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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레의 신화 강수진에 대하여 본문

발 레/무용수

한국 발레의 신화 강수진에 대하여

유쾌한 인문학 2012. 6. 1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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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한국에선 가히 발사진 하나만으로 신적인 존재에 이른 본좌중에 본좌이지만 정작 한국사람들은 강수진의 발사진에만 감동 받았을뿐 그녀의 공연을 통해서 감동을 받은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일까?  아주 간단하다.  전막공연을 한적이 없으니깐.  그녀가 소속해있는 슈트르가르트발레단은 그어떤 영상물도 내지 않는 저작권에 있어서 극 보수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발레단이고 이는 그곳의 전설적인 안무가 존 그랑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강수진을 못본다는 것의 의미는 정확히 말해 존 그랑코의 안무를 못본다는 것이고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슈트르가르트 발레단의 공연을 못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수진의 무용세계에 대해서 정작 한국인들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잘한다 잘한다 말만 들었지 본적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뭐 혹자는 자신이 잘 안다고 사기치며 떠벌리고 다니기도 하겠지만 난 솔직히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본적이 없으니깐.  하지만 짧은 갈라 영상들은 3개 정도 구해볼 수 있으며 나는 Taming of the Shrew에 출연한 전막 공연도 영상으로 구해와서 보았다.  두드리면 다 열리기 마련인 것이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결국 한국인에게 있어 슈트르가르트라는 소도시는 참 뜻깊은 곳이 아닐 수 없다.  그곳은 독일의 소도시로서 전형적인 공업도시이다.  벤츠 공장이 있으며 포르쉐 공장도 존재한다.  어떤면에서 보면 자동차 공장 하나만으로 돌아가는 도시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이런 곳에 이런 발레단이 있다는 점이 대단히 의미있는 부분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부산시장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오페라 하우스 하나 없는 인구 300만 인근 인구 통합 천만의 초거대도시.  부끄럽지 않나? 

강수진의 행보는 한국 발레의 초기 역사와 거의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국인 최초 국제 콩쿨 입상.  한국인 최초 해외 메이저 발레단으로의 입단.  어떻게 보면 일개인의 영광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건 한명의 성공이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맨땅에 헤딩하는것보단 누군가 선례가 있는게 대단히 중요할테니 말이다.  강수진은 1985년 주니어 발레 콩쿨중 하나인 로전 콩쿨에서 공동 1위를 하게 된다.  그 이후 그녀는 정말 의외로 슈트르가르트를 선택하게 된다.  이부분이 아주 독특한 부분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그곳에 전설적인 발레리나 마르시아 하이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위 있는 국제쿵쿨에서 1등하더라도 바로 솔리스트가 되고 그런건 아니다.  어차피 쿵쿨 자체가 의미가 없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니 말이다.  까놓고 마린스키 발레단 학교에서 수석졸업한 사람이 쿵쿨 수상 하나 없다고 해서 감히 허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즉 쿵쿨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처음에는 군무진에도 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단원에서 군무진 제일 뒷줄로 승격.  점차 앞줄로 내려오다가 어느순간 솔로가 주어지게 된다.  그작품이 1989년 잠자는 공주 1막 요정 역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1993년 존 그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주연데뷔하게 된다.  입단한지 8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사실 90년도는 이미 슈트르가르트 발레단 자체가 존 그랑코의 지휘아래 이미 세계 탑의 수준에 다달은 발레단에 위치해 있는 상태이다.  존 그랑코는 어떤사람인가?  그는 20세기 드라마발레에 있어서 맥밀란과 함께 발레를 양분해버리는 독보적인 존재중 하나이다.  즉 슈트르가르트 발레단 = 존 그랑코 발레단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의 인물이며 그는 73년에 사망하게 된다.  그가 사망한 이후 20년.  세계최고의 자리에 서기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곳에서 첫 주역무대.  

영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발레에는 발레계의 칸영화제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브누아 드 라당스라는 상이 존재한다.  매년 주어지는 상인데 이곳에서 최고 안무가, 최고 남녀 무용수 따위의 상들을 나열하여 시상하게 된다.  시상기준은 아주 간단한데 전세계의 모든 발레 단체들이 공연한 작품들을 시상하여 상을 주는 것이다.  이상은 92년도부터 러시아에서 수상되는데 99년도에 강수진이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의 여인으로 여자 최고 무용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강수진이 한국에 올때마다 레파토리에 꼭 카멜리아의 여인이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뜻깊고 의미있으며 잘하는 것이니깐.  이는 슈트르가르트 발레단의 입장에서도 대단히 의미가 있는 수상이다.  이 발레단에서 첫수상자가 나온것이니 말이다.  이게 얼마나 큰 의미일까?  간단히 말해보자면 마린스키, 볼쇼이, 파리오페라, 로열, ABT, 샌프란시스코, 라스칼라 등 최고의 권위를 가진 단체들의 수석 무용수들을 전부 물리쳤다는 것이다. 



