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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2004), 내안에 존재하는 두개의 공간 본문

영 화/한국 영화

빈집(2004), 내안에 존재하는 두개의 공간

유쾌한 인문학 2010. 7. 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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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공간이 있다.  공간은 비어있을 수도 있고 채워져있을수도 있지만 무엇이 되었든 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는 않는다.  집이라는 것도 그렇다.  하나의 공간이다.  큰공간도 있을테고 작은 공간도 있을테고 그안에 비싼물건을 채워넣는 사람도 있을테고 가진게 없어 채워 넣을 수 없는 사람도 있을테고 원하는걸 채워넣고 싶지만 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의 공간속에도 선을 그어 다양한 활용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곳은 나의 소중한 곳.  저곳은 보기 싫은 구질구질한 것을 쌓아두는 곳.  하지만 이렇게 선을 긋던 저렇게 선을 긋던 공간은 하나다.  그리고 각기 다른 것을 담아놓은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각기 다를 것이다. 



사람에게도 두개의 공간이 있다.  무엇을 담고 있든 가르고 있는 선이 하나 존재하고 어떻게 나누던 그 공간은 결국 하나이다.  선을 아무리 많이 그어 공간을 좁혀도 피할 수 없는 결국 나의 몸이라고나 할까?  그건 마치 어설프게 묶인 골프공처럼 아무러 쳐내고 싶어도 한바퀴를 빙그르 돈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런 떨쳐내고 싶지만 차마 그럴수 없는 그런 공간이다.  그러다 본의아니게 그만 실수로 저 골프공이 저 철사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면 누군가에겐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을 줄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집에서 살고있어도 행복을 담을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출발하더라도 결국 돌아오면 짜증만 나는 여름여행처럼.. 



그 공간은 있는듯 없는듯 알고있지만 외면하고 싶은 그런 3-iron.  나의 등뒤에 바짝붙은채 나를 주시하지만 용기있게 뒤돌아 손을 내밀 수 없는 그런 공간이라고나 할까.  이승연의 남편은 뭐가 그리 두려운것일까?  왜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는건지 정말 모르는건가?  뒤돌아서 자신의 등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살펴본다면 자신의 그 커다란집이 왜 비어있는지 알 수 있을텐데..  결국 비어있다는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간에 선을 긋고 또 그어 아주 작게 만들어 그곳에 온갖 쓰레기들을 다 쓸어담는다한들 결국 한공간이고 한 몸이니깐..  눈에 보이진 않아도 냄새는 나듯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나 할까?

극중에는 유일하게 채워져있는 집이 하나 존재한다.  부부가 살고있는 집인데 특별한 문제도 없고 심지어 외딴여자가 집안에 잠을 자고 있어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는 부부.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승연의 집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정도로 작은 이 공간은 이승연의 크지만 비어있는집과는 달리 가득차있다.  이집이 가득찰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열린 저 문제에 존재한다.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의 공간에 그인 수많은 선에 문을 달아놓은채 열어둔다.  공간과 공간이 연결되니 그림자가 생겨날 이유가 없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승연의 삶에 활력이 생겨나는것의 상징성은 문을 열고 자신을 그은 선너머에 있는 무엇과의 만남에 존재하는거 아니겠는가.  우리는 항상 우리안에 여러가지 선을 그어 다양한 억압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러한 선들을 부르는 이름은 실로 너무나도 다양하여 내안에 알 수 없는 감정만큼이나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선그인 응어리들은 내안에서 소통할 수 없기에 항시 채워지지 못하는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라고나 할까?  결국 빈집이란 파편화된 응어리의 자기지배를 통한 공허를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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