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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1965), 현대인의 찢겨짐과 강박 본문
혐오(Repulsion)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이다. 첫번째 장편영화 이후 장 뤽 고다르 등과 함께한 옴니버스 영화가 있지만 구할 수가 없는지라 생략한다. 출연배우가 까뜨린느 드뇌브인데 그녀의 다섯번째 영화이다. 사실 난 이 배우가 그렇게 유명한 배우인지 몰랐었다. 그냥 와 이쁘다 요런생각만 가지고 마님에게 "이 영화 배우가 이쁘네 누구지?" 라고 물었다가 제대로 한소리 제대로 들은 그런 기억이 있는 작품이다. 네이버 영화쪽에는 반항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있는데 잘못된 제목이다. 이 작품은 1965년 1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여자 연기자상인가? 라는 부문에 후보로 올라가게 된다. 사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까뜨린느의 연기가 상당한건 부정할 수 없다. 뭔가 광기에 휩싸인 여성상이 아주 흥미롭다고나 할까. 다만 아쉬운건 컬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컬러를 원한다기 보다는 아주 단순하게 컬러로 그녀를 보고 싶은 욕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와 남자친구가 여행을 가게 되는데 홀로 남은 그녀는 심각한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다. 집이 막 부서지는 상상에서 남자에게서 강간당하는 상상까지. 특히 현관문을 향한 공포가 가히 일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집에 전화를 하게 되는데 그녀가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회사에서도 손톱손질 도중 사고가 나게 된다. 그날밤 그녀의 남자친구가 답답함에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게 되고 이에 그는 대문을 부순채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무심히 살해하고 또다시 자신이 강간을 당한다는 상상에 빠지게 되는데 이제는 그 정도가 심해져 스스로 옷을 다 벗은채 온통 강간당한것 같은 분위기마저 스스로 연출하기에 이른다. 지속적으로 환상에 시달리던 그녀는 급기야 벽에서 손이 나와 자신을 잡으려는 환상까지 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날 집주인이 방세를 받으로 오게 되고 그는 그녀에게 묘한 흑심을 품게 되고 집세를 걱정하지 말라는 따위의 말을 하면서 까뜨린느를 강간하려고 들다가 그대로 살해당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지속적으로 환상에 시달리게 되고 그녀의 광기는 점점 극심해진다.
두번째 장편영화인데 상당히 인상 깊은 연출력을 보여준다. 가장 멋진 부분은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까뜨린느의 환상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 환상들은 다양하게 제시되는데 벽이 갈라진다던지 벽에서 어떤 손이 튀어나와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던지 등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고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환상은 바로 자신이 강간당하는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과 다양한 상징들의 나열을 통해서 찢겨져 나간 그녀의 내면을 정확히 보여주게 된다.
사실 그녀가 왜 저렇게까지 심각한 남성 혐오와 자기 보호를 위한 강박에 걸린건지 알 수는 없지만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많은 것을 짚어낼 수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가장 마지막에 이르면 탁자위를 카메라가 지나가면서 두자매의 어린시절 사진을 살짝 보여주게 된다. 아주 이상적으로 보이는 가정의 사진인데 그 위에 그림자가 얹어지게 되고 그 얹어진 그림자가 마치 행복한 가정을 파편화시키는것처럼 느껴진다. 위의 스샷이 바로 그 장면이다.
사실 강박이라는 감정이라는게 그렇다. 이사람들 특징이 뭔가 자신이 더렵다고 규정한 것에 대해서 대단히 집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남성의 신체에 의해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혐오하게 되고 뭔가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진 않는다. 오직 강박과 거부만이 있을뿐이다. 위의 스샷을 통해 확신할 수 있는건 그녀는 어린시절 저 사진속에서 완벽하게 갇혀버린 인물이라는 점이다. 즉 저 사진과 같은 완전성과 고결함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주는 광기의 원인은 저러한 완전성이 스샷처럼 찢겨져나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먼저 언니를 살펴보자. 언니라는 사람은 유부남과 만나고 있는 더러운 인물상이다. 자신이 꿈꾸는 고결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행동을 하니 자기 언니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측면이 더욱 그녀의 증상을 강화시킨게 아닐까 판단된다. 그러다 언니가 여행을 가게 되자 그녀는 갑자기 문을 두려워하게 된다. 언니가 그 문을 나갔다는 것은 더러운 것들의 추방이 되는 것이고 그 추방된 것들은 다시금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예정된 현실이기에 그 문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은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에서 더욱 강화된다. 일단 자기 언니가 떠난 그 순간 만큼은 그 집안이라는 공간은 급작스럽게 순수해진다. 마치 위의 스샷처럼 말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집안엔 자기 언니가 곳곳에 더러움의 흔적을 남겨놓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기 언니가 만나던 유부남 남자친구를 위해 만들던 음식을 먹지도 않고 처리하지도 않은채 썩혀 들어가게 된다. 더러운 것이기에 손대기도 싫고 그대로 썩어들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남자친구는 어떠한가? 계속 그녀와 키스하기를 원하고 뭔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데 그녀에게 있어서 그런 관계들은 자신이 이상적이고 깨끗하다고 믿는 것과 아주 거리가 멀다. 그녀의 내면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가득찬 자신만의 작은 성이 존재하게 되는바 그 성에 자꾸 더러운 것들이 침입하게 되니 어찌 마음에 들겠는가? 순수한 소녀와 같은 자신을 자꾸 범하려 드는데 말이다. 결국 자신의 성에 침입한 남자친구를 자신도 모르게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 처리하지도 않은채 욕조속에 담궈버리는데 이는 더러움을 씻어내고자 하는 정화적 의식이라 볼 수 있겠다.
집주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집주인은 자신의 남자친구와 똑같이 소녀와 같은 자신을 범하려고 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남자친구와 달리 한가지 측면을 더 가지게 되는바 속세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방값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욕하는 그는 아주 순수한 동화같은 자신의 세계를 위협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공간에 침입하여 윽박지르다가 갑자기 자신의 몸을 탐하려드니 역시 살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무엇인가? 자신이 갇혀버린 순수라고 규정지은 어떤 것을 향한 침입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의 성이 지속적으로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집이 갈라지는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가 자꾸 자신을 침입한다고 생각하니 벽에서 손이 튀어나와 자신을 붙잡는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려울거 하나 없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마무리
아직까지는 초기작품이라 어떤 매체를 활용하려는 특징이 엿보인다. 이는 대부분의 거장의 반열에 오른 영화감독들이 보이는 초기 작품들의 주된 특징중 하나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과 그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대인의 분열적 양상을 다양한 상징을 이요하여 잘 표현한 아주 괜찮은 수작이다. 사실 이정도의 심리묘사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게 아니다. 인간에 대한 아주 깊은 이해가 있을때 가능한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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