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age or real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 시대의 변화와 과거의 화석 본문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이탈리아 사람으로 1929년에 태어나 1989년 4월 30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황야의 무법자가 그의 출세작으로서 무법자 삼부작중 첫번째 작품이며 세작품 모두 클린튼 이스트우드가 연기하게 된다. 그가 선보이는 웨스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이탈리아 사람이 만든 미국 서부극이라는 점이다. 미국인의 시각이 아닌 외부의 시각에서 바라본 미국 근대에 대한 시각이 독특하며 이러한 시각은 미국의 입장과 그들의 사고관 그리고 가치관을 철저하게 배제한채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함으로써 미국인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잘 포착해내게 된다.
이러한 측면은 수정주의 서부극이 좀 더 진일보한 형태인 스파게티 웨스턴을 탄생하게 한 원동력이 된다. 촬영 기법 면에서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극대화하여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촬영기법은 웨스턴 특유의 강인한 남성미를 뿜어내는데 아주 적합한 기법으로 보여진다. 한가지 안타까운것은 세르지오에서 극점을 향해 달려간 웨스턴은 세르지오 이후로 그 명맥이 사실상 끊겼다는 것이다. 실로 정말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수정주의 서부극과 스파게티 웨스턴
서부극이라는 것은 하나의 장르적 특징을 가지는 헐리우드의 대표적 영화들을 말한다. 1800년대 후반의 미국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이 영화 장르는 통일된 네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주된 내용은 미국이 가지는 개척 정신 그 자체를 강조하고 그에 수반되는 남성미를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인디언이 악당이 되고 그로 인해 선악구조가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선은 양키가 맡게 된다.
그러다 1950년대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되는바 서부 개척은 사실 인디언 야만인들에 대한 문명인들의 위대한 승리라기보다는 영토확장을 위한 침탈이었다는 점을 폭로하게 된다. 즉 서부에서 일어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과 실제 그곳에서 발생한 사건사이의 괴리를 그대로 밝혀내는 것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이러한 수정주의 서부극의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서부극이지만 미국에서 촬영되지 않고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주로 촬영되고 언어 역시 이탈리아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다. 흔히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불려지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식 표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서부극과 수정주의 서부극 그리고 스파게티 웨스턴 참조.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이작품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7번째 작품이자 무법자 3부작 이후에 1968년에 공개된 작품이며 스파게티 웨스턴 작품으로는 4번째 작품이 된다. 이작품에서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이상 세르지오의 영화에 출연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엔니오 모리꼬네와의 음악작업은 그의 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까지 이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에 공개된 세르지오의 유명한 3작품인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는 이른바 무법자 3부작이라 부르는 작품이며 전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하게 된다. 이 무법자시리즈가 끝나고 난 후 세르지오 감독은 다시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는데 이름하여 옛날 옛적(Once Upon A Time) 시리즈이며 그 첫번째가 바로 이 작품이다. 두번째 작품은 석양의 갱들(Once Upon a Time... the Revolution)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으며 마지막은 그의 유작인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이다.
앞선 무법자 시리즈들이 스피드한 전개와 아주 간결하고 직선적인 스토리 구조를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Epic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게 된다. 즉 거대한 대서사물로서의 스토리 구조를 가지게 되는데 이는 이 작품의 기본 배경이 되는 서부 개척당시 한 마을의 탄생의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이 작품은 러닝 타임이 상당히 길어지게 되는바 거의 2시간 40분에 육박하는 시간대를 가지게 되는데 그로인해 호흡이 아주 길어지게 된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지겹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일단 인물은 세명의 남성과 한명의 여성이 주인공이 된다. 한명은 하모니카 부는 사나이로 정체가 모호한 인물이고 나머지 둘은 악당인데 한명은 극중 대악당인 프랭크이며 또다른 한명은 약간 귀여운 악당인 샤이엔이다. 그리고 여성주인공은 질이라 부른다. 내용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어느날 어느 한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가족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가족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던 질은 뉴올린즈에서 먼길을 찾아오게 되지만 도착해서 보니 그녀를 반기는건 시체들뿐이다.
