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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하녀(1960), 한국의 근대성이 내포한 다양한 욕망 본문

영 화/한국 영화

김기영 하녀(1960), 한국의 근대성이 내포한 다양한 욕망

유쾌한 인문학 2010. 5. 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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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1960)
이 작품은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중 하나로서 기본적으로 스릴러 영화이다.  내가 알기론 50~60년대 당시엔 시대극이 많이 나온걸로 알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아주 독특하고 기발한 스릴러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미장센이 대단히 우수하고 작품이 담고 있는 메세지도 아주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산층 가정에 대해서 잘 그려낸 작품인데 지금 다시 이 작품을 보아도 전혀 지겹지가 않고 상당한 재미를 보여준다.  출연하는 배우진은 김진규, 이은심, 엄앵란, 주증녀가 주된 출연자이며 극중 아들이 한명 나오는데 연기자는 안성기로서 이 작품을 통해 안성기의 아역시절을 확인할 수도 있다. 

지난 2007년 칸 영화제에서 설립된 세계영화재단(WCF)라는 단체가 있는데 이 단체와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디지털 복원 작업의 대상에 오르게 된다.  이 단체는 개발도상국에서 만들어진 우수한 고전영화들을 보전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비영리 단체인데 한국은 그 대상국가는 될 수 없을지언정 마틴 스콜세지 감독 개인이 이 작품에 대단한 찬사를 늘어놓으며 복원대상으로 오르게 된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필름의 일부분이 소실되는등 확실한 원본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소실된 부분은 외국에 출품된 필름에서 따와 붙이게 되고 덮씌어진 자막은 일일이 제거 하고 화질을 개선하여 작년 2009년도에 디지털 DVD가 나오게 된다.  

현재 이 작품은 리메이크가 예정된 작품으로 임상수 감독이 맡게 되고 주연은 전도연, 이정재, 서우, 윤여정이 맡게 된다.  현재로선 2010년 올해 개봉할 것으로 잡혀있는 상태인데 어떤식으로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독의 네임벨류와 주연들이 가지는 파워를 생각해본다면 개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판단된다.

내용을 간단히 언급해보자면 방직공작에서 피아노 선생을 하는 한 남자(김진규)가 있고 그에게는 다리를 저는 딸과 말썽꾸러기 아들(안성기) 그리고 성실하고 내조 잘하는 부인(주증녀)이 있다.  방직공작 직원들에게서 인기가 많은 그는 팬레터를 받게 되고 이를 사감에게 바로 일러 그 여직원은 해고되게 된다.  한편 그는 직원들에게 피아노를 개인 레슨하게 되고 이때 엄앵란과 가까워진다.  집안에 하녀가 필요해 엄앵란에게 이를 부탁하게 되고 이에 하녀(이은심)가 들어오게 된다.  남자는 묘한 매력을 가진 하녀의 유혹에 그만 넘어가게 되고 임신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부인은 그에게 낙태를 종용하게 되고 그에 하녀는 계단에서 굴러 유산하기에 이른다.  그 뒤 가족들의 태도가 냉담해지자 하녀는 아들을 죽이게 되고 이에 부인은 신고할 마음도 가지지 않은채 남편을 그녀에게 내주기에 이른다.  결국 극의 마지막에 이르면 하녀와 남자는 자살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엔 나름의 반전이 있는데 사실 모든 것이 남자의 상상이었다는 것이다. 






60년대 중산층과 부인이 꿈꾸는 욕망
영화는 아주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기본이 배경이 되는 집 그리고 피아노 교습이 이루어지는 공간, 공장 복도.  이정도의 공간만을 제시한채 모든 상황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공간적 측면은 공간 그 자체가 가지는 폐쇄성을 잘 표현하게 된다.  실제 집안을 보더라도 뭔가 뚫리고 쉬원한 느낌보다는 답답하고 눌린듯한 공간 미장센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공간이 가지는 폐쇄성은 이 영화가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와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아마 이 작품을 컬러로 보게 된다면 그 느낌이 장화홍련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대단히 기괴하면서도 폐쇄적인 그러면서 음침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60년이라면 박정희의 구데타가 막 생기기 직전이고 63년도에 박정희가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시점이다.  그 당시를 살아가던 일반인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선 사실 그렇게 아는바가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2층 양옥집이라는 설정을 보아 아마 당대에는 2층 양옥집이 중산층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판단된다.  실제 극중 부인은 그 2층 양옥집과 티비라고 하는 대상물을 얻기 위해 평생을 놓고 재봉틀을 돌리게 된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맛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재봉틀만 돌렸을까?  그녀에게 있어 2층 양옥집과 티비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적 대상물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부인은 대단히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극중에서 그녀는 항상 한복을 입고 나온다.  순종적이며 매우 가정적이고 남편만을 위한 그런 여성상으로 그려진다.  그런 그녀가 돈을 벌기위해 정작 집안일은 거의 하지 못한채 재봉틀만 돌린다는 것은 시대가 가져온 변화상에서 과거와 현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채 중간에 놓인 그런 존재임을 암시하게 된다.  결국 껍데기는 과거에 놓인채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조의 물밀듯한 유입 앞에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되고, 이는 도덕과 가정의 수호라는 가치관과 2층 양옥집으로 대표되는 가치관의 어울리지 않은 공존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집과 티비를 위해 재봉틀만을 그렇게 열심히 돌리지만 다른 한편으론 하녀에게 모든 것을 다 내줘버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상 깊은 장면은 마지막에 남자가 하녀와 함께 자살을 행한 후 부인을 찾을때의 모습이다.  쥐약이 온몸에 퍼져 더이상 기어갈 힘도 없는 그 시점.  바로 옆에서 남편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녀는 묵묵히 재봉틀만 돌린다.  결국 집에 대한 욕망으로 아이를 둘이나 잃게 되고 남편까지 잃게 되는 그 상황을 후회하게 된다.




