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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남자(2001), 당신안의 억압의 해방 본문

영 화/한국 영화

나쁜남자(2001), 당신안의 억압의 해방

유쾌한 인문학 2010. 6. 1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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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영화의 특징이라고나 할까?  그의 영화속에서 있을 법한 얘기는 거의 없다.  사실 그에게서 좁은 의미의 리얼리즘을 찾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오직 가학, 과잉 뭐 이런것들의 상징들만 넘쳐흐르며 더 재미있는건 이런것을 표현하는 디테일이 거의 없다시피 한 감독이라 접근하기 상당히 어려운 감독이라 칭할 수 있다. 

근데 사실 이말은 엄밀히 틀렸다.  사실 김기덕은 대단히 리얼리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극단적 리얼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서는 가장 근원적인 내밀함을 포착해내는 그의 영화세계는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물론 껍데기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의 연속이며 페미니즘의 공격을 받기 딱 좋은 형태를 띄곤 있지만.

나쁜남자 역시 상당히 당황스러운 내용을 품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한여자를 억지로 창녀로 만들어버리고 창녀가 된 여성은 자신을 창녀로 만든 사람과 급기야 사랑에 빠지는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마지막엔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않고 그와 함께 이동식 창녀로 나아가게 된다.

나쁜남자의 주인공 여성을 두고 참 많은 말들이 있다.  이를 두고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도 보이고 여성을 쓰레기 취급하는 마초 감독의 미친 여성관이라는 말도 보인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껍데기를 버린채 바라본다면 은연중의 본질이 보이는바 그것은 당신안의 억압의 해방과 근원성으로의 복귀라 여겨진다.


창녀
창녀.  김기덕 영화에서 정말 많이 나오는 여성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꼭 창녀가 아니더라도 창녀 비슷한 이미지의 여성들이 반드시 나오니 말이다.  이러한 김기덕 감독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성상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곤 한다.  소위말하는 여성폄하적 마초감독이라는 것이다.

창녀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로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주된이유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나타나는 부정성의 상징성과 극을 이끌어가기 좋은 소재거리로서의 장점이 많아서라고 판단된다.  부정성의 상징은 나쁜 것.  더러운 것.  이런 의미보다는 주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결핍을 향한 욕망의 억제의 발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거울 뒤편
나쁜남자하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장면.  바로 여주인공의 방뒤쪽에 있는 비밀방에서 거울을 통해 여주인공의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조재현의 모습이다.  조재현은 그녀를 바라볼 수 있지만 그녀는 조재현이 그런 방에서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방의 구조는 양자의 쌍방적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게 된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방적 다가감?  조재현만이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공간은 당신안의 숨겨진 욕망을 담아두는 방을 의미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러한 내밀한 공간을 가지게 된다.  당신도 가지고 있고 나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 담아두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각기 다르겠지만 그 모든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결핍을 채우기 위한 매개된 욕망이다.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이 사실 스스로 형성되기보다는 타자의 매개된 욕망을 통해 형성된다.  이는 자아의 형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최초의 타자의 매개된 욕망과 그의 상실을 통해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해방
이쯤되면 눈치빠르신분들은 조재현의 역할에 대해서 감을 잡으신분들도 계실 것 같다.  조재현은 극중에서 일단 대사가 없다.  오직 몸으로만 연기하고 그의 행동 역시 예측하기 힘들다.  즉 그는 소통이 안되는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라는 말이다.  이러한 캐릭터는 억압이자 해방으로서의 상징을 나타낸다.


억압이란 마치 당신속에 숨어있는 당신도 모를 어떤 괴물적 성향말이다.  예를 들어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성향에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또다른 성향이 갑작스럽게 분출되어 의식을 지배할때 나타나는 야수적 성향 또는 그반대.  이러한 억압된 성향은 주체에게 그 어떤 얘기도 해주지 않는다.  즉 소통 불가능성을 상징하며 어떤 방향으로 튈지 예측하기도 매우 힘들다.  바로 이러한 성향성의 화신이 바로 극중 조재현인 것이다. 

그럼 해방이란 무엇인가?  억압의 해방?  음..  그렇다기 보다는 자아 형성 이전의 근원성으로의 회귀.  최초의 타자인 (m)other의 만남 이전에 있는 순수성의 회복.  그 회복을 위한 해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극중으로 돌아가 여주인공의 행위를 생각해보자.  결국 여주인공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는 마초적 남성감독의 여성관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위의 포스터에서 바라볼 수 있듯 거울속 아니 거울 너머에 있는 자신의 숨겨진 억압이자 그림자인 조재현과의 만남과 이해를 통해 억압의 해방 또는 근원성으로의 회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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