이러한 몰살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프랭크와 프랭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모튼이라는 인물 때문인데 이 땅앞으로 기차 선로가 깔릴 예정이라 땅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몰살 당한 가족들 역시 알고 있었다. 프랭크는 그들을 몰살시킨 후 곳곳에 샤이엔이 일을 저지른 것처럼 흔적을 남기게 되고 이에 샤이엔이 그를 추적하여 복수하게 된다. 샤이엔과 동시에 하모니카도 프랭크는 추적하게 되는데 하모니카의 경우는 과거의 프랭크와의 악연으로 인해 개인적인 복수를 행하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기존의 서부극과는 달리 뚜렷한 선악대비구도가 형성되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작품을 보다보면 프랭크가 악인이라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않고 샤이엔은 악당은 커녕 귀엽다는 생각마저 드니 말이다. 이는 스파게티 웨스턴 특유의 모호한 특징을 잘 살려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호한 구분이 과거 무법자 시리즈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그건 아니고 이러한 모호함은 이 영화가 가지는 Epic으로서의 측면을 잘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시대배경인 서부개척 당시의 미국과 영화 자체의 배경인 하나의 마을의 탄생과정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웨스턴의 시대배경은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단계이며 미국의 팽창 역시 상당하다. 동부 해안가를 따라선 수많은 대도시들이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서부로 쭉쭉 뻗어나가는 정말 거칠것 하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지배하는 논리는 당연히 자본이 된다. 자본이 서부로 뻗어나가 더 많은 자본을 끌어모으길 원하는 것이고 그 욕망이 서부개척과 철로를 깔게 한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자본의 상징적 캐릭터가 바로 프랭크를 고용한 몸을 잘 움직일 수 없는 사업가이다. 이 사업가는 철도를 까는 사람인데 대서양을 바라보며 시작한 그 공사를 태평양을 바라보며 끝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고 거기다 일도 잘 안풀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그의 욕망은 당시 미국이 가졌던 욕망과 정확히 동일하다. 당시 미국은 서쪽으로 계속 확장하여 태평양에 닿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명백한 운명' 이라고 칭할 정도로 중요시 여기게 되고 그로 인해 캘리포니아주와 뉴멕시코주 근방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입되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멕시코는 이 땅을 팔기를 거부하게 되고 이를 원인으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의 결과는 미국이 승리하게 되고 캘리포니아와 유타, 너바나, 애리조나, 뉴멕시코의 일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새롭게 쟁취한 주를 노예주로 두느냐 자유주로 두느냐 라는 문제와 헌법적 해석의 문제 그리고 경제적 문제 등이 충돌하여 남북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이작품은 앞선 석양의 무법자보다 약간 시대적으로 앞선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총잡이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프랭크?? 악당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돈 많은 사업가의 하수인일뿐이다. 더욱이 그 돈많은 사업가는 척추결핵으로 인해 몸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자이다. 프랭크는 나름 사업가를 배신 해보기도 하지만 그 사업가는 프랭크의 수하들을 다시 돈으로 매수하여 프랭크에게 칼날을 겨누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서부개척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과거와 당시 현재가 단절된다는 것이다. 결국 뛰어난 명사수이자 기수였던 그들은 과거에 묻힌채 살아가는 자들이고 서부개척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불러온 미국 사회 전반의 단절현상에서 화석으로 굳어버린 자들이 되는 것이다.
세르지오 감독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아주 냉정한 시각으로 멕시코 전쟁 당시의 서부의 핵심적 측면을 정확히 포착해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웨스턴 형식은 기존의 웨스턴이나 수정주의 웨스턴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진일보한 형태로서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매우 거시적으로 바라본 웨스턴이면서 그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아래에서 올려다본 웨스턴이라고 칭할 수 있게 된다.
마무리
똑같은 시대를 놓더라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에서 도출되는 양상은 실로 너무나도 다양하다. 서부개척이라는 시대상황을 놓고 단순한 인디언 계몽 식의 웨스턴도 존재할 수 있고 알고보니 백인이 침략자이다 라는 식의 웨스턴도 가능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세르지오식의 웨스턴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무엇일까? 하나의 시대는 촘촘한 3차원의 그물망처럼 이루어져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너무 일방향적인 직선구조의 시각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자주해보게 된다. 굳이 아날적인 지식과 마인드를 가지지는 않더라도 시각의 다양성 더 나아가 생각의 다양성이 불러온 결과가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바라보고 있자면 우리네 현실이 대단히 안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세르지오 레오네 - 석양의 갱들(1971), 혁명과 아이러니
세르지오 레오네 -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 시대의 변화와 과거의 화석
세르지오 레오네 - 석양의 무법자(1966), 미국남북전쟁과 신화적 허상
세르지오 레오네 - 석양의 건맨(1965), 서부개척의 신화적 허상
세르지오 레노에 - 황야의 무법자(1964), 서부극의 새로운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