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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파(2009), 마음의 벽 AT필드와 인류보완계획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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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꽤나 오래된 만화이다. 내가 제일 처음 보았을때가 고등학교 2학년때였으니 벌써 10여년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일본 만화 자체가 막혀있던 시점이라 주로 불법 비디오를 통해서 관람을 하던 시절이다. 제일 처음 봤던 일본만화가 지브리의 만화들이었다. 토토로나 원령공주 따위들 말이다. 그때 받았던 문화적 충격은 실로 대단했었다. 지브리의 만화들을 얼추다 관람한 이후 다른것이 없는가 하고 찾아보다 알게된 만화가 에반게리온이다.
성장애니메이션과 성경
기본적인 골자는 전형적인 교양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다. 여기에 로보트라는 요소와 미소년 미소녀라는 것이 더해지면서 소위 말하는 매니아들의 만족시켜준다. 실제 극중에서도 곳곳에서 나신이 노출돼 적당한 눈요기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뭔가 아쉽다. 여기에 한가지 더 얹어지는 것이 성경이나 모 공상과학소설에서 몇가지 요소를 차출해와 이어붙인 그럴듯해보이는 철학이다. 숨겨진 뭔가가 있을것 같은 그런 복잡해보이는 무언가는 매니아의 만족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제작사의 이런 생각은 그대로 적중하면서 10여년 전에도 이 만화를 가지고 온갖 정체불명의 성경 이론들을 다 끄집어내와 이 만화를 이해해보려는 시도들이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극중 몬스터인 사도, 리리스, 아담 등으로 표현되는 성서 모티브는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갖다붙인 비논리적 요소들일뿐 자체적으로 상징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텍스트의 독해는 하나의 일관된 이론과 논리 구성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끄집어내는게 핵심이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냥 개똥철학일뿐이다.
AT필드
전형적인 교양소설의 형태에 SF 적 요소를 가미한 이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마음의 벽이라는 부분이다. 극중에서는 이 마음의 벽을 두고 AT필드 라고 칭하기도 한다. 에반게리온이 펼치는 일쪽의 방어막 같은 것으로 표현되는데 극중 몬스터인 사도들이 보여주는 AT필드는 간단한 형태에서 아주 강력한 형태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럼 AT필드란 무엇인가? 흔히 마음의 벽이라고 표현되고 있는바 이것은 크게 두가지 역할을 하게 된다. 첫번째는 나를 이루고 있는 외견으로서의 역할이다. 나라고 하는 연약한 중심적 부분을 벽이 둘러쌈으로써 하나의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치 달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달걀 안쪽으로 보호하기 위한 벽으로서의 달걀껍질은 안과 바깥을 구분하는 하나의 경계선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고 이것이 AT필드가 가지는 두번째 역할이다.
이러한 벽은 일종의 이중적 지위를 가지게 되는데 나를 보호하는 역할과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벽이라는게 있음으로 인해 벽안에서 가깝게는 나의 자아를 보호하고 멀리는 나의 자아를 위협하는 내 스스로 설정한 갈등요소를 더 깊은 곳에 가두어버리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벽이라는게 있기때문에 벽 너머에 있는 무엇과는 단절된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는 나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내 스스로 설정한 갈등요소를 해결하고 맞서기보다는 스스로 설정한 벽안쪽에 가둬버리는 행태에 크게 다를바 없다. 결국 벽이란 나의 외부에 설정된 벽과 나의 내부에 설정된 벽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는 의미이다.
에반게리온
에반게리온이라는 로보트에 탈 수 있는 파일럿은 대부분 어린아이들이면서 뭔가 심각한 정신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신지와 아스카 둘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외부에 커다란 벽을 설정하여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벽 안쪽에 있는 자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양상을 보여주게 되는바 이는 아스카의 강박증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이런 아이들이 에반게리온에 탑승하는 이유는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이 크고 거대하기에 에반게리온이 가지는 방어시스템인 AT필드를 더 강하게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외부에 설정된 벽으로서의 에반게리온의 역할이고 다른 한편으로 내부에 설정된 벽으로서의 에반게리온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에반게리온이라는 로봇은 그 안의 파일롯과 싱크로를 통해 움직이게 되는 형태이다. 그리고 이 싱크로로 인해 에반게리온 본체의 파손은 그 안에 탑승한 파일롯에게 동일한 고통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껍대기는 매우 강력한 로봇이지만 그 안에 있는 똑같은 피해를 입는 인간은 지극히 약하디 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 내부에 설정된 벽. 즉 개인이 가지고 있는 약하디 약한 부분을 억압시켜 숨겨놓는 무의식적 요소와 그 선 바깥의 관계와 동일한 것이다. 마치 항상 겉으로는 강한척.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고 다니지만 작은 말한마디에 크게 상처받는 인간 정신의 내면과 같다고나 할까?
인류보완계획
에반게리온이라는 만화가 가지는 궁극적 목표는 인류보완계획이다. 이 계획을 위해 아담이니 리리스이니 사도이니 하는 갖가지 성경에서 따온 장치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것은 어느 공상과학소설에서 따온 것인데 어떤 작품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어떠어떠한 과정을 거쳐 인간의 정신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져 저 우주밖으로 나가 떠돌게 된다는 것이다.
인류보완계획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음의 벽을 없애고 인간 정신을 하나로 합친다면 인간 개개의 정신이 상처받고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단절을 느낄 필요도 없고 그 단절에서 오는 고통도 없으니 실로 신과 똑같은 단계가 아닌가 판단된다. 물론 극중에서는 제레라고 하는 단체와 신지의 아버지인 겐도가 바라는 인류보완계획이 약간 다른 형태를 보이게 되지만 그게 그렇게 크게 중요한 문제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벽을 없앤다는것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마음의 벽을 없애는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레이와 신지가 하게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과거 티비판의 에반게리온을 보더라도 마지막에 가면 거대 레이와 신지가 조종하는 초호기가 합쳐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바 당시에는 너무 추상적으로 그려져 무슨의미인지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이번 새로운 극장판을 보면 레이와 신지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을 통해 그 의미가 확실하게 와닿게 된다.
마무리 - 인류보완계획이 가지는 위험성
현재 진행되는 극장판은 아직 두편의 후속작이 더 남은것으로 알고 있고 그 결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과거 티비판에서는 신지는 이러한 형태의 진화를 거부하고 다시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과학철학의 관점이 아닌 단순히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바람직한 결론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것은 저 시각하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며 에반게리온이라는 만화가 가지는 그 대단한 명성을 생각해본다면 그 위험도는 더욱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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