데 그때 실로 놀라운 능력을 보이곤 한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부의 다양한 대립상을 없애고 국가의 욕망인 팽창을 이루기 위한 순수한 욕망의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과정에서 다양한 프로파간다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의 주된 매체는 언론과 방송이 된다.  그 과정이 완성이 되면 바로 목적성이 사라진 오직 전쟁 그 자체가 목적성을 띄게 되고 존재 그 자체가 자기목적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되면 그 존재는 자기목적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서 아주 순수하게 된다. 




마무리
이상으로 이 영화의 이런 저런 측면을 살펴보았다.  폴 버호벤 감독의 모든 작품을 현재 다 관람한 상태인데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은 폴 감독은 다양한 욕망을 풀어내는데 있어서는 가히 천재적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욕망에서 기업의 욕망, 국가의 욕망에 이르기까지.  그가 터치 못한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블랙북에서는 더 기가막힌 욕망들이 쏟아져나오게 되는바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이 감독을 두고 원초적 본능이나 쇼걸 그리고 로보캅 같은 오락영화만 만드는 감독 정도로 폄하하곤 하지만 이 감독은 절대 그렇게 볼 수 없는 감독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그 속에 담겨져있는 욕망의 심오함이 실로 대단하다.  그러면서 재미도 있으니 어찌 최고라 칭하지 않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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