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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6회, 생래적 범죄인론과 사이코패스 그리고 정신분석 본문

방 송

혼 6회, 생래적 범죄인론과 사이코패스 그리고 정신분석

유쾌한 인문학 2009. 8. 2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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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볼 내용은 6회 방송만 볼겁니다.  그러니까 목요일 방송분이죠.  오늘도 여러가지를 보겠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생래적 범죄인론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리고 데미안 책이 가지는 의미를 풀어보겠어요.

드라마를 안보시는 분들도 그냥 쭉 보시면 얻어가는게 많을꺼라 생각해요.  오늘도 내일도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는 용짱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  오호호호호


그림
왜 그 이서진 여친 정신과 의사가 그림같은걸 보여주던 장면 기억 나시죠?  스샷부터 확인해봅시다.


위의 스샷들은 둘다 이서진이 보는거에요.  이서진이 첫번째 스샷의 그림을 보니 두번째의 스샷의 형태로 보이는거죠.  즉 이서진은 저 그림을 보고 나비 이런걸 생각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이제껏 본 살해현장의 기억이 떠오르는거에요.  이유야 간단합니다.  이서진의 억눌린 증오가 저 그림이 나비로 안보이게 하는 주된 이유이죠.  




왜 이런말이 있죠?  양극단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고..  이서진과 그 나쁜 변호사는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그 변호사만 해도 그렇잖아요?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넘 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넘도 아버지였던거에요.  자식의 고통을 보니 그 고통이 장난이 아닌거죠.  위에 스샷보세요.  저 사악한 넘도 자식에게는 저렇게 애지중지 합니다.  

즉 극중 악인에게도 억눌린 무의식에는 의식에서 보이는 악랄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자아가 숨어있다는거지요.  이서진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겉보기에는 아주 선하고 정의롭게 보이지만 그의 무의식에는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억압된 자아가 숨어있습니다.  결국 이서진과 변호사.  양자는 반전된 형태로 너무나도 닮아있는거죠.  

그 사람 기억나십니까?  이서진과 가깝게 지내던 신부님 말이에요.  그 신부가 뭐라고 했었죠?  니가 악마를 들여다 볼때마다 그 악마도 너를 들여다본다고 했죠?   이 대사의 의미가 바로 제가 설명하는 바로 그것인거죠.  



하나 마음속의 하얀방의 의미
하나 마음속 하얀방에 대해선 앞선 리뷰에서도 지속적으로 말해왔어요.  재미있는 방이죠.  스스로 설정한 또는 발견한 무의식에서의 안전한 영역.  이 방이 재미있는건 문이 닫혀버리니 동생인 두나가 힘을 발휘 못한다는거?   그럼 이방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주인공 하나와 동생 두나의 관계는 참 묘합니다.  이둘의 관계는 분열된 자아를 뜻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하나와 그 동생 두나의 성격은 완전 다르죠.  두나는 복수를 위해서 살인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는 그걸 거부하죠.  결국 하나는 이 두개의 자아로서 분열되어 있다고나 할까?

평소에는 주인공 하나의 자아가 의식을 지배하고 있지만 가끔씩 무의식에 억눌려있던 동생 두나의 자아가 솟아오릅니다.  바로 그때 극중 장치로는 두나 귀신이 씌이는거에요.  

자 보세요.  하나가 저 방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문을 닫아버린거죠.  그러니 두나도 저방에 못들어갑니다.  동생 두나가 열심히 문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리지만 안열어주죠.  문일 안열려 못들어가니 동생 두나의 자아가 발현이 안되죠.  바로 이지점에서 저 방의 정체가 들어납니다.  저 방은 의식으로의 통로 같은거죠.  



저 상황은 현재 하나가 죽음의 위기에 닥친 상황이죠?  잘 안보이겠지만 저 나쁜넘 손에 칼이 쥐어져있어요.  죽일려고 온거죠.  대위기의 상황!!  동생 두나의 자아는 스스로 발현하여 위기를 극복하려 하지만 하나가 문을 닫아버렸기에 발현이 안되죠.  결국 어머니가 저문을 열었고 그 열린 문을 통해 두나의 자아가 들어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죠.  


데미안의 의미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가지 의문점이 들어야 합니다.  왜 이리 등장인물들이 전부다 극단적인가?  그렇잖아요?  중간은 없어요.  아주 나쁜넘이거나 아니거나..   즉 선악 이분법적이죠.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요?  그걸 설명하는 장치가 바로 데미안이에요.  그리고 데미안은 이 드라마의 주제이기도 하죠.

여러분들은 이서진이 말하는 '그들은 바뀌지 않아' 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드라마속으로 확 빠져들면 맞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말이 안되죠.  이서진이 말하는 이론을 보고 생래적 범죄인론이라고 부릅니다.  롬브르조라는 사람이 창시한건데요.  

근대에 들어와 이성과 과학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생겨났고 그 믿음은 형법학계에선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기전에 먼저 범죄인의 특징을 알아내서 미리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는 짓거리가 범죄인들 쫙 모아놓고 얼굴의 공통된 특성을 찾아낸다거나 뭐 그런거죠.  예컨데 생래적 범죄인은 코가 크다.  뭐 이런식이죠.  

이게 '아 그렇군 끄덕끄덕' 하고 끝낼만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학문은 영향을 주고 받거든요?   이건 넓게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열등한 인간과 우등한 인간을 나눠보겠다는 시도란 말이죠.  근대적 이성의 폐단은 도구적 이성이라는 단어하나로 설명이 되는 것이고 근대이성의 미친 광기를 목격한 이후부터는 인간을 미리 결정지으려는 시도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뒤로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환경결정론으로 대세가 기울게 되죠.

그런데 현대에 와서 다시 생래적 범죄인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환경결정론 대세가 뒤바뀐건 아니에요.  여전히 환경결정론이 맞는 말인데 가만히 찾아보니까 생래적 범죄인이 있더라는거죠.  그게 바로 사이코패스입니다.  사이코패스 이론이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거에요.  

자 여기까지 왔으면 생각해봅시다.  극중 이서진의 말이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이서진은 틀렸어요.  이서진은 너무 극단적이거든요.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서진도 아주 문제가 많은 인물이죠.  억압된 무의식의 고통이 장난 아닌 사람이에요.  즉 왜곡된 인물이죠.  저위에서도 말했지만 이서진이나 극중 악인들이나 똑같아요.  다만 의식과 무의식이 반전되었다는 차이점만 있을뿐이죠.

즉 이서진은 하얀색 의식 위에 분열이 생기는 인물이고 악인들은 검은색 의식 위에 분열이 생기는 인물이죠.  극중에서 이서진 말이 맞다면 극중 악인들은 귀신을 보면 안됩니다.  그들이 귀신을 본다는 것의 의미는 그들의 의식이 분열되면서 생기는 내재된 무의식과의 충돌이거든요.  그들이 진정 순수한 '악' 그 자체라면 무의식 역시 순수한 '악'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럼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이 생길 이유가 없어요.  즉 귀신을 볼 이유가 없는거죠.  극중 변호사도 저렇게 자식을 간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죽도록 냅두겠죠.  


자 이제 마무리 합시다.  데미안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알을 깨고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는거에요.  극중 악인들이나 이서진처럼 억눌린 무의식이 많은 사람보단 조화로운 사람이 좋은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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