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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세계의 전반적 특징 본문
일본 만화의 위대한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세계는 실로 놀랍고도 신비롭다. 자연을 향한 그의 애착. 다양한 상징. 그리고 만화로서의 가장 큰 덕목인 재미까지 갖춘 완벽에 가깝다 할정도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들중 이름난 것은 다음과 같다. 이웃의 토토로, 미래소녀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마녀배달부 키키, 붉은돼지,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위의 포뇨. 이 모든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된 문제의식과 구조 그리고 상징성을 찾아볼 수 있는바 이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사실 5가지 비밀이라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2가지 비밀이다. 결국 도구적 이성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다양한 상징으로 풀어내는 방식이니 말이다. 영화 특히 만화에 있어서의 상징성은 매우 중요하다. 즉 만화가 담고 있는 기의를 기표로 바꿔서 텍스트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나무를 봤다고 하자. 그걸 설명한다면 말로 하든 글로 쓰든 그림을 그리든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그 나무 자체를 창조하는건 아니다. 그냥 기호로서 모사하는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나눠지게 된다. 예를 들어 고양이 또는 cat 이라는 단어를 보다면 글자 그 자체는 기표가 되는거고 저 글자를 보고 야옹하는 동물을 떠올리는건 기의가 된다. 결국 기표는 기의를 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기표와 기의가 만나게 되면 기호가 된다. 그리고 이 기호는 거대한 체계로서의 구조를 이루게 되는것이다. 만화에서는 이 기호가 다양한 그림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럼 그것들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기의를 뜯어내서 현실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결국 하야오 작품 분석은 하야오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제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기호분석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1. 도구적 이성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핵심적 문제제기로서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들 수 있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모든 것을 수단화 함으로써 나타나는 자연 파괴적 모습과 인간소외의 단면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호르크 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론만큼 잘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고 판단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데카르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코키토 에르고 숨. 여러분들 다 아시는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이런 의문을 품었다. 내가 느끼는게 정말 느끼는 것일까?? 나의 몸뚱아리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어떤 악마가 나를 기만하는게 아닐까?? 이런 의문에 의해서 데카르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데카르트적 회의 또는 방법론적 회의라는 것이다. 세상 전체를 놓고 의심스러운건 다 쳐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아무리 악마가 나를 기만하더라도 기만당하는 사유만큼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는 내가 생각에 속하는게 아니라 생각이 나에게 속한다는 점이다.용짱이렇게 되면 개인은 자기 투명성을 가지게 된다. 자기투명성이란 내가 내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채 그 어떤 것도 나의 사유와 인식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코키토가 멋진게 바로 이부분이다. 완벽한 주체성. 모든 사람은 독립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는 주체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아래에 있고 나의 통제 아래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코키토가 인간을 중심에 세운건 좋았는데 이게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목적지향적이게 되고 효율성만을 추구하게 되고 그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게 된다. 인간 이외의 것은 전부다 도구화시켜버리는 도구적 이성이다. 여기서 여성은 인간인가 아닌가?? 여기서 여성은 인간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닌 존재이다.
즉 근대이성은 인간을 새롭게 등급화 시켰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중심에 인간을 놓고 자신만을 보증하는 이런 식의 주체성은 주변의 것들에 대한 극히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태 파괴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모습말이다.
우리사회는 현대에도 여전히 이런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에서 시작되는 인간중심적 사고관은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엄청난 지배 이데올로기이며 이것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환경파괴적 사업계획들은 실로 우리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2. 자연의 상징성과 이중성
저러한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보여주는 환경파괴, 자연파괴적 모습은 하야오 작품의 핵심적 요소이다. 즉 자연을 보호해야한다는것이 주된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라퓨타 나우시카 원령공주 토토로
그런데 이러한 자연을 하야오는 아주 독특한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건 바로 나무와 물이다. 생명의 상징으로서의 나무가 등장하는 작품은 라퓨타, 나우시카, 토토로, 원령공주이다. 이 네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자연과의 더불어 삶. 바로 그것이다. 자연 그 자체를 논하지 않는 그외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생명의 상징으로서의 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자연을 논하는 작품에서 나무와 물이 반드시 동시에 등장하는것도 아니다.
저러한 나무와 물의 상징성은 엘리아데의 성과 속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특히 토토로의 경우가 확실한데 토토로의 나무는 자세히 보면 금줄이 보인다. 우리네 전통에서도 흔히 금줄이 달려있는 공간은 성스러운 공간으로서 그곳에서의 행동은 심히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이는 성의 공간의 특성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바 첫째 전통적 인간들은 성의 공간에 가까이 살려고 한다.용짱둘째 성은 위를 향한 출구이다. 셋째 성은 공간적으로 세계의 중심이다. 이러한 성의 공간으로서 현현을 하야오는 나무와 물로서 표현하고 있다. 결국 저 나무가 있는 곳은 자연의 치유의 상징으로서 성의 공간이고 그외 인간문명이 싹트는 곳은 자연을 파괴하는 속의 공간이 된다.
나무의 상징성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수호자로서의 동물이다. 나우시카에서는 오무. 원령공주에서는 시시가미와 늑대 그리고 멧돼지로 표현되고 있으며 토토로에서는 토토로라고 불리는 가상의 동물이 나온다. 이들 동물들은 대부분 자연 그 자체의 상징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크게 두가지이다. 치유하거나 파괴하거나.용짱원령공주에서의 시시가미는 엄청난 치유를 보여주지만 목이 잘린 시시가미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자에 다름아니다.
