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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2001), 패러디를 통한 디즈니의 극복 본문

영 화/애니메이션

슈렉(2001), 패러디를 통한 디즈니의 극복

유쾌한 인문학 2010. 4. 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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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1, 2, 3를 통해 슈렉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각각 풀어보겠습니다.


슈렉(Shrek)
2001년 드림웍스에서 정말 어처구니 없는 3D애니메이션이 하나 내놓게 된다.  사실 3D애니메이션은 픽사가 사실상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고 3D애니메이션의 역사 그 자체가 픽사의 역사라고 칭할만큼 둘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그런 관계이다.  그리고 이러한 픽사는 디즈니라는 배급사를 등에 업은채 하나의 거대한 축을 이루게 된다.  물론 둘 사이에는 끊임없는 위기가 싹트기도 하는데 이 위기의 본질은 초거대회사인 디즈니의 압력에 의해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말의 의미는 최대의 파트너인 픽사 마저도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 넣어 버리는 디즈니의 거대함과 경직됨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애니메이션 회사의 역사는 디즈니를 극복하기 위한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드림웍스는 사실 이집트 왕자, 치킨 런 등을 통해 적당한 성적을 얻다가 2001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들고 나오게 되니 그 작품이 바로 슈렉이며, 이 작품은 패러디라는 예술 양식을 사용하게 된다.  사실 패러디라는 것은 이미 역사가 아주 깊은 문학중 하나이지만 슈렉 같이 온갖 패러디의 잡탕으로 구성되면서 풍자와 해학을 잃지 않고 서사구조 역시 무너지지 않는 모습은 이 작품이 최초가 아닐까?  결국 이 작품으로 디즈니는 이루지 못했던 칸 영화제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슈렉은 단순하게 보면 잡탕식의 패러디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장치들이 아주 수준높으며 유의미하다.  특히 인상 깊은건 공간의 문제와 그 공간을 통한 디즈니를 향한 직설적인 공격 그리고 캐릭터들의 대비성이다.  이를 유심히 분석해보면 슈렉이 왜 칸 영화제 본선으로 갔는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슈렉이라는 애니메이션은 간단해 보이지만 결단코 간단하지 않은 아주 좋은 작품이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해본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어느 괴물이 살고 있는데 우연히 기사가 되어 공주를 구하러 가게 된다.  한편 그 공주는 이상한 마법에 걸려 낮에는 사람 밤에는 괴물이 되고 진정한 사랑을 만나야만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상태이다.  아무튼 기사는 공주를 구하러 가서 용과 대적하게 되고 기사는 공주를 어찌 저찌 구해내서 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기사는 그녀에게서 사랑의 느끼게 되지만 자신의 괴물됨을 생각하여 그녀를 놓아주게 된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의 사랑을 깨닫게 된 기사는 공주를 찾아가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이러한 슈렉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보다시피 이 내용에서 기사가 괴물이라는 설정만 딱 빼고 보면 전형적인 고전 동화이자 디즈니식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드림웍스는 이러한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차용해 왔을까?  그 이유는 전형적 스토리 라인의 차용에서부터 진정한 패러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Copyright (c) Dream Works. All rights reserved.


공간과 캐릭터 문제 
영화를 유심히 뜯어보면 누가나 쉽게 크게 두가지로 양분되는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공간은 위의 첫번째 두번째 스샷으로 볼 수 있듯 슈렉이 살고 있는 늪이라는 곳과 극중 악당 군주인 파콰드가 살고 있는 거대 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캐릭터 역시 슈렉이라는 캐릭터와 악당 군주인 파콰드라는 캐릭터로 정확히 양분된다.  이 두가지 공간과 캐릭터성은 디즈니를 조롱하기 위한 핵심적 장치가 된다.  위의 두번째 스샷을 보면 알다시피 아주 거대한 성이 바로 파콰드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 공간은 디즈니랜드 내부에 있는 성을 그대로 상징하게 되는바 저성을 맨처음 본 슈렉의 대사가 아주 인상 깊은바 '저 성의 주인은 컴플렉스 덩어리인가봐' 라고 말하게 된다. 

