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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일본 사회의 외상에 대해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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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일본 사회의 외상에 대해서

유쾌한 인문학 2011. 11. 2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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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신작 소설인 1Q84는 사이비 종교라는 사회적 요소와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잘 버무러지면서 다양한 상징들로 점철된 좋은 작품으로 생각된다.  일단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흐르고 있던 허무적 감상주의가 좀 사그라든게 아닌가? 라는 점과 1Q84나 리틀피플, 공기번데기 등의 환상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다.  특히 리틀피플이나 공기번데기라는 부분이 대단히 흥미로운데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요소를 끄집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 판단된다. 


선구와 사회적 외상
소설내에서 선구라는 단체는 초기에는 농업 코뮌주의에서 시작했으나 비밀결사인 사이비 종교단체로 변질하게 된다.  익히 알려진바 이 소설은 일본 지하철에 가스를 살포하는 테러를 가한 옴진리교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선구는 이 사건을 빚댄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사건은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일종의 외상으로 두 주인공이 안고 있는 정신적 외상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선구가 보여주는 초기 농업 코뮌주의와 일본 전체 사회가 보여주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보여주는 대립적 양상은 같은 세계지만 다른 세계 즉 하나의 세계 그리고 두개의 노선 또는 두개의 시선인 1Q84와 1984의 관계로서 잘 표현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듯 결국 이러한 농업 코뮌주의라는 노선은 핍박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소설내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여기서 농업 코뮌주의라는 것에 한정하기 보다는 좀더 확장해볼 필요성이 있다.  사실 농업 코뮌주의라는건 하나의 장치이자 상징일 뿐이고 이것이 의미하는 진정함은 국가내에서의 주도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분명 같은 일본사회안에 존재하지만 엄연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모든 비주도적 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한 억압을 의미한다.  결국 이러한 억압적 행태로 인해 소설내에선 선구가 사이비 종교단체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극중에선 리틀피플때문에 변질되었다고 한다.  그럼 리틀피플은 무엇인가?  리틀피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알아보겠다.


두명의 주인공과 외상
아오마메, 덴고.  이 두명의 인물은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기본적인 설정은 서로 사랑하되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그냥 막연하게 그리워하는 그런 사이이다.  이 둘은 공통점이 한가지 존재하는바 그것은 어린시절의 정신적 외상이다. 

아오마메는 증인회 신자의 부모를 둔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강제로 사이비종교에 입문하게 된다.  대단히 배타적인 종교인바 그 종교로 인해 학교에서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한 왕따를 당하는 등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  덴고는 어떠한가?  덴고 역시 어린시절부터 어머니 없이 자라면서 아버지에 의해 강압적으로 일요일만 되면 NHK 수신료를 받으러 다녀야했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상처는 자연스럽게 결핍으로 나아가게 된다.  두 주인공 모두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곳에서 사랑의 결핍을 느끼며 자라온데다 심지어 부모님에게서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느낌마저 받게 되는바 이것은 아오메마는 증인회라는 장치를 통해서 나타나고, 덴고는 자신을 질투하는 듯한 아버지의 시선이라는 장치를 통해 나타난다.

어린시절 부모 특히 어머니와의 상상적 결합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사람의 경우는 정신병적 징후를 보이게 되는바 이것이 그들이 가지는 외상이며, 이 외상은 억압되어 주체를 분열시키게 된다. 


마더와 도터
이러한 분열된 양상을 잘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마더와 도터이다.  리틀피플이 후카에리와 처음 만난 후 공기번데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후카에리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만들어 그것을 도터라고 칭하게 되는바 결국 이는 하나의 주체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분열적 양상으로서의 그림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터는 전반적으로 그림자로서의 어두운 측면을 잘 부각시키는바, 이는 다른 자의 공기번데기에서 세마리의 뱀이 나온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그림자는 두 주인공의 어린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되는 어떤 결핍.  그리고 그 결핍의 채움에 대한 욕망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소설의 제일 마지막 부분 덴고가 보게 되는 자신의 도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터는 마더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완전하지 못한다",  "도터가 탄생하면 하늘의 달이 두개가 된다"  등으로 표현되는 이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보살핌을 받는 도터와 보살펴야하는 마더의 관계는 두 주인공의 어린시절 발생한 결핍의 원인.  즉 어머니와의 상상적 결합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은유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잘 보살펴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도터가 죽은 후에 마더는 어떻게 되는가?  소설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사실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바 이는 작품 전반적으로 흐르는 강간ㆍ테러 등의 병리현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두개의 달은 도터와 마더의 관계와 병치되는 장치로서 이는 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공기번데기
여기까지 오면 도대체 이 공기번데기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소설속에서 공기번데기는 1984년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고 1Q84의 세계에 사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공기번데기는 그림자의 외연이자 그림자의 직시를 의미한다. 

그림자의 외연은 공기번데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기번데기의 크기는 고정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정 크기까지 키워내야하는바 그것은 억압된 내용의 크기에 따라서 외연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자의 직시는 공기번데기의 터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바 공기번데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터지는 순간 그속에 있는 내용물 즉 자신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으며, 공기번데기 외연의 갈라짐을 통해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의 터짐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결국 1Q84의 세계로 넘어오게 된다는 것은 그림자의 직시를 상정한다고 볼 수 있다.  두개의 달은 사회적 병리현상에의 직시를 의미할 것이다. 


리틀피플
리틀피플은 소설내에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나타난다.  얼굴을 볼때는 평범한 얼굴이라 생각이 들지만 돌아서면 기억 안나고 그들이 입은 옷을 보면 분명 보고 있다는 느낌은 있으되 돌아서면 그들이 입은 옷이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존재는 하지만 직시할 수는 없는 존재.  항상 옆에는 있지만 없는 듯한 존재.  리틀피플은 무엇일까?  

리틀피플은 그림자의 내용적 측면의 인적 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도와 도터는 관계에 집중을 하는 것이고 리틀피플은 그림자가 담고 있는 억압 또는 욕망의 핵심적 내용요소이다.  그림자 즉 무의식에 숨겨진 그 내용은 항상 나의 옆에 존재하지만 없는 듯하고 존재를 깨닫는다 한들 정확히 직시는 할 수 없는 내안에 존재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마무리
이상으로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만한 지점들을 해체해보았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주제는 우리안에 숨겨진 왜곡된 욕망의 분열을 통한 발현 그리고 그로인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겠는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작품내에서 개인은 폭행과 강간을 일삼는 행태를 보여주며, 일본 사회는 사이비종교의 테러와 폭력을 당한 여성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일본사회의 무능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일본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외상에 대한 통렬한 고찰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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