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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1993), 아비투스와 19세기 뉴욕의 상류사회 본문

영 화/90's 영화

순수의 시대(1993), 아비투스와 19세기 뉴욕의 상류사회

유쾌한 인문학 2010. 3. 2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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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5번째 장편영화이다.  이는 옴니버스와 단편 및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숫자이다.  전작인 케이프 피어에서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휘어잡은 그는 드디어 흥행도 가능한 감독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다.  사실상 이때부터 스콜세지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케이프 피어 이후에 스콜세지의 선택은 놀랍게도 시대극이었다.  그것도 이디스 워턴의 순수의 시대를 영화화 하기로 스콜세지가 결심한 것이다. 

이디스 워턴은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로 그녀가 남긴 최고의 작품이 바로 순수의 시대이다.  1920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총 세번에 걸쳐 영화화가 이루어지며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이 마지막 영화화된 작품이다.  앞선 두번의 영화는 23년과 34년에 각각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정보는 알수가 없다.  소설 자체는 상당히 재미있는(?) 연예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꽤나 짚어낼 부분이 많은 연예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70년대 미국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그들의 허위와 위선 그리고 진실보다 더 중요한 허례허식 속에서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사랑과 집념의 이야기이다.  뉴욕 최고의 명문가의 일원으로 온갖 특권을 누리며 사는 젊은 변호사 뉴랜드 아처(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또다른 명문가의 자녀인 메이(위노나 라이더)와 약혼한 사이이다.  그러던 어느날 메이의 사촌이자 이혼녀가 된 엘렌(미셸 파이퍼)이 나타난다.  엘렌은 아처의 소꼽친구인데 매우 자유분방한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엘렌의 등장으로 인해 아처는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안정적이고 신분 확실한 메이와 자유분방한 엘렌 사이에서 아처는 갈등한다.  결국 소극적인 성품의 아처는 메이의 남편으로 남고 엘렌은 다시 유럽으로 떠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아처는 엘렌의 아파트 앞까지 찾아가지만 그녀를 만나지 않고 돌아간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비투스와 19세기 뉴욕의 상류사회
보기에 따라선 상당히 지겨운 작품이 될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꽤나 재미있는 부분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괜히 원작이 고전의 반열에 올랐겠는가?  일단 영화가 시작하면 오페라 감상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오페라가 끝나고 나면 저녁에 다들 파티를 하기 위해 모여든다.  파티장은 명문가의 대저택에서 이루어지며 각종 귀한 회화들로 치장이된 복도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속에서 그들은 나름의 문화와 관습을 지켜가면서 파티를 즐기게 된다. 

그들이 행하는건 단순히 파티와 고급문화의 향유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대단히 독특한 관습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 관습은 어떻게 보면 아주 유치하고 불합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예컨대 파티장소에서 여성은 절대 다른 남성과 대화하기 위해 자리를 스스로 옮겨서는 안되며 남성이 다가오게 해야 한다 따위의 유치한 관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고급 문화를 즐기는 특성은 하나의 구별짓기의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아주 대단한 고급문화라고 생각하는 오페라나 발레 그외 현대 미술등의 감상등은 사실 일정한 문화적 코드에 익숙해져야 함을 전제로 한다.  문화적 코드 그 자체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왠만해선 즐기기 힘든 그런 양상의 문화들이 바로 저러한 것들이다.  저러한 문화적 코드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착취라고 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귀족들이 대부분 향유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착취에서의 자유로움은 지배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다. 

이는 문화적 코드에 의한 지배 문화의 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코드는 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교육에 의해서 형성된다.  바로 이러한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 영화는 오페라의 감상과 파티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 코드를 초반에 제시하여 뉴욕의 귀족이라는 특정 그룹을 그외 인간들과 정확히 구분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귀족이라는 그룹안에서 세명의 주인공이 나타나게 되니 그들이 바로 아처와 메이 그리고 엘렌이다. 

이 세명의 주인공은 모두 대단한 집안의 구성원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성격에서 나타나게 되는바 아처는 아주 법률을 공부한 매우 합리적인 인물이지만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할 용기는 없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아처의 약혼녀인 메이 역시 많은 부분에 있어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여성이지만 그녀는 관습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관습의 화신같은 여성이다.  한편 엘렌은 유럽의 백작에게 시집갔다가 이혼하고 돌아온 여성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여성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두여성의 사이에서 아처가 방황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 된다.

