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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자들의 도시를 통해본 인간의 삶, 비평의 해부 - 티레시아스 신화 본문

인 문/문 학

눈먼자들의 도시를 통해본 인간의 삶, 비평의 해부 - 티레시아스 신화

유쾌한 인문학 2011. 2. 1.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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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199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작품이 꽤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어있지만 눈먼자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하는것 같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전작주의 취미를 가진 사람도 흔치 않을테고 사라마구가 뜬 이유야 뭐 베스트셀로로 밀었으니 뜬것이고 뭐 그렇지 않은가??  아무튼 그는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공산주의적 경향이 강한 면모를 보여주다 80년대 들어서부터 정치적인 면 보다는 사회적인 면에 집중하여 작품을 발표한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 수도원의 비망록이라는게 있다.  레어 책이었는데 새번역이 나와버렸다.  난 이런 상황을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눈먼자들의 도시 
스토리는 단순한데 어느날 갑자기 모든 사람이 눈이 멀게 되지만 단 한사람 눈뜬자가 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오면서 막연하게 상상해봤을 이야기로 단순히 모든 사람이 눈이 먼다는걸 넘어서 나혼자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 또한 같은 맥락이다.  모든 사람이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 역시 내가 가질 수 없는 많은 것을 가지고 싶다는 의미이고 이를 역으로 보면 투명인간 앞에서 눈먼자가 되어버린 자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결국 모든사람이 눈이 멀었다는 것 또는 투명인간이 되어 다른사람들을 눈먼자와 다를바 없게 만들어 버리는 상상을 통해 우리는 소유에 대한 생각을 읽을수 있다.실제 소설내에서도 소유를 위한 투쟁을 엿볼 수 있는데 무엇을 가진다는 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얼마나 많은 물질적 가치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우리네 모습이 그것들을 잃었을때 얼마나 추해질수있는지를 사라마구는 잘보여주고 있다.

인상깊은 구절이 하나 있는데 아마 이 책을 본 모든분들이 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너무나도 절묘한 표현이라 생각하며 이 문장은 현대 사회 분석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비슷한 포스를 보여주는 문장을 한개 더 들어보라면 안나 카레니나의 첫번째 문장을 들고 싶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오늘날 우리네 삶을 돌아보자.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 이후 나타나게 되는 현상으로 물신화 현상, 무조건적인 경쟁논리, 약자에 배려가 너무나도 부족한 현실, 무엇을 위해서 경쟁하는지 조차 모르는 철학의 빈곤 등의 많은 문제점을 우리는 굳이 이런 글을 통해 지적하지 않더라도 이미 경험을 통해 다 알고 있지만, 스스로의 부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볼 수 있음에도 애써 보지 않으려하는 현실을 말이다.  결국 눈먼자들의 도시는 눈뜬자들의 도시와 실상 다를바가 하나 없는 세상이다. 소유라고 하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바로 현대사회라 생각한다. 또 한부분 인상깊은 사건이 있는데 여자 세명이 비맞으며 목욕하는 장면이다. 한명의 눈뜬자와 두명의 눈먼자가 함께 더러워진 몸을 씻어내는 장면은 실로 작가가 진정으로 원하는 인간성의 회복이라 여겨진다. 

브뤼겔의 맹인의 우화



비평의 해부 <티레시아스 신화>
앞서 말했듯이 이런류의 이야기는 작품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는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속에 어떤 원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원형(原型)이란 문학과 사상 전반에 보편적인 개념이나 상황으로 여겨질 만큼 자주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근본적인 상징, 성격, 유형을 말하며, 이는 융의 이론에서 따온 것으로 융에 의하면 인간의 다양한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유전 암호가 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논리 이전의 사고에 기원을 둔 이 원초적인 심상 유형과 상황은 독자와 저자에게 놀랄 만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원형은 어디에서 찾을것인가??

그 원형은 신화의 형태로 찾을수 있다.  프라이는 신화란 이념에 선행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이는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다양한 이야기라 하며, 불핀치는 신화는 문학의 시녀라고 말하여 신화와 문학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두작품의 원형이 될수 있는 신화는 무엇이 있을까??  성경에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장님이 한사람 존재한다.  티레시아스(Tiresias)이다. 테베의 장님 예언자로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티레시아스가 장님이 된 이유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아테네 여신이 발가벗고 목욕하는 것을 본 까닭에 여신이 그를 눈멀게 했으나 여신의 친구였던 그의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새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둘째는 너무나 뛰어난 예언자로서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까닭에 눈이 멀었다고 한다.  셋째는 생략하겠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나오는 티레시아스의 모습은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눈먼자들의 도시에선 나오는 의사부인과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끝맺는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동아시아의 신화에서는 비슷한걸 찾아볼수가 없다.  없는건지 내가 모르는건지 잘 모르겠다. 한가지 드는 생각은 원형이니 뭐니 온갖 이론 다 갖다붙여봤자 이는 그리스 로마신화와 기독교를 기반으로 두고 있는 서양의 시각이다.  즉 아이디어를 수용하되 좀 더 주체적으로 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정신분석 이론의 근간을 자꾸 서양에 의존할 것인가?  분명 동서양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문화 형성 과정이 다르기에 쉽게 보편이라는 말을 쓸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이는 책을 기계적으로 외워서 이를 두고 무조건 인류보편이라고 기계적인 답변만 늘어놓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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