저 성의 내부로 들어가보면 더 기이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아주 살기 좋고 완벽한 환경을 조성하는 성이지만 그곳은 뭐랄까.  아주 황량한 느낌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뭔가에 억압된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와 동시에 늪의 공간을 바라보면 그곳은 활기차고 사람사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게 된다.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디즈니라는 초거대 기업은 활력과 창의력이라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죽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늪의 공간은 창의력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늪은 애벌레를 짜서 치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고 연못에 들어가 방귀를 껴 낚시를 할 수도 있는 살아있는 공간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드림웍스는 공간과 캐릭터를 통해서 디즈니를 상징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그들이 가지는 폐쇄성과 보수성에 대해서 말이다.  디즈니의 폐쇄성은 다양한 캐릭터들 즉 백설공주나 빨간모자의 늑대, 세마리의 곰, 그외 요정들 따위의 디즈니 캐릭터를 쫓아내기에 이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파콰드 군주가 살고 있는 성은 도대체가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결국 그들은 늪으로 몰려오게 된다.  그들이 자유롭게 살아숨쉴 수 있는 자신들의 진정한 공간으로 말이다.


패러디의 시작과 피오나 공주
그렇게 늪으로 몰려온 캐릭터들에 의해서 파콰드 군주와 단판을 지으러간 슈렉은 그만 기사가 되어 피오나 공주를 구하러 떠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진정한 패러디가 시작된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슈렉이라는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스토리는 전형적인 기사의 공주 구출이야기 얘기로서 공주와 기사의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그런식의 스토리 라인이다.  이 스토리 라인은 고전 동화에서부터 디즈니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어떤 디즈니의 상징적이 스토리가 된다.

드림웍스는 이 기본적인 스토리를 그대로 차용해와 기본적인 플롯을 구성한 이후에 그 내부에서 그 각장면을 뒤집어버리면서 패러디를 시작하게 된다.  일단 슈렉은 공주가 갇힌 성에 도착하게 된다.  도착해보니 용이 존재하긴 하는데 이 용이 대단히 웃기다고 해야 할까?  디즈니식으로 전개가 된다면 그 용은 아주 사악한 용이고 슈렉이 그 용을 처단한채 공주를 구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꼬아버려 용은 당나귀에 사랑에 빠지고 슈렉은 우연히 아주 운좋게 공주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공주의 모습이 너무 우습다.  마치 연습이라도 한듯이 누운채 기사를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자기가 상상해오던 기사와는 너무 다른 슈렉의 모습에 그녀는 외치게 된다.  "백마는 어디에 있느냐?  키스는 언제 하느냐?"  즉 이시점에서의 피오나는 전형적인 공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피오나 공주는 이러한 타성에서 벗어나 슈렉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내면을 바라볼 수도 있는 그러한 양상을 보여주는 캐릭터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공주를 구출한 후 성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더 우습다.  중간에 로빈훗을 만나게 되는데 그 로빈훗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로빈훗이 아니다.  그는 선의의 악당이 아닌 그냥 순수한 악당 그 자체로 등장하게 되고 결국 로빈훗은 피오나 공주에 의해 처치게 되게 된다.  매트릭스의 유명한 장면을 그대로 본따서 말이다.  아래의 스샷 4번째 장면이다. 

최고의 패러디는 영화의 마지막에 나타난다.  디즈니식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면 공주의 저주가 풀릴때 그는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으로 남게 되고 슈렉 역시 멋진 남성으로 변신하여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어야 하는데 되려 이를 뒤집어 피오나 공주가 괴물이 되고 괴물들끼리 사랑을 느껴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로 나아가게 된다.  해피엔딩은 해피엔딩인데 그 엔딩이 방식이 완벽하게 뒤집힌 형태라는 것이다.


Copyright (c) Dream Works. All rights reserved.


마무리
사실 뭐 너무 뻔한 패러디들인지라 분석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아주 그냥 작정하고 드러내버리니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은근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즉 과거부터 항상 주입식으로 받아들여온 보수적 동화 이데올리기를 아주 통쾌하게 파괴함으로 그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가끔 이 영화를 본 아이들 중에 마지막 장면에서 울어버리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왜 그럴까?  이것은 그 아이들이 벌써 보수적 동화 이데올로기에 심각하게 함몰되어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되지 않고 괴물이 된채 끝맺는 동화의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울어버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들도 얼마나 지독하게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함몰된채 살아가고 있을지 말이다.

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런글 올리면 꼭 곡해해서 디즈니는 악의 성지 정도로 상상하시는 분들 계시는데 그런건 아니다.  결국 슈렉을 통해 드림웍스 팀이 말하고 싶은건 이거 아니겠는가?  다 양 성.  어차피 그들도 다 디즈니에서 공부하고 나온 애니메이터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주시고 디즈니는 디즈니대로 여전히 훌륭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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