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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9(2009), 우리안의 다름과 정신병적 징후 본문

영 화/00's 영화

디스트릭트9(2009), 우리안의 다름과 정신병적 징후

유쾌한 인문학 2010. 8. 1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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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rict 9
사실 뭐 내용을 알고 간건 아니고 그냥 SF영화라고 생각해서 간거였는데 의외로 괜찮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영화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외계인을 철거민 비슷하게 다루는 것인바, 외계인 거주지역은 폭력과 가난이 상존하는 전형적인 빈민촌이다.  더럽고 못사는 지역이니 지구인들은 그들을 싫어하게 되고 결국 집단 이주를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볼수있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철거민을 생각하겠지만 좀더 근원적인 문제로 치고들어가보면 결국 핵심은 "우리안의 다름"이라고 판단된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우리안의 다름
사람이라는 동물은 어느 누구나 똑같다.  두개의 눈을 가지고 두개의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다.  생식하는 방법도 동일하며 먹고 자고 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렇듯 태어날때부터 동등하게 벌거벗은채 태어난 인간은 그 후 다양한 기준에 의해서 인간을 구별짓게 된다.  작게는 가족에서 크게는 국가까지 그 방법은 다양하다.  결국 인간을 구별짓는것은 어떻게 무리짓는가.  즉 집단 형성의 기준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리고 하나의 집단과 그외의 모든 집단은 배타적 관계를 이루게 되는바 바로 이 지점에서 외계인의 상징성이 도출된다.  즉 인간이라는 집단과 외계인이라는 상징적 인간집단의 '다름'이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극중에서 외계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뚜렷하게 대조되는 두가지로 표현된다.  하나는 쓰레기나 뒤지는 거지라는 뜻에서 프론이라 부르며 아주 경멸의 대상으로서의 태도이며, 다른 한가지는 외계인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들의 무기를 연구하고 수집하며 심지어 외계인이 되기 위해 그들의 사체를 먹는 주술적 행위까지 행하는 은근한 경외로서의 태도이다.

이러한 경외로서의 태도는 외계인을 말살하기 위한 태도를 정당화시켜주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되며,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 전체주의적 요소가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유지하기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소극적 환상의 개념적 요소가 필요하게 되는바 이것이 바로 타자에 대한 과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타자를 소외시키는 과정은 타자의 권력에 대한 과장(誇張)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중과정이다.

쉽게 말해보자면 외계인이 그렇게 슬럼가 속에서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인과를 정확히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은 그들 스스로의 폭력성때문이라기보다 그렇게 그들을 개념지은 인간의 상상적 가정때문이다.  그런 슬럼가와 그속에서의 폭력은 인간집단내에서도 만연한 현상이니 특별히 외계인이라고 하여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즉 구조의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외계인을 그렇게 개념짓는 것은 내부적 억압의 외부적 돌림을 뜻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상징하는 나라가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니겠는가?  여러분들 다 아시다시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때 백인과 흑인의 대립이 극심한 나라였다.  이는 인간과 외계인의 대립 그리고 더 넘어 "우리안의 다름"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 징표가 되는 것이다.


Copyright (c) Son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계급의 이동
주인공 남성이 외계인으로 유전변이를 일으키는 것의 상징은 결국 '다름'의 이동.  다르게 표현하면 계급의 이동이다.  초국가적 외계인 관리집단의 직원에서 외계인으로의 변화는 두집단의 경험을 통한 주인공 개인의 변화와 동시에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외계인으로 변하기 전 인간으로서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외계인 퇴거 임무를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성실하게 수행하려고 한다.  그에게는 가족이 가장 소중하며 와이프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 전형적인 우리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모습이다. 

그런 인간으로서의 주인공의 모습은 구조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유토피아적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소극적 환상으로서의 상상적 개념의 외계인에 대한 억압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구조속에서 살아가는 자이며 그 구조에서 벗어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던 주인공이 외계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인간을 구성짓는 구조에서의 벗어남을 상징하게 된다.  알고보니 외계인에게도 아버지로서의 정이 있고 그들에게도 고향이 있으며 사실 그들의 삶을 그렇게 극한으로 몰아붙인것도 인간이라는 사실과 그들을 생체실험한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로 치자면 네오가 알게된 사실과 맞먹는다고나 할까?  
결국 그는 외계인을 도와주어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외계인 역시 3년뒤에 주인공과 자신들의 동족을 구하러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채 떠나게 된다.  떠나긴 하지만 정말로 3년뒤에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이러한 오픈된 결말은 결국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3년뒤 그를 찾으러 갈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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