작품해설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의 여인

위의 공연이 바로 그 문제의 카멜리아의 여인이다.  언제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드라마 발레이기때문에 현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더욱 크게 와닿으리라. 

카멜리아의 여인의 주된 스토리는 남자와 여인의 러브스토리이다.  저 둘은 서로 사랑하였지만 여자주인공은 어느 백작의 내연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사랑을 키웠지만 결국 여자는 남자를 떠나게 된다.  우연히 길에서 둘은 만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있음을 알고있지만 다가설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날밤 여자가 남자를 다시 찾아오게 된다.  이에 둘은 불타오르는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다시금 불안감을 느낀 그녀는 떠나게 된다.

[발 레/존 노이마이어] - 발레 카멜리아의 여인(La Dame aux camelias), 절제된 아름다움의 기가막힌 표현력

일단 여기까지의 이야기 라인에서 어느날밤 찾아와서 이루어지는 춤이 바로 위의 영상이다.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오페라 마농에서의 환영을 보며 불안감에 시달리는 그녀.  떠난 뒤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남자가 옆에 다른 여성을 낀채 자기 앞에서 과시하는 모습을 본 그녀.  결국 그날밤 찾아오게 되고 그때 느끼게 되는 두 남녀의 격정어린 감정.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바로 이부분이 카멜리아 여인에 있어서 핵심적인 포인트가 된다.  그렇기에 이 장면이 이 발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갈라쇼에 자주 올려지는 부분이된다.

어차피 발레라는 것은 망원경으로 보지 않는 이상 무용수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다.  즉 표정연기가 절대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물론 1층 제일 앞에서 본다면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자리는 그다지 선호되는 자리는 아니다.  위의 영상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대충 시야각이 1층 중앙라인에 앉은 사람이 몰래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몸짓에서 모든 감정을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포인트가 되는건 하반신 테크닉보다는 상반신 테크닉의 중요성이다.  아무래도 표현에 있어서는 상체의 움직임에서 빚어지는 라인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러시아 발레는 상반신 테크닉에 가히 모든걸 쏟아붓다시피 하는 것이다.

국내 상반신 연기에 있어서 최고의 발레리나는 김주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녀가 보여주는 상체라인은 가히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김주원의 지젤라인은 눈부시다 못해 숨의 멎을 정도이다.  가히 국내 최고의 연기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김지영은 테크닉이 대단히 우수하다.  오죽하면 상반신의 김주원, 하반신의 김지영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 말의 나오게된 가장 큰 연유는 신체조건에서 기인하는바가 크다.  재미있는건 두분이 나온 국내 학교가 라이벌 관계라고 들었다.  선화와 예원이라고 그랬나?  특이한건 둘은 러시아로 유학을 가는데 이때 각각 볼쇼이와 마린스키로 가게 된다.  러시아에서도 이어지는 불타는 라이벌구도!!  아무튼 기회가 된다면 김주원의 지젤을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존 그랑코의 오네긴

뿌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이작품은 의외로 해외에 많이 수출되어서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다이 그랑코의 오네긴을 레파토리로 가지고 있다.  작년에도 공연을 했었다.  이 장면은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위해 편지를 쓰다가 잠이 들게 되고 꿈을꾸게 되는데 방안의 거울에서 오네긴이 나와 춤을 추는 장면이다.  꿈속의 한 장면이다보니 아무래도 타티아나가 원하는 모습 꿈꾸는 모습 그러한 형태의 이상적인 오네긴이 잘 그려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희망적이면서 꿈에 부풀어있는듯한 모습이 강조된다.    

사실 위의 두개의 영상을 보고 강수진의 춤의 특징은 어떠하다 라고 쉽게 단언할수가 없다.  일단 고전 안무는 본적도 없고 둘다 20세기 드라마 발레인데다가 두 영상에서 드러나는 파드되의 감정도 그다지 크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기회가 된다면 강수진님의 지젤과 해적을 한번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으니 정말 안타깝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위의 두 영상을 통해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연기력이 엄청나다는 것 말이다.  




존 그랑코의 Taming of the Shrew

그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장면이다.  어떤 장면인진 모르겠다.  아마 위의 두장면과 비슷한 양상이 아닐까 판단된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주 앳되다.  이말의 의미인즉슨 상당히 오래된 영상물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너무 짧은 영상이라 뭐라고 말할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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