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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 한나 아렌트와 인간의 조건을 통해본 신미래의 당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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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 한나 아렌트와 인간의 조건을 통해본 신미래의 당선

유쾌한 인문학 2009. 6. 5.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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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티홀에서 주인공 신미래가 당선되는걸 보았다.  지지율이 제일 밑바닥에 있던 사람이 극적인 역전극에 성공하며 시장에 당선되었으니
나름 위대한 성공이라고 불러도 될것 같다. 

물론 현실에선 이런일이 일어나긴 힘들지만..  
그렇다면 신미래 당선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유심히 읽어주시고..   공감가시면 추천한방 날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정치라는걸 논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정치라는걸 바라보는 방식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정치를 개념 지으려고 노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틀을 가지고 현실정치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다지 옳지 않다고 여겨지며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는 방법론을 취하는게 정치의 영역에서는 정확한 방법론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복수성

인간은 복수성을 가진다.  무슨 의미인가??  내안에 너가 있고 너안에 내가 있으니 난 복수다라는 말장난 하자는 것은 아니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개성에 있다고 본다.  동물이야 어차피 먹고 자고 생식하면 만족하는 개체들이니 그들사이에 개성을 부여하긴 힘들다.  사자 10마리 놓고 넌 이런 사자 넌 저런 사자 하고 개성부여가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이 먹고 싸고 자고 생식만 하면 끝나는 존재인가??  인간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 처럼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고 싶은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일이라는게 항상 꽃만 될 수 있는가..  독약이 되기도 하고 잡초가 되기도 하게 되는거고 그러다보니 적당히 조율을 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게 바로 정치다.  정치라는걸 현대적 의미의 정치인만 하는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의 삶은 정치의 연속이다. 

이 블로그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블로그를 하는 것도 나의 개성과 나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함에 있으나 그게 쉽지가 않다.  사람을 끌어올려면 첫째로 정말 재미가 있거나 아님 학문적으로 매우 존경할만하고 배울만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엄연히 상대방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니 약간 다른 문제이고, 두번째로 사람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먼저 당신에게 가서 꽃이 되는 방법이다.  내가 당신에게 가서 꽃이 되어 주었으니 당신도 여기에 와서 꽃이 되어 주는 것 아닌가??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적으로 정치적 계산을 통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결국 정치라는 것은 인간의 개개의 복수성을 공적인 부분에서 드러내고 인간관계의 엄청난 그물망 속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이 둘의 차이점이 뭔지 아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사적인 것의 공적인 것에의 침투가 바로 사회적인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차이점이 분명하였다.  사적인 것이야 먹고 자고 섹스하고 이런 것들을 들 수 있을 것이고 공적인 것이야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그대로이다.  다만 현대와 차이점이 있다면 경제적인 문제는 고대에는 사적인 문제에 속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중세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회가 거대해지고 재산->부->자본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확대되면서 경제적인 문제는 더이상 사적인 영역에서 머물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것들이 바로 사회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경제적인 문제라는 게 사실 사적인 문제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생존과 관련된 부분이니 말이다.  결국 사회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면서 공적인 부분이 억눌리게 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 이런 거다.  '난 먹고 사는거에만 관심있지 정치는 알바 아니다'  바로 이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인 것의 횡포는 획일성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은 복수성에 존재하는데 복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기준을 마련한채 그것을 강요하게 되고 더 웃긴건 인간이 여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치 같은 파시즘인 것이고 사실 우리사회도 여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자유를 놓아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확장되는지라 생략하겠다.


복수성의 회복
자 다시 드라마속으로 들어가보자.  지난주 방송을 통해서 우리는 정치불신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고 이는 굳이 드라마따위를 보지 않더라도 다들 알고 있는 부분이다. 

예전에 내가 이런말을 한번 한적이 있다.  권력은 누가 만드는가??  "권력은 돈이 만든다.  하지만 가끔 권력을 민중이 만들때도 있다."  이제 이말의 진의를 아시겠는가??  신미래의 당선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는 극중 인주시민들의 복수성의 회복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가 시끄러운것은 안좋은걸로 생각하는데 아니다.  정치가 시끄럽다는건 사람들이 사회적인것에 억눌리지않고 정치적인 부분으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이 많으면 많을 수록 다양성이 생성된다.  말이 많으면 많을 수록 상대방과의 정치적 타협이 점점 많아진다.

미국이 왜 위대한 국가가 되었는가??  말이 더럽게 많아서 때문 아닌가??  말이 많다보면 어느순간 융합이 된다.  융합된 힘은 엄창난 폭발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현재의 한국은 어떠한가??  말이 많아진것 같은가??   글쎄...  내가 봤을땐 전혀 아니다.   한국이 말이 많아진건 사회적인 것의 말이 많아진 것일 뿐이다. 

한줄요약하자면 결론은 이것이다.  "투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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