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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속의 지우개(2004), 기억의 잃음과 사랑의 문제 본문

영 화/한국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2004), 기억의 잃음과 사랑의 문제

유쾌한 인문학 2010. 4. 1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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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머리속의 지우개
2004년도 당시에 개봉한 영화로 그때 상당히 성공한 영화로 기억된다.  그때 이 영화를 보고 어찌나 슬펐던지 극장에서 눈물 콧물 다 쏟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다 몇일전 일요일 티비에서 이 영화를 하는 것을 발견하여 다시금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나의 감성은 아직 죽지 않았구나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지금 이시점에서 영화를 다시 보니 뭐라고 할까.  영상이 아주 좋다는 생각이다.  특히 인트로에서 영화제목을 제시하는 방법론이 아주 멋지던데 노트에다가 연필로 글씨를 써서 제목을 제시하게 되는바 너무 감각적이라서 소름이 살짝 돋았다고 하면 심한 오바일려나? 

치매라는 병이 정확히 어떠한 것을 지칭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흔히 말하는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것이 치매와 정확히 이꼴되는 것도 아닌것 같고 대충보기에는 치매라는 증상을 불러오는 다양한 병의 종류가 있고 그중 하나가 알츠하이머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병도 알츠하이머이다.  처음엔 단순히 사고력이 떨어지다 기억을 잃어가고 남의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되다 어느순간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어 죽는 병이라고 한다.  사실 뭐 이 병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또는 사망에 이른다는 것 따위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미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몸을 유지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억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서 구성되는 측면이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름, 학적, 직장, 주소, 국적 등등 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하나의 주체가 구성되기 위한 형식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필요한 것이 한 인간이 살아오면서 쌓아올리게 되는 형식적 요소들의 내용적 요소.  즉 기억을 실체적 요소라 할 수 있겠고 바로 이부분이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영혼이 있는 그런 생명체?  현대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내려지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대단히 단순해지는바 영혼?  그런건 없다.  인간은 그냥 입력기관과 출력기관 그리고 정보처리기관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탄소로 이루어진 거대 컴퓨터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감각기관으로 많은 것을 인지하고 그 인지한 것을 뇌에서 처리하고 어떤 행동을 결정하면 출력장치를 통해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기관은 수많은 단일 세포로 이루어져있는바 신체내에서 많은 세포는 생사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독립적인 개별세포의 모임이 인간이고 그 개별세포들의 상호작용속에서 자신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세포들 특히 뇌세포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억이라는 것을 저장하게 되는바 인간에게 있어서 기억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이루게 되는 주된 요소가 된다.  결국 '나'라는 인간이 '나'라는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나'라는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기억에서 '나'가 탄생하게 된다.  결국 몸뚱아리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세포들간의 상호작용속에서 나타나는 지능의 문제를 고도로 이해할수만 있다면 인간 기억을 컴퓨터로 옮겨 영원히 생존하는 것도 가능할테고 말이다.




기억의 잃음
이렇듯 기억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위의 스샷에서 볼 수 있듯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단편적으로 다가오는 이미지들에게 주어지는 의미의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신체가 수십억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세포들의 조합이라면 인간의 주체성은 그 세포수만큼의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의미의 총체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련지.  이러한 의미들은 비록 사이사이에 어긋나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연속적인 양상을 보여주면서 거대한 흐름을 이루게 된다.  바로 그 흐름 그 속에서 인간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근거가 마련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그 이미지라는 것은 한 개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의 스샷을 한번 살펴보자.  여러가지 액자들이 존재한다.  저 액자들의 이미지는 하나하나의 기억이고 그 이미지 옆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은 그 의미를 이루게 된다.  즉 이미지가 기표라면 포스트잇은 기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의 조합으로 단편적인 기억이 이루어지고 그 기억은 하나의 기호로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저 이미지는 손예진 혼자서 가지는게 아니라 정우성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즉 기억을 이루고 있는 단편적 이미지는 복수의 인간에게 공유될 수 있다는 점이고 이 공유성에서 인간의 복수성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공유되는 것은 기표로서의 이미지일뿐 포스트잇으로 대표되는 내용으로서의 기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정리해보자면 인간을 이루는 핵심은 단백질 덩어리의 몸이 아닌 기억이기에 타인속에 존재하는 기억으로 인해 또 다른 내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타인속에 존재하는 '나'는 결국 그 타인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나'이기에 그것은 나의 주체성을 이룰 수는 없다.  즉 타인의 기억속의 '나'는 그 타인의 존재의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기표로서의 이미지를 공유하더라도 그 내용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세명의 친구들이 같이 여행을 가서 같은 추억을 쌓아올림으로 인해 같은 이미지를 공유하더라도 그 여행속에서 느낀 의미의 부여는 각기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들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상실했을때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죽음은 곧 내안에 존재하는 타인의 죽음을 의미하게 되고 이는 나의 주체성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타인의 죽음이기에 부분적으로는 나의 주체의 부분적 죽음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죽음으로 인해 타인이 자리하고 있던 그 공간만큼 구멍이 생기게 된다.  결국 그 타인이 나에게 있어 중요한 인물일수록 그 고통은 더욱 커지게 된다.  뚫린 구멍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꼭 타인의 죽음만이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형태이던 상실은 반드시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주체성이라는건 수많은 타인들의 교집합에 불과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워진 공간은 새롭게 형성된 교집합에 의해 채워질테니 말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안채워지는 경우도 있을듯하다.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면 그게 안채워질까?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그것을 두고 흔히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함부로 채워질 수 없는 영원한 텅빈 공간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마무리
아주 좋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아직 안보신분들은 꼭 한번 보시는게 좋을 것 같다.  손예진이 너무 이쁘게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나 할까.  사람은 적절히 눈물을 흘려줘야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눈물을 흘린다는건 감정의 표출을 의미하니 말이다.  스트레스는 감정의 표출을 통해서 해소가 되기에 이러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가 은근히 스트레스 해소에 기가막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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