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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맥베드(1971), 내적 두려움과 잠재된 씨앗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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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드(Macbeth)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6번째 장편영화이다. 맥베드는 다들 아시다시피 셰익스피어의 비극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원작의 명성이 대단한지라 꽤나 많은 영상물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오손 웰즈의 맥베드와 폴란스키의 맥베드이다. 웰즈의 맥베드는 1948년도 작품인데 흔히 폴란스키의 맥베드와 전면적으로 비교되곤 하는 그런 작품이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웰즈의 맥베드를 중심에 놓은채 뭐가 다른지를 연구하고 어떤면에서 진일보했는지를 바라본다고 볼 수 있겠다. 웰즈야 워낙에 유명한 대감독이니 말이다. 맥베드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스의 비극들과 비슷한 면도 많이 존재한다. 뭐 사실 비극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그리스의 비극 플롯 형식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그 형식을 따를때 가장 완벽한 비극이 탄생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사실적 해석
이 두 맥베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연출방법에 존재한다. 웰즈의 맥베드는 안개나 구름 같은 실루엣을 잘 사용하여 초현실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게 되지만 폴란스키는 대단히 사실주의적인 양상을 취하게 된다. 이는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마녀장면만 보더라도 명확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맥베드에서 등장하는 마녀장면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원작의 마녀들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견해가 존재하게 되는데 첫째는 그 마녀들이 진짜 마녀로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견해와 둘째는 그런 능력은 없는 평범한 시골 노파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두가지 견해를 절충하여 모두 취하는 견해도 존재하는데 본글에서는 논하지 않겠다. 이러한 마녀를 바라보는 두가지 견해의 차이점은 맥베드라는 텍스트를 바라보는 전체적인 시각에서 엄청난 차이점을 드러내게 된다.
먼저 두 감독과 셰익스피어 원작을 비교해보자면 웰즈의 맥베드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마녀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원작에서는 마녀가 총 4번 등장하지만 웰즈의 맥베드에서는 총 6번 등장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건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직접적으로 마녀가 제시되기보다는 초자연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초현실주의적인 연출법을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각은 마녀에 대한 두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를 취한 것으로 보이는바 텍스트를 직접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 아닐까 판단된다.
두번째로 폴란스키의 맥베드와 원작과의 차이점은 마녀의 등장을 줄여버리는 것에 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총 4번 등장하지만 폴란스키의 마녀는 총 3번 등장하게 된다. 이는 웰즈가 마녀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극에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마녀의 중요도를 떨어트리기 위한 방법론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폴란스키의 마녀들은 그냥 시골의 아낙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신비로운 모습도 보이지 않고 어떤면에서 보면 그냥 시골여자가 헛소리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웰즈와 폴란스키의 마녀에 대한 표현의 차이점을 살펴보자면 이는 맥베드라는 비극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웰즈는 초현실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신비로운 마녀들의 마법이 맥베드의 비극의 원인으로서 "운명적인 비극"으로 보는 시각이며, 폴란스키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으로 맥베드의 자유의지 그 자체에 주목하여 "성격적인 비극"의 방법론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점은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세계 전반에 보이는 인간 내면에 대한 지독한 성찰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두감독의 원작에 대한 명백히 대립되는 해석의 차이점은 희곡의 방백의 차용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방백이란 연극에서 행해지는 독백의 하나인데 극중 상대 캐릭터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관객에게는 들리는 혼잣말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웰즈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방백 부분이 극히 줄어들게 되지만 폴란스키의 작품에서는 원작의 방백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게 된다. 희곡에서의 방백의 사용은 그 케릭터의 내면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어 욕망과 갈등을 표현하는데 있는바 폴란스키 감독은 이러한 인간 내면의 이해를 주안점으로 삼기에 방백으로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내적 두려움과 잠재된 씨앗
이미 언급한바이지만 이 작품에서 마녀의 역할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 맥베드가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영주가 되고 왕이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운명적인 장치로서 해석될 만한 부분들은 전부 배제시키거나 약화시켜버린다. 아마 할수만 있다면 마녀 장면도 삭제해버고 싶었을정도가 아니었을지? 하지만 마녀를 빼버리면 셰익스피어 원작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기에 그는 마녀를 극히 단순하게 처리해버린다.
비극이라는 것은 사실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바 운명비극과 성격비극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웰즈처럼 마녀들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면 맥베드의 모든 비극의 원인은 운명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되기에 운명비극이 된다. 하지만 본작은 그런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하여 성격비극의 성향을 띄게 된다. 바로 이 운명비극과 성격비극의 부분이 셰익스피어 맥베드의 원작 해석에 있어서 마녀부분의 차이를 드러내는 주된 원인인 것이며,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어느 방향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서 마녀들의 역할은 맥베드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게 된다. 즉 그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었는바 그 욕망은 상당히 불확실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어떤면에서 보면 햄릿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햄릿처럼 고민하다 아무것도 못하는건 아니고, 다만 행위 전과 행위 후에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욕망사이의 갈등이 주안점이 된다. 이러한 갈등의 핵심은 욕망과 두려움으로 나타나게 되는바 마녀들이 첫장면에서 말하는 맥베드는 왕이 되고 그의 부하는 왕의 후손을 낳을 거라는 그 말들은 그 욕망과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투사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 바로 자신의 부하의 귀신을 보는 장면이다. 폴란스키 영화에서는 실제 귀신이 등장하는 방법론보다는 그냥 헛것을 보는 것으로 처리된다. 이러한 피흘리는 귀신을 보는 장면 역시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잘 표현하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또 한가지 눈여겨 살펴볼 부분은 맥베드의 부인이다.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서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남편에게 순종적인 여성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도 동시에 싹트고 있는바 맥베드로 하여금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도록 그를 자극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아주 악독하고 지독한 마녀와 같은 모습으로 드러나는건 아니다. 맥베드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욕망이 혼재해 있는 그런 양상을 보여준다.
마무리
정리하자면 결국 이 작품은 지속적으로 맥베드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어둠과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 주안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외부의 상정하는 어떤 악을 제시한채 선악 이분법적인 태도로 접근하지 않는다. 핵심은 맥베드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으로의 빠져듬이다. 그것을 가장 잘보여주는 장면이 위의 스샷에 있는 거울씬이다. 거울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거울이 존재하고 그안에 들어가면 또 다른 거울이 존재하며 그 끝에서 그는 자신이 죽인 그의 부하를 만나게 된다. 끝도 없이 빠져드는 내적 두려움의 나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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