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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2009), 맞춤형 인간의 주체성과 가족 본문

영 화/00's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2009), 맞춤형 인간의 주체성과 가족

유쾌한 인문학 2010. 3. 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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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My Sister's Keeper)

닉 카사베츠 감독의 최근작이자 6번째 작품은 바로 마이 시스터즈 키퍼로 작년 2009년에 개봉했었다.  닉 카사베츠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는걸 좋아하는 같다.  노트북에서 알파독을 거쳐 이 영화에 이르기까지 전부 실화에 바탕으로 하니 말이다.  존큐도 실화인가?  하긴 존큐는 실화인가 아닌가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싶다.  어차피 존과 같은 사람들은 천지에 널렸을테니 말이다.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이 있는데 결론은 다른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이영화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백혈병 딸을 가진 부모가 그 딸을 치료하기 위해 그 딸의 유전자와 정확히 일치하는 아이를 시험관을 통해 낳게 된다.  그리고 백혈병 딸(케이트)이 필요할때마다 둘째 딸아이(안나)의 신체에서 그 필요한 부분을 채취하여 주입하는 식이다.  결국 안나는 11살이 되던 해에 부모를 상대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소송을 걸게 된다.  이러한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행한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영화가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재미있는데 하나의 이야기를 각 가족 구성원의 시점에서 그려내게 된다.  엄마의 입장, 아빠의 입장, 당사자인 케이트와 안나의 입장 그리고 오빠의 입장을 각각 보여주면서 얘기가 진행된다.  딱딱 부러지게 나뉜다기보다는 그냥 스무스하게 진행되는 형식이다.  이 영화의 주된주제는 가족애 그 자체에 존재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맞춤형인간과 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라는 것은 사실 부수적 요소에 불과하다.  가족이라는 것의 형성과 그 속에서의 관계에 주안점이 놓이게 되는 작품이고 그 중심에는 안나와 케이트가 서있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맞춤형 인간
사실 이러한 영화는 이미 여러번 등장했었다.  가장 비슷한 영화로는 아일랜드를 들 수 있겠다.  같은 주제지만 접근 방향은 다른데 아일랜드는 대체인간을 만들어놓은채 그들을 완벽하게 속여서 신체를 강탈하지만 이 영화는 그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어린 아이를 적절히 달래서 필요한 것을 획득하는 식이다.  아이가 성장해서 스스로 거부하는 소송을 걸긴 하지만 진심으로 거부하여 소송을 건 것은 아니고 그 아이가 원하는건 자발성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케이트 자체가 이 소송을 원했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 삶을 포기하길 원한 것이다.
 
이 문제는 안나의 입장에서 하나의 인격체와 존재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안나라는 아이는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아이로서 언니가 아프지 않았다면 태어날 이유도 없는 그런 아이이다.  극의 시작에서도 나오지만 모든 생명체는 우연히 만들어진다.  계획적인 임신이든 술먹고 사고로 만든 임신이든 무엇이 되었건 임신이라는 사건 자체는 우연성에서 비롯되고 그 우연성 속에서 또 다른 우연성이 작용하여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 

그런데 안나는 상당히 특별하다.  그 아이는 우연성과는 완벽하게 거리가 먼 계획된 아이이다.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우연성에서 태어나지만 스스로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항상 어떠한 목적성을 부여하게 된다.  즉 이 세상에 최초로 던져진 인간은 그 시작은 우연일지언정 그 이후부터 스스로의 선택과 목적에 의해 자기 자신을 미래로 끊임없이 내던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존재의 근거가 되는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안나는 처음부터 그것이 강요된채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안나의 시점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극중에서는 안나의 태도가 상당히 불명확하다.  영화 자체가 가족애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이러한 현상이 생긴 것인데 원작을 보지 못했기에 쉽게 재단할 수는 없지만 안나라고 하는 캐릭터에 단순히 집중해보자면 여러가지 감정이 뒤엉켜 복합적일 것이라는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자라온 언니를 살려야 한다는 감정에서부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 

목적성을 가진 맞춤형 인간이 가지는 가장 근원적 문제점은 그 인간이 가지는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  특정한 목적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 자체를 분류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인 것이고 그 가능성은 이미 수많은 작품에서 제기되어왔다.  뭐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이상 논의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결론이 자명한바 특정한 목적을 위한 인간이라는 것은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되는것 아니겠는가?  이영화가 아쉬운 것은 이러한 고뇌를 담고 있는 안나에 대해서 너무 많은걸 놓치고 가기 때문이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가족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영화는 가족애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고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갈등구조 역시 가족이라는 틀에서 비롯된다.  하나의 가족에 특별한 사건이나 특별한 존재가 나타났을때 보일 수 있는 반응은 크게 두가지 일것 같다.  배척하거나 희생하거나.  이 영화에서 특별한 존재는 바로 안나와 케이트이고 케이트라는 존재로 인해 안나가 탄생하고 케이트를 위해 모든 가족 구성원은 희생을 선택하게 되며 그 희생속에서 갈등이 싹트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라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최소단위인 가족을 통해서 나라는 인간이 형성되니 말이다.  가장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커가면서 가족내의 다양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주체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형성의 중심에는 다양한 추억들이 자리잡게 되고 그 추억들을 이 영화는 각자의 시점에서 조금씩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할지라도 이것만으로 살아갈수는 없다.  작은 세상에서 영원히 머물수는 없는바 그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유한성에서 비롯된다.  결국 극중 엄마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자신이 유지하고 싶은 이 작은 세상이 영원할 수가 없는데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변호사라는 직업도 버리고 아빠 역시 모든걸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고 경증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오빠에게도 문제가 생기고 가장 근본적으로 애매한 존재인 안나의 탄생까지 만들어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직시한 케이트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기억 그중에서도 몇 안되는 가족외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가족의 유지를 결심하게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 자체가 해체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고 가족이 해체된다면 가족내에서만 살아온 자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현상이 생기기때문이다.  결국 자신은 죽음을 선택하고 그렇게 떠나게 된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마무리
사실 이영화는 그냥 고만고만하다는 느낌이다.  가족애 덕분에 놓치고 가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할까?  물론 매우 감동적이고 가족에 대해서 많은걸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지만 그와 동시에 안나의 존재성 그 자체에 대해서 많은걸 짚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든다.  혹자는 이러한 측면을 들어 닉 카사베츠 감독의 아버지인 존 카사베츠 감독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그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한다.  닉 카사베츠는 아버지 존 카사베츠의 위대함에는 아직 많이 못미치는듯하다.

어쨌든 이 작품이 현재로선 닉 카사베츠의 마지막 작품이다.  닉 카사베츠 감독의 초기작들은 구할 수가 없어 보진 못했지만 지난 10여년간 그가 내놓은 4개의 작품들이 가지는 단 하나의 주제는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대주제 안에서 이런 저런 소주제를 담는 방법론이다.  존큐같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얼핏보기엔 미국의 의료제도 비판이 대주제 같지만 결국 존큐 역시 가족이라는 대주제안에 미국의 의료제도를 집어넣은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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