근대성이 내포한 수직구조의 모순과 하녀의 욕망
하녀라는 존재는 부인과 정확히 대척점에 서는 인물이다.  방직 공장 여공에 불과하지만 나름 현대적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욕망에 대단히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극중 엄앵란도 마찬가지인데 급작스럽게 자신의 옷을 찢으며 사실 자신이 사랑했노라며 갑자기 고백을 하기도 한다.  급기야 이를 엿보던 하녀는 스스로 더 급하게 다가가 비오던 그날 밤 사고가 생기게 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그중 하나는 수직적 구조에서 나타나는 상ㆍ하부구조의 대립이다.  2층 양옥집이라는 중산층의 상징과 피아노 선생이라는 뭔가 고상한 직업인 상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봉틀과 방직공장 노동자의 하부구조가 존재해야만 가능해진다.  이러한 상하부구조의 대립적 측면은 하녀가 보여주는 욕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실제 극을 보면 안성기가 연기한 아들은 지속적으로 하녀를 멸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게 되고 또 한편으론 티비를 사게된 부인은 딸에게 니가 걷기만 하면 우린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의 행복은 재봉틀과 방직공작의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요소로서 사실 남편이 한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이 가정은 무언가 불안한 구석을 내포하게 되고 이러한 불안성은 딸의 절름발이로 상징된다.  즉 완전해보이지만 무언가 결핍을 내포할 수 밖에 없는 중산층 행복의 아이러니이다.

그렇기에 하녀는 하부에 속해있는 자신으로선 이룰 수 없는 저러한 중산층의 많은 것을 빼앗고자 하게 되고 그것이 그녀가 가진 욕망의 핵심이 된다.  극을 보면 하녀는 비오는날 밤 바깥에서 안을 은근히 훔쳐보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바깥에서 안으로의 바라봄 - 비오고 추운 바깥과 따뜻한 안의 대립 - 그 자체는 일종의 관음증적 요소를 보여주며 이러한 관음증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내포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바깥과 안이라는 경계와 바깥에 선 하녀라는 구성은 상하부 사이를 나누는 경계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계선은 넘을 수 없는 욕망의 한계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극중에서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하녀가 '여보'라고 호칭을 부르지만 결코 '여보'가 될 수 없는 한계점과 같은 집안에서 살지만 중산층 가정의 핵심인 피아노에는 절대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하녀는 지속적으로 피아노 앞에서 그것을 시끄럽게 두드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려고 했던 것이다.




도덕과 욕망사이에서 방황하는 남편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남편이다.  아주 우유부단한 인물로 보인다.  그러면서 뭔가 부드러운 남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부인위에 군림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부인 위에 얹혀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드는 그런 남성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는 남성상이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60년대를 생각해본다면 상당히 진일보한 남성상이 아닌가 판단된다. 

남편이 보여주는 애매한 태도들과 성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역시 근대성에 의해 구성된 인물임을 잘 보여주게 된다.  한편으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대단히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팬레터마저도 사감에게 바로 이르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또 한편으론 여성들의 욕망에 휘둘리는 모습 그리고 한편으론 일탈 그 자체를 상상하는 모습까지.  결국 그는 시대가 강요하는 남성성.  즉 가장으로의 모습에 대한 책임과 근대성이 가져온 다양한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부인과 하녀라는 두 상징적 인물이 보여주는 욕망들을 통채로 가지고 있기에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부인을 걱정하고 부인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하녀를 욕망하게 되고 하녀를 탐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론 그녀를 멀리하려고 하는 그러한 다각적인 모습들이 잘드러나게 된다.



마무리
1960년은 히치콕의 싸이코가 나온 해이다.  최근 히치콕의 영화를 전부 보고 있는 중이라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이것도 참 재미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시절 싸이코 못지 않은 작품이 한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상당한 흥미를 돋운다.  다만 아쉬운건 도대체 필름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유실된 부분이 발생하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60년대에 나왔다고 보기엔 시대를 지나치게 앞선 작품이다.  지금 이시점에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품위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촌스럽지 않고 대단히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 2010년 지금 이시점에서 바라보아도 통용될만큼의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가히 히치콕보다 더 낫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최고의 작품이다.  다만 아쉬운점은 플롯이 대단히 불안하다는 점이다.  뭐 쉽게 말해 엉성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미를 보장한다.  이 작품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올해 리메이크될 예정인 하녀는 꼭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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