엘렌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양상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그녀는 분명히 귀족출신이고 문화예술적 소양도 아주 높은 인물이다.  즉 그녀는 고급 문화 코드의 향유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녀가 이혼하고 돌아왔을때 뉴욕의 상류층은 그녀를 향해 매우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가족들마저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이는 아비투스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도식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것은 순수 의지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오랜시간 내려온 도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해야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신분계층에서 저항이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뭐 순진한 분들은 진실한 사랑 어쩌고 하면서 사랑 타령하겠지만 진실한 사랑타령은 상상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고 상징적 기표로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그딴건 부차적인 요소일뿐이다.  결국 도식이란 사회적 관행을 형성하고 그 관행에 위반했을 경우에 일정한 제재로서 나타나게 되는바 엘렌이 당하는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뉴욕의 상류계층이 보유하고 있는 도식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엘렌은 이혼을 하고 돌아온 여성이다.  바로 이지점에서 보편적 상류계층과 엘렌사이의 구별짓기가 형성되게 되며 이로 인해 엘렌은 차별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성은 일종의 상징적 폭력이다.  다양한 계급적 구별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 지배의 피지배를 향한 억압적 폭력 바로 그것이 아비투스의 핵심적 요소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일련의 양상속에서 아처가 보여주는 행위가 흥미롭다.  그는 매우 합리적인 인물로서 이러한 일련의 관습적 요소를 매우 숨막혀하는 인물이다.  가슴이 턱 막힌다고나 할까?  그런 그에게 엘렌의 존재는 탈출구이자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저 자유분방함.  하지만 그에게는 과감하게 그녀를 따를 용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메이의 곁에 남아 합리성보단 관습에 맞춰 살아가는 인물로 돌아서게 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답답한 인물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이 가지고 있는 도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당신의 삶을 생각해보아도 자명한 것 아닌가?  한 인간이 속해있는 다양한 집단적 양상과 그로 인해 펼쳐지는 온갖 상징적 도식들은 그 견고함이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이러한 외면적 도식의 견고함과 내면적 주체가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처인 것이다. 

그는 결국 외면적 도식의 견고함에 굴복하는듯보이지만 항상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엘렌적 자아에 의해 혼란스러운 인물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아처는 엘렌이 아파트 앞에까지 다가서지만 결국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 나오게 된다.  사랑 타령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이 어쩌고 하겠지만 이것은 아처가 가지고 있는 내면적 혼란 즉 자유와 인습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열적 양상인 것이다. 

아래의 스샷이 참으로 인상 깊다.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장면인데 실제 이 영화에서는 쇠라의 그림을 보는듯한 이미지가 여러군대에서 발견된다.  결국 아래의 이미지는 마치 인상주의 회화의 한 장면과도 같이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 저러한 엘렌의 뒷모습과 황금빛 이미지는 아처가 꿈꾸는 내면적 욕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주체성에 대한 환상이 황금빛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러한 주체성의 상징인 엘렌이 그 중심에 서있게 되는 것이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유럽보다 더 관습적인 뉴욕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건 뉴욕의 상류층이 보여주는 지독한 보수성이다.  어떤면에서 보면 본토인 유럽보다 더 지독한 양상으로 펼쳐지게 되는데 왜 그런 것일까?  이는 뉴욕이 가지고 있는 유럽문화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뉴욕은 분명 미국의 한 도시이지만 미국이라는 국가가 뭐라고 할까.  미국 답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문화의 부재가 바로 미국의 핵심적 양상이 된다. 

미국다움의 부재.  이는 결국 유럽에 대한 열등의식이 되어 유럽적인 것에 대한 아주 엄격한 모방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행하는 모방은 그 원래적 양상보다 더 지독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는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사실 어렵지 않게 우리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부자의 명품소비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모방은 부자가 행하는 행위보다 더 지독하게 나타나게 되는 일이 많은데 이러한 것들은 바로 열등감의 해소를 완벽한 모방으로 매꾸려고 하기때문이다.  그러니 더욱 지독하게 양상들이 표출되는 것이다.


마무리
이상으로 이 영화의 이런 저런 전반을 살펴보았다.  기회가 되면 보라고 말은 못하겠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싫어한다면 정말 지겨울 것이다. 

[영 화/마틴 스콜세지] -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세계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셔터 아일랜드(2009), 두가지 결말의 철학적 고찰
[영 화/마틴 스콜세지] - 디파티드(2006), 이민자와 경찰 그리고 미국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에비에이터(2004), 어머니를 향한 욕망과 강박증 그리고 그 벗어남
[영 화/마틴 스콜세지] - 갱스 오브 뉴욕(2002), 이민자의 가치관 투쟁과 국가의 욕망
[영 화/마틴 스콜세지] - 비상근무(1999), 천재적 연출과 뉴욕의 광기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쿤둔(1997), 사회주의제국과 비폭력저항의 아이러니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카지노(1995), 라스베가스의 상징과 이민자 문제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순수의 시대(1993), 아비투스와 19세기 뉴욕의 상류사회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케이프 피어(1991), 추상표현주의와 미국 중산층의 무의식적 억압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좋은 친구들(1990), 마피아의 실체와 혐오적 폭력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 니체의 초인과 예수의 인간적 면모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컬러 오브 머니(1986), 당구공과 그 속에 담긴 삶
[영 화/마틴 스콜세지] - 특근(1985), 정상속의 비정상성의 만남
[영 화/마틴 스콜세지] - 코미디의 왕(1983), 마지막 장면과 노이즈 컬러의 이미지 해석
[영 화/마틴 스콜세지] - 분노의 주먹(1980), 흐릿한 사각위에 선 남자
[영 화/마틴 스콜세지] - 뉴욕 뉴욕(1977), 1940년대 미국과 재즈
[영 화/마틴 스콜세지] - 택시 드라이버(1976), 미국이 가지는 허구성과 본질
[영 화/마틴 스콜세지] - 비열한 거리(1973), 뒷골목 이태리 이민자들의 삶
[영 화/마틴 스콜세지] -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8), 성과 속을 가로지르는 문의 경계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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