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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발레단 백조의 호수로 돌아오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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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발레단 백조의 호수로 돌아오다

유쾌한 인문학 2012. 11.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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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의 마린스키 발레단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2004년 이후 8년 만에 함께 내한, 11 11()~ 13()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을 선보인다.  완벽한 테크닉과 표현력에 최상의 연주가 더해질 이번 내한 공연에는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하여 입단, 두달 만에 <해적> <돈키호테>의 주역을 맡으며 현지의 뜨거운 찬사를 받은 한국인 발레리노 김기민이 주역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마린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화려한 의상, 무대디자인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완벽한 음악에다 아름답고 과감한 표현력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진정한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멸의 역작이다.




마린스키 발레단

마린스키 극장은 제정러시아시대의 수도인 상페테부르크에 위치한 발레단이다.  구소련 당시에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도시이며 이 발레단은 그 역사가 황실극장 발레단에 자리매김하게 된다.  구소련 시절에는 키로프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가 구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재도약 이후 다시 마린스키라는 이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보통 키로프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리는바 같은 발레단으로 생각하시면 된다.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발레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무래도 차이코프스키라는 걸출한 작곡가 그리고 마리우스 프티파라는 천재 안무가의 영향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발레를 향한 러시아 국민들의 열광이다.  그곳에선 춤을 잘추면 국민적 영웅이 된다.  어느정도냐면 구소련 당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모든 예술들이 자유를 억압받게 된다.  그렇기에 구소련 당시 많은 러시아 예술이 무너지게 되고 예술가들도 떠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생기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만큼은 그 명맥을 이어가는데 성공하게 된다.  함부로 손댈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왠만한 유명한 발레 극장은 전부 부속 학교를 가지게 되는데 그 시초가 되는것이 마린스키이다.  마린스키는의 부속학교는 흔히 바가노바 학교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마린스키 극장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이 학교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만 가능하다.  물론 이 학교 자체도 아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은 당연하다.  이 학교에서 항상 1등하던 학생들이 마린스키의 군무진의 끝자락으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다 교육방식, 훈련강도 모든면에서 서유럽에 압도하는 측면이 있기에 마린스키의 군무진에도 못드는 사람마저도 타 발레단의 솔리스트의 수준은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정도이며 이에 대해 의심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러시아 발레하면 볼쇼이를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볼쇼이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발레단이기 때문이다.  구소련 당시 볼쇼이를 키우기 위해서 마린스키의 많은 무용수와 안무가를 볼쇼이로 데리고 오게 되고 때마침 유리 그리고로비치라는 걸출한 안무가가 탄생하여 볼쇼이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게 된다.  발레단의 발전에는 반드시 위대한 안무가가 병행된다.  위대한 안무가가 있기에 위대한 발레단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는것만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발레단은 국립이 볼쇼이 스타일을 계수했다고 볼 수 있는바 엄밀히 말하자면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유니버셜이 마린스키의 스타일을 계수하게 되는바 이유는 간단한데 마린스키에서 23년간 단장을 맡은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유니버셜의 단장을 맡기 때문이다.





REGEND! 마린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의 살아있는 전설

<백조의 호수>는 볼쇼이 극장에서 제일 먼저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빈약한 무대와 의상, 상상력 부재의 안무 탓에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했다. 차이콥스키는 '춤을 추기에는 거추장스러운 음악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크게 실망하여 이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작곡하는데 까지 12년간 발레음악을 작곡하지 않았다.

 

'백조의 호수'가 비운의 걸작임을 알아본 마리우스 프티파는 차이콥스키 사후에, 백조의 호수를 새롭게 안무하여 마린스키 발레단 무대에 올렸다. 새 안무는 관객을 매료시켰다. 현재까지 수많은 안무가들이 '백조의 호수'를 새롭게 안무하지만, 그 근본은 프티파-이바노프의 초연작에 기초하고 있다. 발레의 상징이 된 '튀튀(짧은 치마 발레복)'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특히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을 1 2역으로 해 순수성의 극치인 백조와 악마적 관능을 극대화한 흑조를 한 명의 발레리나가 소화하도록 한 최초의 레퍼토리다. 어쩌면 발레 역사에서 영영 사라질 뻔한 <백조의 호수>를 불멸의 명작으로 마린스키 발레단, '전설'이라 불릴만하지 않은가






동양인 최초 마린스키 발레리노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의 역사에서 외국인 단원이 들어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딱 한명 존재하는데 바로 한국인으로 이름은 유지연이다.  한국 사람들이 워낙에 관심이 없다보니 이름조차도 모르는데 드미솔리스트까지 승진하는데 성공하신 분이다.  많은 분들이 강수진님만 생각하고 기억하는 통에 많은 발레리나들이 잊혀져가는데 감히 말하건에 이분이 해내신 이 업적은 강수진님의 그것에 버금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지연님은 2010년 내한 공연을 끝으로 은퇴를 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는바 한국인 김기민씨가 마린스키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이는 동양인 발레리노로는 최초이며 일본, 중국 그 어떤 곳에서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업적이다.  



