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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실(1994), 집단과 폭력 그리고 남겨진 기억 본문

영 화/90's 영화

영화 진실(1994), 집단과 폭력 그리고 남겨진 기억

유쾌한 인문학 2010. 9. 1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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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Death And The Maiden)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4번째 영화이다.  시고니 위버가 출연하는지라 국내에서 개봉할때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된다.  사실 진실이라는 제목 자체가 딱히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냥 원래대로 죽음과 소녀를 했으면 더 나았을텐데.  시고니 위버의 죽음과 소녀?  좀 이상하기도 하고.  원작이 있는 작품인데 아리엘 도프만의 희곡이다.  로만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은 원작이 존재하는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건 바로 음악이다.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를 메인곡으로 사용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음악이다.  나에게 단 한곡의 음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죽음과 소녀를 선택할 정도로 정말 사랑하는 음악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음악이 고문용 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정으로 등장하게 된다.  고문을 당하는 도중에 흘러나오는 죽음과 소녀.  고문이라는 것을 당해본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이 음악이 얼마나 지옥처럼 느껴졌을지 약간 감이 오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특징을 한가지 짚어보자면 영화의 러닝타임과 영화내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일치라는 부분이다.  특히 시고니 위버가 의사를 붙잡은 이후부터 영화속의 시간과 영화 상영시간이 정확히 일치하며 흘러가게 된다.  이런 형태가 아주 없는건 아니지만 흔한 것도 아니다.  어떤 작품은 영화 속의 시간과 상영시간이 완벽하게 100프로 일치하는 영화도 있는데 진실 같은 경우는 한 7할 정도가 일치한다고 보면 되겠다.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스토리상의 시간은 시고니 위버의 어렸을때 고문당한 시점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영화라고 하는 것은 세가지 시간이 존재하게 된다.  스토리상의 시간,  플롯상의 시간,  그리고 영화 러닝타임.  이 세가지 시간의 관계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꽤나 유의미한 영화 관람 방법이 되겠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미의 어느 국가인데 과거 독재정권시절에 시고니 위버는 고문을 당했었는데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인데 어느날 자신을 고문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자신의 남편이 자동차가 펑크가 나게 되고 그가 도와주게 되어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시고니 위버는 그의 얼굴을 본적은 없었지만 목소리를 듣고 단번에 알게 되고 이에 그를 붙잡은채 자백을 받으려고 한다.  한편 남편은 현재 인권위원회 위원장이자 유능한 변호사인데 목소리만 듣고서 이사람이 고문을 행한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서 풀어주라고 하지만 그녀는 응하지 않는다.

시고니 위버를 말리기 위해서 대화를 하던 도중 남편은 정황상 그가 고문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자신의 지위상 쉽사리 복수를 행할 수도 없다.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그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고 사과를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남편은 그에게서 인간적으로 자백을 받아내려 노력하게 된다.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시고니 위버는 급기야 그를 처형하려고 하게 되고 그때 그 의사는 진실을 내뱉게 된다.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I. Allegro
 
1987년 7월 이후에 공표됐으며 녹음된지 20년이 지나서 저작인접권 만료됨.




집단과 폭력
이 영화는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이야기가 다 도출되는 작품이다.  시고니 위버가 의사를 죽이려고 바닷가 벼랑끝으로 끌고 갔을때 그때 그는 진심 어린 자백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사로서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치료할려고 시작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강간하라고 유혹하게 되었다고 한다.  점차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자신의 위치가 고문당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우위에 서있고 절대적인 위치에 서있다고 여겨지자 갑자기 모든 것은 쉬워지기 시작한다.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는 상황을 인식하자 그는 변하게 된다.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시키는대로 할뿐이기에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여기까지 나아가니 그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성기에 전기 고문을 하고 난 후에도 성적흥분이 가능한지에 관한 의문 따위들 말이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끝나게 되었지만 의사는 솔직하게 말한다.  끝난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이다. 

의사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굳이 그가 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가 했겠지만 그래도 자신에겐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선택권은 존재했으니깐.  하지만 이런 개인책임따위가 중요한건 아니다.  핵심은 집단과 폭력이라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된 상태이다.  최근에 이와 관련된 책이 한권 나왔는데 제목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실 이와 관련한 연구는 대부분 홀로코스트와 관련하여 진행되지만 그 연구성과는 비슷한 다른 예로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인간이 행한 짓은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다.

그 이론들의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홀로코스트 당시에 유태인을 학살한 사람들은 지독하게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이나라에서 고문기술자로 활동했었던 사람 역시 밖에서 보면 지독하게 평범한 사람일뿐이다.  영화속의 의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는 인권을 옹호하고 그를 지지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기본권에 대해서 한치의 의심을 품지도 않으며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특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간의 모든 생각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행위들을 상상해서 행하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지다 어느 순간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마적 성향이라고 멋있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핵심은 폭력 그 자체에 존재한다.  로만 감독의 작품들이 대부분 이러하다.  그의 작품을 전부다 보신분은 거의 없겠지만 내가 전부다 보았으니 로만 감독 작품세계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에 대한 집착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적합한 원작을 선택하여 표현해내는 것이 로만 감독의 작품세계 전반이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이러한 끄집어냄에 있어서 무조건 도출되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폭력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은 반드시 등장하게 되고 그 폭력 자체가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무슨말인고 하니 그 폭력들을 보고 혐오감을 느껴 "인간이 어떻게?"라는 말보다는 "나라면 과연?" 이라는 의문점이 찍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잔인한 폭력이지만 대단히 현실감 있는 폭력이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력이기도 하다.  이부분에서 바로 로만감독의 예술성이 도출된다.  즉 인간의 근원적 폭력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력을 제시해버리는 것이다.  진실이라는 작품은 이러한 표현기법에서 극점에 서게 된다.  사실 로만 감독의 개인사를 아시는 분이라면 이 작품과 피아니스트라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 너무 늦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시점에 들어서야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무리
이 작품 역시 좋은 작품이다.  특히 피아니스트와 연계하여 바라본다면 더 좋지 않을까?  로만 감독의 작품은 폭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초기 작품에서는 주로 개인적 측면에서의 고통이나 폭력을 제시하게 되고 그 폭력의 범위도 이웃들을 넘지 않지만 후기 작품에서는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게 된다.  특히 올해 나온 유령작가 같은 경우는 음모론을 전면으로 내세운 스릴러물로서 폭력의 범위를 극단으로 넓히게 된다.  무슨말인고 하니 유령작가에서 말하는 폭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폭력이라기 보다는 넓은 의미의 폭력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폭력이라는 것도 단순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 정의의 범위를 얼마나 좁게 그리고 넓게 잡느냐에 따라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식하셨으면 좋겠다.  뭐 법 공부 하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아주 쉽게 이해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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