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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2009), 가이아와 이성에 관해서 본문
아바타
아바타와 주체의 문제
아바타에는 굉장히 진일보한 미래의 기술이 등장하는데 그중 눈에 띄이는 기술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조금 원시적인 형태로서 기계적 로봇을 직접 탑승하여 조종하는 방식이다. 사실 이 로봇은 매트릭스3에서 나오는 로봇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두번째 기술이 이 영화의 핵심인데 이른바 인간과 아바타의 링크이다. 인간의 몸은 안전한 곳에 존재한채 정신만 아바타라는 인형속으로 주입시키는 방식이다. 물론 아바타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생물학적 완전성을 가진 신체이다. 다만 생각하는 자아만 없을 뿐이며 자아는 링크를 통해서 연결하게 된다. 인간의 정신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길 수 있는 기술을 통해서 과연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문명권에서는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 즉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어디론가 간다는 식의 사고를 전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어딘가를 설명하기 위해 신이라는 허구적 존재를 만들어내게 된다. 하지만 사실 영혼이라는 것은 증명이 안되는 것으로 철저하게 종교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진 무엇에 다름이 아니다. 더욱이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사실은 뇌라는 것이 일종의 컴퓨터와 같은 정보처리 기관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정신은 크게 두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외부사실의 인식을 위한 처리과정이며 둘째는 그것을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유적 측면이다. 외부사물을 인식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시각, 촉각, 청각, 미각, 후각의 인식기관을 거치고 다시 뇌라는 정보처리기관을 지나 외부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인식된 외부사물을 종합하고 그외에 다양한 형태의 추상적인 생각이나 개념들을 처리하기 위해 사유하는 뇌의 작용이 적극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바타 기술은 인식기관과 그 출력기관으로서의 몸을 다른 것으로 대체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뇌의 정보처리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제어할 수 있느냐? 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 정보처리기관으로서의 인간의 뇌를 객관적 물질이 아닌 가상현실과 같은 것과 연결시켜 따로 보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뇌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라는 정보 그 자체를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뇌를 로봇이라는 형태의 출력기관을 만들어 연결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서 확인이 가능한 한가지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생명과 비생명의 차이가 무엇일까?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생명에 대한 관점 자체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가은 결국 분자구조로 이루어지는 유기체적 물질의 총합을 몸으로 삼은 것에 다름 아니며 우리가 흔히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분자구조로 이루어진 유기체 물질의 총합에 불과하다. 결국 기계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기계를 오래사용하다보면 고장이 나고 낡아서 고장난 부분을 새것으로 교체할 수도 있을 것이며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낡게 된다면 그냥 폐기처분하듯이 세포구조로 이루어진 인간의 신체 역시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충분히 기계와 같은 취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바타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기술에 대한 관점이다. 기술에 대한 숭배와 기술과 자본이 가지고 있는 ‘의지’가 추구하는 모든 존재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지배력의 강화라는 목표는 결국 인간 자체에 대한 완전한 기계 부품화라는 가능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가 보여주는 분업화된 사회 구조에 의한 언제든지 타인으로 교체 가능한 부품적 성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무엇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바타라는 기술은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어디로 나아가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극중에서 제임스 설리는 바로 이러한 질문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그는 해병으로 다리부상을 입은 상태이다. 강인한 해병으로서 살아온 제임스의 주체성은 다리부상과 더불어 심각한 절망을 맞이하게 된다. 기술이 굉장히 발달하였기에 이를 치료할 수도 있지만 치료비 문제로 인해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다. 해병으로서 수많은 사람들고 조우하며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주체를 재형성해온 제임스는 다리 부상과 함께 새로운 타자와의 조우도 기존에 마주쳤던 타자도 자신의 삶에서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살아는 있으되 껍데기만 남은 삶으로 어디에도 소속하지 못한채 경계를 서성이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의 형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이 형의 유전자와 일치하기에 형을 대신하여 아바타 행성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제임스는 아바타라는 새로운 신체를 얻게 되고 우연히 나비족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되어 그들의 문화를 익히게 된다.
지구인으로서 제임스는 굉장히 공허한 존재이다. 그리고 아바타라는 껍데기를 덮어쓴채 나비족으로 활동하는 제임스 역시 경계위에 선자로서 모호한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놀라운 기술에 의해서 나비족의 신체를 얻었지만 이는 인형에 불과한 신체이고 그 속에 깃든 자신의 영혼은 여전히 완전함을 가지지 못한 형국이다. 나비족의 신체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의 정신 자체과 주체성 자체가 여전히 불안하기에 그의 삶은 지구인이었을때와 마찬가지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를 서성이게 된다. 하지만 점점 제임스는 나비족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문화를 익히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익히고 그들의 사고관을 익힘으로써 조금씩 바뀌어 나가게 된다. 나비족이라는 새로운 타자와의 조우는 그의 주체성을 새롭게 재형성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제임스의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의 정신은 점점 나비족과의 조우를 통해 그들과 비슷한 형태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중이지만 결국 자신의 정신이 원래 깃든 곳은 병든 몸이라는 현실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주어진 아바타라는 인형은 막강한 자본이 들어간 인형이기에 버릴 수가 없어 마지못해 그에게 주어진 우연에 불과하다. 자신의 소유도 아니며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도 될 수 없다. 더욱이 회사의 한 소속원인 그로서는 회사가 가지는 자본에 대한 추구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임무도 가지게 된다. 이에 제임스는 하나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두개의 주체라는 독특한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의 선택은 영화의 서두에 나오듯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으며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할 수 있는 나비족으로서의 삶이다. 심지어 회사에서 다리를 준다고 하였음에도 그는 그것을 거부하게 된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
판도라 행성에는 에이와 라고 불리는 대지의 여신이 존재한다. 극중에서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는 판도라 행성의 식물을 연구하다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식물들이 서로 전기적 신호를 이용하여 의사소통같은 것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비족들이 신성시하는 그 나무가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을 통괄하는 존재는 나비족이 숭배하는 대지의 여신인 에이와이다. 그리고 이 여신은 만물의 균형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진다.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은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균형론으로 지극히 인간 위주의 생각에서 빚어지는 사고관이다. 이에 따르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지극히 인간을 위한 인간 위주의 사고관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생존에 적절하다면 얼마든지 자연에 대해서 다시금 폭력적 양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한계도 가지게 된다.
둘째는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균형론으로 대표적으로 가이아론을 들 수 있다.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고관 즉 가이아에 대한 생각은 다양한 신화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이아라는 명칭 자체도 대지의 신의 이름을 따온 것이며 지구와 대지에 대한 경외의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이아론의 기본 태도는 이 지구를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지구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들과 함께 능동적으로 환경을 조성해나간다고 바라보게 된다. 생물은 단순히 지구의 환경에 종속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생물 스스로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성해나갈 수 있는 전 지구적 입장에서 순환의 일부분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의하면 자연스럽게 수많은 지구 생명의 멸절의 위기에서도 끊임없이 멸종하지 않은채 버텨온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든 생명 스스로가 지구 순환의 일부분으로 스스로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성해나갔을테니 말이다.
제임스 카메론 - 터미네이터(1984, 1991), 오토포이에시스와 인공지능
제임스 카메론 - 어비스(1989), 사회와 마음구조의 심연
제임스 카메론 - 트루라이즈(1994), 거짓을 통한 또다른 자아의 형성과 군수산업
제임스 카메론 - 영화 타이타닉(1997), 자본의 총아와 상징적 몰락
제임스 카메론 - 아바타(2009), 마음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가이아, 이성에 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