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age or real
아파치 요새(1948), 군인정신과 허상의 가치 본문
반응형
존 포드(John Ford)
존 포드는 자기 자신을 소개 할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나의 이름은 존 포드이며 나는 서부영화 감독이다' 정말 아주 간결하고 핵심적인 자기 소개가 아닐련지. 1894년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하게 되는 그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서부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모든 영화들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고 초기의 그의 작품들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1924년에 만든 철마라는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이년후인 26년 세 악당은 엄청난 대 실패를 하게 되고 그 이후 그는 한동안 서부 영화를 멀리하게 되며, 그 이후 그는 다양한 코미디물이나 액션, 멜로 영화들을 만들게 된다.
유성영화시대가 열리면서 1939년 역마차라는 작품으로 다시금 서부영화로 돌아온 그는 어마어마한성공을 거두게 되며 역마차라는 작품은 서부영화 최고의 명작으로 거듭나게 된다. 존 포드는 철저하게 헐리웃의 시스템에 의존한 감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러한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유능한 감독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아무래도 초기 서부극의 한계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데 그것은 인디언에 대한 멸시적 측면이다. 하지만 그의 후기 작품으로 들어가면 이러한 웨스턴에 수정을 가하려는 시도가 생겨나게 되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작품인 '샤이엔 족의 최후(1964)'이다.
자기 자신을 대놓고 서부영화 감독이라고 소개하였지만 그의 작품세계가 오직 서부영화라는 하나의 주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예컨데 역마차, 분노의 포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수준 높은 주제성은 많은 고찰점을 남겨주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색의 공간을 남겨두는 그의 작품 스타일이야 말로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점이 된다.
Fort Apache
헨리 폰다와 존 웨인이 출연하는 기병대 영화이다. 존 포드 작품중에 기병대 영화가 상당수 포진하고 있는데 이 작품과 황색 리본을 한 여자, 리오 그란데를 놓고 기병대 3부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세작품 외에도 기병대 작품은 몇개 더 존재한다. 2시간 남짓 되는 영화로 소소한 에피소드가 몇가지 존재하지만 큰 흐름은 아파치 족들의 탈출과 그들을 잡으러 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대립상으로, 이 작품이 흥미로운건 얼핏보면 단순한 미국식 서부 영웅 영화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헨리 폰다가 맡은 써스데이 중령은 명예를 아주 중요시하고 나폴레옹, 알렉산더 등을 운운하며 전술을 말하지만 결국 아주 단순한 4열 돌진으로 전멸해버리는 그런 인물이다. 어떤면에서 보면 고지식할 정도로 명예를 중시하며 이러한 인물상은 부대내에 상당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오로키 소위의 아버지를 들 수 있겠는데 마지막 전투에서 써스데이 중령과 함께 죽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김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존 웨인이 맡은 요크 대위는 합리적인 인물로서 써스데이 중령과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사실 이 인물은 오로키 소위와 함께 마지막 전투에서 뒤로 빠져 살아남게 되는 인물로서 그는 인디언들도 굉장히 명예롭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군인정신과 허상의 가치
이 영화가 유의미한 것은 영웅 이야기인듯 하지만 영웅담이 아닌 것에 존재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군인 정신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묘한 균형미라고나 할까? 명예와 군인정신의 강조는 영화 속 내의 아파치 요새라는 작은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자들은 죽으로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명예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폴레옹과 알렉산더를 찾으며 전술 타령을 하던 써스데이 중령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단순한 4열 돌진 전술은 그러한 고지식한 명예와 정신의 표상이라 볼 수 있다. 바위산에서 엄폐한채 진형을 짜고 있는 인디언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지를 향해 뛰어 들어가는 그들은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면서 자랑스럽게 죽으로 뛰어들어 대패하게 되며, 그들은 미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영웅으로 신격화되어 화자된다.
사실 이는 굉장히 무모하고 쓸데 없는 명예욕으로 인해 부대를 전멸시킨 정말 한심한 작전에 다름아니지만 이들이 영웅으로 신격화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가치를 바라보는 태도에 존재한다. 즉 모래알 같은 국가가 유지되고 이어나가기 위한 최소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영화적 태도는 50년대 당시 서부 영화가 가지는 기능적 측면에 기인한다. 즉 역사 의식이 빈약한 미국이 취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신화 만들기의 과정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아주 단순한 해결책의 제시이다. 당시 미국사회에서 주로 제시되는 사회적 문제점은 고립적 상황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 충돌, 환경과 산업의 충돌 따위의 가치충돌이다. 영화는 아파치 요새라는 작은 부대 사회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크게 봐선 미국 자체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허상의 가치일뿐이다. 그것을 내세운 건국자들 스스로가 이미 종교적 탄압자가 아니었던가? 결국 사회의 주류적 지배층은 백인 중상층 이상의 기독교 신자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고 그 아래로 자연스럽게 신분체계가 형성된다. 그외의 인생은 결코 아름답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 이렇듯 만들어진 가치를 좇고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던지는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힘들다. 사실 어느 집단이든 특정한 가치지향적 태도는 반드시 가지기 마련이고 그것을 향한 맹목적 태도는 현대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이 뛰어난 주된 이유는 이러한 태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되 이것을 가지고 선동을 하지도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이쪽 저쪽을 다 확인할 있는 균형미가 백미라고 볼 수 있겠다.
마무리
영화의 마지막이 인상 깊다. 존 웨인은 죽어간 그들의 명예를 드높이면서 투철한 군인정신을 다시금 이어나가게 된다. 요크 대위는 써스데이 중령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마무리를 놓고 많은 말들이 있지만 결국 허상의 가치를 쫓는 무의미함의 연속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요크 대위가 죽는다 한들 또 다른 써스데이 중령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태도는 오늘도 내일도 지속될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연속성의 상징이 바로 마이클 써스데이 요크 오로키 아니겠는가?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