나우시카의 오무는 어떠한가? 오무 역시 더듬이를 이용하여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해를 인간이 파괴하려고 하는 순간 오무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돌진하게 된다. 이는 자연의 양면적 상징성을 잘보여주는 극중 장치이다. 현실에서도 자연은 실로 두려울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주며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지 않던가?
3. 인간문명과 자연의 대립의 상징성
자연의 이중적 상징성과 더불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인간문명과 자연의 대립적 상징이다. 하야오 작품에서 인간문명은 다양한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작품에 따라서 그에 대한 시각은 약간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나우시카에서의 인간문명은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며 심지어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인 부해마저도 파괴하려드는 극히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령공주에서의 타타라 마을 사람들 역시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우시카와는 약간 다른데 어쩔 수 없는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령공주에서 타타라 마을 사람 이외의 사무라이등으로 표현되는 권력자들은 전형적인 파괴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줄뿐이라는 점에서 나우시카와 원령공주가 궁극적인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작품내에서 주연급의 인간집단은 다양한 고뇌를 보여주며 많은질문을 던지고 있으나 그외의 전반적인 인간사회는 그 자체로서 인간들 사이의 반목과 대립을 보여주고있다.용짱이는 결국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자신의 나라 또는 자신만을 중심에 놓은채 타국의 나라 또는 타인은 철저하게 수단화시키고 있는점을 잘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을 표현하는 상징은 다양하다. 보통 각종 화약무기, 전쟁, 철의 생산 등 인간 문명의 핵심인 불의 상징으로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자연은 어떠한 형태로든 치유의 공간을 가지게 되며 그 공간은 물로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야오의 많은 작품에서는 핵심적 공간으로 호수가 나오게 된다. 물과 나무가 동시에 나오는 경우도 있고 나무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초기작품에서의 모습이고 후기로 들어가면 이런 상징성은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연보호라는 대명제를 깔아놓는 작품이 아니다 할지라도 인간문명에 대한 대립적 비판 상징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내포하게 되어 있다. 결국 이러한 불과 물의 상징성 역시 성과 속으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4. 순수한 여성의 치유적 상징성
하야오 작품에는 반드시 나이 어린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주인공 여자아이는 때묻지 않고 순수하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징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이다. 쉽게 말해 파괴적 남성문화의 상징성과 치유적 여성의 상징성의 대립을 말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인간문명과 자연과의 상징적 대립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파괴적 남성문화의 상징성은 3번에서 설명한대로 인간들 사이의 대립구도와 자연에 대한 파괴를 자행하는 인간문명으로서 표현된다. 이러한 인간문명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데 원령공주에서는 타타라 마을과 그 촌장으로 상징되고 나우시카에서는 두제국으로 상징된다. 붉은돼지에서는 주인공인 붉은돼지 그 자체가 상징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파괴적 상징성은 대부분 극중 주인공 여성에 의해 치유가 되는데 이를 두고 상징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우시카를 보자. 이 아이는 자연과 교감을 하며 인간과 자연의 변증법적 합일을 이끌어내는 인물로서 왜곡된 인간을 치유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는 어떠한가? 소피 역시 자아를 상실해가는 하울과 마력을 잃어버린 황야의 마녀를 돌보면서 그들을 치유하게 된다.
라퓨타의 시타는 어떠한가? 그녀는 대제국의 왕족으로서의 삶보다는 지상에서 평범한 인간의 삶을 추구하며 종국에는 라퓨타 기술의 핵심을 파괴해버리는 결정을 한다. 붉은돼지에서의 피오는 어떠한가? 포르코의 인간에 대한 회의과 분노를 녹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듯 하야오 작품에서의 여성 주인공은 인간문명과 그 대립점의 화해와 치유의 매개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건 바로 원령공주이다. 여기서 원령공주는 자연의 충실한 대변자로서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는 여성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타작품에서의 어린 여성의 역할은 아시타카라는 젊은 남성이 맡게 된다.용짱그 이유를 간단히 언급해보자면 원령공주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대화해의 실패와 그 가능성의 상징적 매개체라고 여겨진다. 자세한 내용은 원령공주 리뷰 본편을 참고하시면 좋겠다.
아무튼 여기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생물학적 성별이 중요한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울의움직이는 성에서 설리반선생이나 황야의 마녀 그리고 라퓨타에서 도라 같은 경우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실상 사회적 성별은 남성으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결국 중요한것은 파괴적 남성문화와 치유적 여성문화의 상징성이다.
5. 비행의 상징성
하야오 작품은 솔직히 전부다 날아다닌다. 날지 않은 경우는 거의 본적이 없다. 왜 이들은 항상 날아다니는가? 이는 궁극의 자유를 상징한다. 지상은 대부분 인간의 대립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공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행은 그곳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자 치유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품의 엔딩장면을 보더라도 치유의 대상으로서의 객체는 거진 하늘을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그성에서 다같이 살아가며 그 성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라퓨타에서는 라퓨타가 하층부의 기계문명을 파괴시킨후 상층부의 성만이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붉은돼지 역시 마찬가지로 마지막은 멋진 비행으로 마무리를 지어준다. 하지만 역시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하는데 이는 원령공주이다. 여기서 비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이유는 역시 원령공주편이 담고 있는 하야오의 깊은 고뇌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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