발레리노 김기민을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5학년 때 이원국 선생님 주역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봤어요. 어린 나이에 뭘 알았겠어요. 동작도 테크닉도 스토리도 잘 몰랐는데 공연을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공연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그날의 공연은 뚜렷하게 기억해요. 이날의 감동은 말로만 설명할 수는 없었어요. 이런 감동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던 것 같아요.  

 

발레리노 김기민의 장점은?

전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전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어요. 예원학교 다닐 때는 경비 아저씨가 밉기까지 했어요. (웃음) 좀 더 연습해야 하는데 나가라고 말씀 하시니까요. 그래도 꿋꿋이 계속 연습을 했더니 어느 날 제게 열쇠를 주시더라구요. 문 잠그고 가라고. (웃음) 한예종 다닐 때는 12시면 연습실 문을 닫았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불 끄고 나오는 학생이었어요.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죠. 처음에는 경비원이 나가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고 춤을 췄어요.

 

놀고 싶거나, 다른 곳에 관심이 갔을 만도 한데?

다행히 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저도 물론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싶었지만, 이런 생각이 들 무렵에 저는 이미 연습실에 도착해 있었어요. 열정이 있으면 연습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같아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김기민의 발레인생의 최대의 위기는?

어렸을 때부터 저는 발레할 몸이 아니다. 발레 그만 시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키가 183인데 중학교 3학년까지는 키가 작은 편이었거든요. 흔히들 발레 하기 좋은 몸은 길게 뻗은 다리, 들어간 무릎, 튀어나온 발등, 벌어진 골반을 꼽는데 저는 이중 어느 한가지도 해당사항이 없었어요. 부모님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고 봐라. 정말 잘해 보일꺼다그런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 오디션은 어땠나요?

정말 열심히 연습 했어요. 오디션 날 영상에서 보던 마린스키의 스타 무용수들이 차례로 들어와서 심사를 하시더라구요. 마린스키 발레단원들도 모두 지켜봤구요. 예술감독에서 뭘 보여줄꺼냐고 여쭤보셔서, 베리에이션 7,8개를 준비했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시며 2개만 보여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웃음) 그때 췄던 작품 중 하나가 해적의 알리 역할이었어요.     

                                                                                               

11, 마린스키 발레단 내한 공연을 앞둔 소감은요?

저는 공연 당일 무대에서는 많이 떠는 편이 아니예요. 오히려 공연을 한, 두 달 앞둔 시점이 많이 설레고 떨려요. 특히 한국 공연은 더욱 그래요. 입단하고 처음으로 마린스키 발레단과 서는 무대이고, 부모님과 형이 지켜보실 생각을 하니 더욱 긴장 되요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만의 매력은 뭔가요?

마린스키 백조의 호수는 원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마린스키는 원안무를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마린스키 발레단은 테크닉보다 표현력을 우선합니다. 저 또한 무대에서는 표현에만 집중하려고 하구요. 평소에 연습에 몰두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연습을 통해서 테크닉은 제가 의식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거든요. 무대, 안무, 음악 모두가 너무 아릅다워요.

 

김기민의 지그프리트 왕자는?

백조의 호수는 지그프리트 왕자의 성인식 날 벌어지는 이야기인데요. 지금 제 나이가 딱 지그프리트 왕자의 나이와 같아요. 왕자로써의 품의, 위엄은 있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여린 모습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지그프리트 왕자의 모습을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제 또래의 이야기니까 잘 표현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조의 호수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
1818~1910.  프랑스태생으로 러시아 고전발레를 만들어낸 천재 안무가이다.  오늘날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프티파의 손에서 만들어졋으며 그의 손에서 발레 테크닉 역시 정점을 찍게 된다.  쥘 페로에게서 사사받았으며 1847년 상페테부르크로 이주하게 된다.  당시 매너리즘에 빠진 낭만발레에 활력을 집어넣어 발레를 부흥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프티파 형식의 주된 특징은 전막발레와 그랑파드되의 도입으로 인한 형식적 체계의 완성과 군무진의 대형을 통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의 추구 그리고 다양한 민속무용의 도입이다.  여기에 기존의 낭만발레가 가지고 있던 낭만적 소재에 궁중요소를 추가시켜 새로운 형태의 소재를 창조해낸다.  특히 그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때 작곡가와 무대디자이너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결국 프티파 시대에 이르러 발레 음악이 그 자체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60여개의 안무를 만들었으며 대부분 형식적 규칙에 의거하여 안무된다.  감정적 표현보다는 테크닉의 완벽함에 더 주안점을 두지만 그렇다고 하여 표현이 경시된 것은 절대 아니다.  프티파는 판토마임을 이용한 표현을 강조하였으며 형식적 볼거리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그의 주요작품은 백조의 호수, 잠자는 공주, 돈키호테, 라바야데르 등이 있다.  




로파트키나의 백조의 호수


예매하기

http://www.clubbalcony.com/Home/classic/ticket_detail.aspx?id=873&perfmode=bal2


2012. 11. 11 ~ 11. 13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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