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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 웰즈의 맥베드 본문
멕베드
맥베드는 16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1세를 위한 공연으로 만들어졌다. 셰익스피어는 홀린세드의 연대기에 나오는 맥베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작품을 만든다. 맥베스는 연대기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주인공이 스스로 선택한 행동의 결과에 따라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비극작품이다.
멕배드를 영화화한 작품은 크게 오손 웰즈의 맥베드와 로만 폴란스키의 멕배드를 들 수 있다. 두 맥베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연출방법에 존재한다. 웰즈의 맥베드는 안개나 구름 같은 실루엣을 잘 사용하여 초현실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게 되지만, 폴란스키는 대단히 사실주의적인 양상을 취하게 된다. 이는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마녀장면만 보더라도 명확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맥베드에서 등장하는 마녀장면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웰즈는 연극을 영화로 재현하기보다는 영화의 자율성을 살려 영화의 속성에 맞도록 재구성하였다. 즉 원작을 영화로 직역하기 보다는 영화의 문법에 따라 의역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위해 표현주의적 카메라 기법을 사용하여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웰즈는 맥베드를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원작을 축약한다.
표현주의 기법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의 소외와 고립, 그리고 정신의 붕괴 과정을 과장되게 외면화하는 것이다. 웰즈는 맥베드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로우 앵글(대상을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장면)과 하이 앵글(대상을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는 장면), 딥포커스(카메라에 비교적 가까이 있는 물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초점이 맞도록 촬영하는 기법을 말하는 용어.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시각체험과 가장 유사한 영화화면으로 나타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디프 포커스는 원경·중경·근경 가운데서 선택적으로 볼 수 있으며 능동적으로 영화 속의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를 사용해서 맥베드를 크게 부각시킨다.
즉 웰즈는 맥베스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영웅인 인물이 마녀로 대변되는 초자연적인 힘에 조종당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맥베스는 자신이 선택한 행동의 결말을 인식하고 있지만, 자신의 결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고립된다.
(1) 프롤로그 마녀 씬. 마녀의 가마솥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거대한 혼돈의 흐름으로 확장되어 클로즈업된다.
사실 원작의 마녀들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첫째는 그 마녀들이 진짜 마녀로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견해와 둘째는 그런 능력은 없는 평범한 시골 노파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두가지 견해를 절충하여 모두 취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마녀를 바라보는 두가지 견해의 차이점은 맥베드라는 텍스트를 바라보는 전체적인 시각에서 엄청난 차이점을 드러내게 된다.
웰즈의 경우는 마녀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극에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즉 초현실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신비로운 마녀들의 마법이 맥베드의 비극의 원인으로서 "운명적인 비극(운명극)"으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폴란스키의 마녀들은 그냥 시골의 아낙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신비로운 모습도 보이지 않고 어떤면에서 보면 그냥 시골여자가 헛소리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폴란스키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으로 맥베드의 자유의지 그 자체에 주목하여 "성격적인 비극(성격극)"의 방법론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점은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세계 전반에 보이는 인간 내면에 대한 지독한 성찰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마녀의 예언에 대해 맥베스와 뱅코우가 서로 다르게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마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 아니며, 그 영향력은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있음을 의미한다.
맥베드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가공할만한 살인의 결과를 느낀다. 그는 마녀의 예언이 좋을 수도 있고 안좋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막 3장 : 이 괴이한 징조는 나에게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으렸다. 만일 그것이 나쁜 일이라면 왜 먼저 진실을 예언어 해주 나에게 성공의 확신을 안겨주었는가. ..... 현재의 두려움은 상상되는 미래이 공포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지금은 시역을 상상하고 있다 뿐인데 그 때문에 나는 마음의 평형을 잃고 여러가지 억측으로 질식되어 공허한 환영만이 눈에 보이는구나.”
즉 상상과 실제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상상의 산물이 실제와 같이 강력하고 구체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한다. 쉽게 말해 맥베스는 자신의 상상에 큰 영향을 끼친 마녀의 예언에 승복한 것이다.
(2) 당컨왕 살해
멕베드는 무사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이지만, 왕권에 대한 야망에서 마녀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결국 악행을 선택한다. 맥베드의 분열된 자아는 강렬한 상상을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맥베스는 왕을 살해하는 행위의 문제와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 사이의 괴리를 경험한다. 그는 자신의 손이 한 행위를 눈이 보지 않기를 희망한다. 반면 레이디 맥베스의 보다 단순 명료한 결단과 충동은 맥베스의 섬세하고 복잡한 갈등을 더욱 부각시킨다.
“2막 2장 : 이 손이 무슨 꼴이람? 아!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구나! 바다의 신 넵튠이 다스리는 망망대해의 바닷물인들 이 손에 묻은 피를 씻어버릴 수 있을까? 못한다. 오히려 넓고 한없는 바닷물을 빨갛게 하여 푸른 대양을 붉게 물들게 할 것이다.”
맥베스는 상상을 통해서 그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큰 고통을 겪는 반면, 부인은 맥베스의 상상에 의한 갈등이 남자답지 못한 비겁함으로 치부한다.
(3) 뱅코우 살해와 유령
셰익스피어는 멕베드의 야심이 단순히 왕권에 있는게 아니라 왕조의 설립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뱅코우 부자를 살해하려는 맥베드의 시도는 마녀의 예언이 실현될 것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하며, 그와 동시에 그 예언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두려움은 뱅코의 충성심과 정신의 강건함과 지혜가 맥베드를 위축시킬뿐 아니라, 맥베드의 결함과 약점을 두드러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맥베스는 왕권을 대물림하기 위해 뱅코우와 그의 아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맥베드는 자객들에게 뱅코우에 대한 원한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사나이다움을 강조하면서 제거를 명한다. 뱅코우의 살해를 지시하는 장면에서 맥베스의 거대한 모습과 그 아래 동떨어져 있는 두 명의 자객 사이에 놓인 거리감은 맥베스가 인간 사회로부터 고립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뱅코우 유령의 등장으로 그의 악행과 그에 따른 공포와 두려움이 공개되자 맥베스는 식탁을 엎어버리고 철저하게 고립된 폭군으로 변한다. 뱅코우 유령의 등장은 새로운 왕조의 기반인 악행을 여실히 드러냄과 동시에 표면적인 질서와 조화를 극적으로 전복시킨다. 맥베스가 홀로 경험하던 두려움과 고통이 외부로 발현되면서 그와 인간 공동체 사이의 절연이 시작된다.
“3막 4장 : 나 자신의 잇속을 위해서 어차피 내친 걸음인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소. 피비린내나는 일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결판을 지으리다. 이제 물러서는 것은 앞으로 나가기보다도 어려운 일이오.”
유령의 등장으로 맥베스스는 살인은 단지 과거로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계속되며, 살인을 통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자신의 확신과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행위를 지속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닫는다.
(4) 마녀에게 다시 찾아감.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맥베스는 인간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다시 마녀를 찾아가 예언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마녀들의 예언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그것은 다시 헛된 희망으로 이어진다. 마녀들의 예언은 이중적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5) 맥더프 살해
맥베스가 맥더프 일가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직접 등장하는 것은 웰즈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본작에선 사람을 맥더프의 성에 맥베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레이디 맥베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자살하는 장면도 있는바 이 또한 웰즈의 상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